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둘째는 꾸지람을 들었다. 할 수 없는 걸, 불가능한 걸 해달라고 떼를 부리다가 크게 혼이 나고 말았다.
얼굴을 잔뜩 구기고 발을 동동 구르며 폭포 같은 눈물을 쏟아내던 아이. 지속적으로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부모이기에 더욱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혼을 내고 나서는 눈물범벅이 되어버린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괴로웠다.
다음날 아침, 아직 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를 둘째의 작은 손이 흔들어 깨웠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 내가 무슨 꿈을 꾼 줄 알아요?"
"음, 글쎄."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꿈이요."
순간 밤새 눅진하게 남아 있던 후회와 죄책감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혼이 났던 사실은 기억 저편으로 날려버리고, 사랑만을 꺼내어 보는 아이의 마음에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웃음만 나왔다. 그 말이 너무도 귀여워서, 사랑스러워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둘째의 고백이 나의 아침을 환히 밝혀주었다.
바로 전날,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조금 더 참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가능하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간절하게도.
그러나 아이의 말 한마디가 그 바람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사랑한다는 그 짧은 고백은 내 모든 잘못과 변명들을 지워내고, 그저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아이의 맑은 눈망울에는 서운함과 원망이 아닌 나를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좋아 죽겠다는, 그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그런 표정 말이다.
관계의 회복은 빈틈없는 훈육도, 부모로서의 권위도 아니었다. 서로를 향한 애정 가득한 마음,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사랑을 전하는 작은 말 한마디가 모든 걸 회복시켰다. 엉망진창이던 하루를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버렸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와 함께 배워가려는 마음보다 가르치려는 욕심이 앞설 때가 있다.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애쓰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아이가 느낄 상처나 슬픔은 쉽게 헤아리지 못한다. 후회는 늘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순간의 상황에 너무 깊이 감정을 이입한 탓이다.
아이의 고백은 그런 나에게 주는 따스한 경고였다. 사랑 없는 훈육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단호함 속에 사랑이 깔려 있을 때만이 훈육은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둘째의 말을 통해 관계의 회복이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의도와는 달리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거나 아프게 했더라도, 진심 어린 사과와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다시 이어질 수 있다. 관계란 쉽게 상처가 나지만 동시에 금세 아물 수 있는 힘을 지닌다. 다만 그 바탕에는 언제나 사랑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아이와의 갈등 앞에서 감정적으로 화를 내기보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을 먼저 꺼내보겠다고. 혹여라도 서로가 감정이 상했을 경우에도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은 내 안에 있음을 믿고 다시금 사랑으로 하루를 열어보겠다고. 부모 역시도 여전히 서툴고 부족함 투성인 그저 인간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부서진 마음을 다시 잇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다.
그렇기에 사랑을 가득 품고
또다시 서로에게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