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헤어질 생각하면 슬퍼요. 내일 회사 안 가면 안 돼요?"
일요일 아침, 다음날인 월요일을 걱정하는 둘째의 목소리에 속상함이 가득 배어 있다.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렁그렁 고여버린 눈물이 어느새 후두둑 쏟아져 내린다.
지금의 행복이 깨지지 않길 바라는 작은 속삭임이었다. 엄마의 출근은 매일 경험하는 일이지만 어지간히도 익숙해지지 않나 보다. 단지 몇 시간의 짧은 이별일 뿐이다. 그러나 6살 아이에게는 그게 그토록 서러울 일이었다.
그저 아이의 귀여운 투정으로만 받아들였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땡깡을 부려보는 거라고. 말도 안 되게 떼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지만, 열에 한 번은 그 고집을 웃으며 받아주었다. 무조건적인, 무한한 사랑으로 꽉 안아주는 날도 있어야 하니까.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눈 닫고, 귀 막으며 일단 울어 젖히면, 하루쯤은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을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요구에 응할 여력이 없었다. 화장실도 못 간 채 일해야 할 정도로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이 아파서, 학교 행사 때문에 등의 타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회사를 반드시 가야 했다. 그래야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토록 쉽게 아이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아침마다 울며 불며 할머니를 힘들게 할 터였다. 그러니 어쩌겠나, 견디는 수밖에.
지금의 시간도 결국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뎌질, 단단해질 그날이 곧 찾아오겠거니 그렇게 여겼다.
시간이 약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이의 마음속 시커먼 응어리들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몸집을 키워 갈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출근길, 매주 월요일이면 이른 시간부터 전화가 온다. 둘째의 전화다. 아직 휴대폰이 없지만 할머니의 폰을 제 것처럼 사용한다.
그 아침의 영상통화 속 둘째는 늘 울고 있었다. 화면 너머에서 흐르는 아이의 눈물이 내 마음을 적셔왔다. 물에 적신 솜뭉치마냥 무거운 가슴으로 그저 휴대폰을 바라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요구는 과해졌다. 빨리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라며 버럭 화를 내거나, 엄마 없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이를 살살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감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바로 지난주의 일이다. 모두가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는 야심한 밤, 침대 위의 둘째가 자꾸만 뒤척였다. 부스럭부스럭, 이불이 자꾸만 들썩였다. 아직도 깨어 있다고? 그럴리가 없는데. 낮에 온종일 뛰어놀았기에 이미 꿈나라에 가 있어야 했다.
"아들, 잠이 안 와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아이의 어깨를 잡고 내 쪽으로 돌려 눕혔다. 둘째의 얼굴에 무언가 반짝하고 빛이 스쳤다. LED 시계에서 새어 나온 희미한 불빛이 아이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눈 밑을 손바닥으로 쓸어보았다. 축축한 게 손바닥에 걸렸다. 고요히 홀로 울고 있던 흔적이었다. 엄마에게 들릴까 등 돌려 소리 없이 울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왜 혼자 울고 있느냐고, 속상하면 크게 울어도 괜찮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제야 목 놓아 울기 시작하는 여린 여섯 살.
"내일 엄마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슬퍼?"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항상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엄마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야. 그렇지 않으면 아빠 혼자 너무 힘들거든. 엄마가 승기를 사랑하는 만큼 아빠도 많이 사랑하거든. 아빠 혼자 힘들게 할 순 없잖아. 대신 엄마가 열심히 벌어서 우리 아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좋은데도 더 많이 데려가 줄게."
또다시 얼굴을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인다.
"우리 아들 정말 많이 컸네. 이런 엄마도 이해해 주고.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제서야 내 품으로 파고들어 와 나에게 폭 안겨버리는 작고 귀여운 녀석.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미안함의 감정들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올라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듯했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기에 급급했다. 중간중간 짬 내가며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부렸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그저 아이답게 잘 크고 있으려니, 부족함 없는 사랑을 주고 있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그들의 깊은 속내까지 들여다볼 생각을 차마 하지 못했다.
사랑에도 모양과 색깔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고도 어린 마음이 전해준 진심은 솜사탕처럼 동그랗고, 마시멜로처럼 폭신하며, 희미하지만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워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랑의 형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본모습 그대로를 마주할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사랑은 밝게 빛이 나니까. 잠 못 들던 그 밤의 고백을 통해 우린 서로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는 중이다. 매일 같이 아이들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 실수를 통해 사랑을 배워 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는다.
잠 못 드는 밤의 고백, 그건 아이를 위로하는 말이자 결국 나 자신에게 건네는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