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명하는 키워드

by 안개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뜻이 좋아서라기보다 요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백 번을 이긴다니. 사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와 그리 격렬하게 싸워 본 적도 없고, 이겼다 싶을 만큼 뚜렷하게 승리를 거머쥔 기억도 없다. 그런데도 이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마도 싸움이라는 말을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싸움이란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함에 가깝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 실수 투성이었던 완벽하지 않은 날에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싸워야 한다면, 그 상대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매일 흔들리고 때때로 주저앉는 나 자신이 아닐까 하고.



벌써 12월이다. 벌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간이 참 빠르게만 흘러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벌써 회사에 도착해 있고, 점심을 먹고 나면 어느새 퇴근을 준비하고,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보면 일 년이 훌쩍 지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간다고 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알겠다. 그때의 어른들 말씀엔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던, 관심도 없던 그 말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뿐인데 휴대폰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서 빨리 일어나라며 나를 재촉하는 알람이다. 어제처럼 빈둥거릴 생각 말고 빨리 일어나 돈 벌러 나가라는 냉정하기 그지없는 신호다.


인생은 내리막길인 걸까. 앞으로 가면 갈수록 속도가 더해지는 것만 같다. 달리면 달릴수록 더 빨라지는 걸 보면 삶에도 가속도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가끔은 그 무서운 속도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던 스무 살의 나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의 나는 분주다망(奔走多忙)하게 달리고만 있는 것 같아서. 점점 속도를 높여 가는 기차에 올라탄 채, 어디서 내려야 할지도 모른 채 밀려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무심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보다,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를 더 많이 신경 쓰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를 알고자 하지 않았으니 알 도리가 없었고, 몰랐기에 속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보물찾기 속 꼭꼭 숨어버린 쪽지처럼, 나 자신을 열어 보지 않은 채 수없이 많은 해를 지나쳐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희미해져 버린 나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가시 돋친 말에도 상처받지 않았고, 기뻐서 펄쩍 뛰어야 할 일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무던해졌다고 하기보다는 무뎌졌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지금보다 더 투명해져 버리는 건 아닐까.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갖고 나를 들여다보기로. 나를 설명할 키워드를 천천히 떠올리며 나를 찾아가는 연습을 시작해 보기로 말이다.



나를 설명하는 첫 번째 단어, 성실함.


곰 같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아마도 '곰'이라는 단어 앞에는 입 안으로 삼킨 '미련한'이라는 수식어 붙어 있었을 것이다. 약삭빠른 여우나 재빠른 토끼 같은 이미지는 나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계산에 밝지도 않았고, 전략을 세워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일에도 능한 편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 같다는 말이 꼭 나쁘게만 들리지만은 않았다. 주어진 역할을 제 자리에서 묵묵히 해내는 것, 조금 느릴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료하는 것.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 한 사람쯤은 알아봐 주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걸로 충분했다.


자기 PR이 절실한 시대에 살면서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묻는다면 반박할 말을 없다. 그런 쪽으로는 잘나지 못했기에 딱히 내세울 것 없이 성실함만을 내세우며 살아왔다는 변명 정도 늘어놓을 수 있겠다. 십여 년간 회사를 다니며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으라면, 승진을 위한 성과기술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았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눈에 띄지 않아도 괜찮았고,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괘념치 않았다. 인정받는 일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무언가를 해내며 얻는 성취감이 더 달콤한 보상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묵묵하게 걸어왔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나에 대한 평가를 만들었을 것이고, 아마도 그 성실함이야말로 지금껏 나를 버텨 오게 한 가장 큰 힘이 아니었을까.



나를 설명하는 두 번째 단어, 다정함.


성실함이 밖에서의 나를 보여주는 단어였다면, 다정함은 집으로 돌아온 나를 설명하는 단어에 가깝다.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마주하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아이스크림이 스르르 녹아내리듯, 단단하던 마음이 금세 풀어져 버린다. 바깥에서 하루 종일 각을 세우며 버티던 감정들이 아이들 앞에서는 한없이 둥글어진다. 모나고 각진 마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다.

아마도 그건 아이들만이 지닌 특별한 마법 덕분일지도 모른다.


눈을 맞추고, 귀를 활짝 열고, 마음을 들어주는 일.

다정함은 부드러운 말투나 따뜻한 눈빛을 보내는 일만을 아닐 것이다. 말을 끝까지 귀담아듣고, 숨소리나 눈빛 속에서 마음을 한 번 더 짐작해 보는 태도에 가깝다. 그 마음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솔직하다. 느껴지는 감정을 여과 없이 툭 던지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다정함이란 그 이면을 지나치지 않고, 한 겹 조심스럽게 걷어 올려 그 안을 들여다보는 태도에 가깝다. 이를 위해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을 투자하는 편이다.



나를 설명하는 세 번째 단어, 강인함.


살면서 내가 강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들꽃처럼 바람 불면 흔들렸고, 비가 오면 웅크리며 견뎠으며, 밤이 깊어지면 숨 고르며 쉬어갔다. 그렇게 늘 상황에 따라 모양을 바꾸며 살아가는 편에 가까웠다.


그러다 생각만으로도 오한이 느껴지고, 어깨까지 달달 떨릴 만큼 힘든 일들을 마주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바닥이 지금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앞으로 더한 시련이 수없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무자비한 현실을 말이다.

수없이 깊고 어두운 밤들을 지나왔다. 작은 불씨 하나에 기대어 암흑 속 길을 찾아 나서던 시간들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내가 가진 강인함은 부서지지 않는 힘이 아니라, 부서지고도 다시 일어설 줄 아는 힘일 것이다. 도망치지 않고 끝내 삶의 끝자락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 아마도 그 노력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또 하나의 힘이 아니었을까.



나를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나열하고 보니 이상하게도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마치 오래 돌고 돌아 내가 나에게로 도착한 기분이었다.

그래, 이게 나지.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


아이를 키우는 연습이자, 동시에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연습.

지피지기가 백전백승이라면 오늘만큼은 이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진실된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잠시나마 행복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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