사랑은 대단한 마음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다.
그저 작은 순간들이 모여 끝내 온기를 만들어낸다.
첫째가 얼마 전부터 뮤지컬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3시간의 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작은 박스와 함께였다. 그녀는 수업 쉬는 시간 간식이자 점심으로 나온 음식을 항상 챙겨 온다. 처음엔 다 먹지 못해 남은 걸 싸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동생을 위해 먹다 남겨오는 것이라고 했다.
"딸, 받은 건 다 먹고 와. 맛있다면서 왜 자꾸 남겨와. 어차피 동생은 말 안 하면 네가 이걸 먹었는지 알지도 못해."
"그러니까, 맛있으니까 남겨오지. 맛있는 걸 먹으면 동생 생각이 나는 걸 어떡해. 동생이 맛있게 먹을걸 상상하니 가져오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내 예상과는 다른 답변을 들으며, 잠시 생각이 멈춘 듯 멍해졌다.
사실 굳이 남겨올 필요는 없다. 우리 집이 먹고 싶은 걸 사주지 못할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먹는 걸 유독 좋아하는 아빠를 둔 덕에 맛있는 것, 유행하는 것들을 다 맛보는 아이들이다. 그런데도 첫째는 자신이 먹을 몫을 덜어내며 동생에게 나눠줄 생각을 한다. 피자 두 조각이 나오면 남은 한 조각을 싸 오고, 핫도그는 세 입쯤 베어 먹다 남겨온다.
문제는 동생이 시큰둥하다는 점이다. 먹다 남은 음식은 다 식어 빠져 맛있을 리가 없었다. 동생을 기쁘게 할 생각에 간식을 남겨온 누나의 마음은 매번 섭섭하기 그지없다. 눈물이 날 만큼 속상하지만, 또 다음주가 되면 첫째는 남은 음식을 다시 포장해 온다. 혹시 이번에는 동생이 좋아하지 않을까, 그 희망 하나를 품고서.
돌이켜보면 유치원 때도 그랬다. 선생님으로부터 비타민을 두 개 받으면 꼭 하나는 남겨왔다. 그리고서는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마의 손에 비타민을 쥐어주었다. 그때는 그 행동을 그저 귀엽게만 여겼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더 크게 자라 동생을 향하고 있었다.
사랑은 이렇게 흘러가는 거구나. 위에서 아래로, 부모에게서 아이에게, 다시 그 아이에게서 또 다른 아이에게. 내리사랑이란 결국 내가 심었던 사랑이 또 다른 곳에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닐까.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 이를 품고 자라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나는 자주 부끄러워진다. 그 어떤 조건 없이 마음을 주고, 아무런 계산 없이 사랑을 건네는 그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마음을 지키는 것보다 감추는 일에 더 익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이 나를 감싸고 있던 가면을 단숨에 벗겨내 버렸다.
내 것을 온전히 챙기고자 급급해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올바른 태도라 믿어 왔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사는 것뿐이라며 나름의 이유를 붙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달랐다. 자신의 것을 반절이나 덜어내고도 웃음을 더해 나눌 줄 알았다. 베푸는 사랑에 그 어떤 조건도, 이유도 필요 없었다.
사랑은 나눌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며, 끝내 더 크게 자라난다. 그렇기에 그 사랑의 끈을 잡고 오늘도 넉넉히 살아내야지. 부족한 나일지라도 오늘 하루는 누군가에게 조금은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