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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백 마디 말을 이긴다

by 안개별


첫째가 며칠째 콜록거리더니 결국 목소리까지 잃고 말았다. 기침이 심하지 않았고 열도 없어 별일은 아니라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심한 감기가 찾아왔다. 큰일은 방심했을 때 벌어진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입을 열 때마다 아이의 목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사포처럼 메마르고 거친 질감이 귀에 닿는 듯했다. 내 목구멍까지 따끔하고 아파오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내일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목소리가 이상해서 친구들이 놀릴 것 같단다. 여자애 목소리가 어떻게 저렇게 걸걸하냐고.

"놀리기는, 아마 멋지다고 할걸. 목소리에 개성이 가득 담겼잖아. 걸크러시한 게.. 왠지 카리스마도 있어 보이고.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 일 년에 딱 한두 번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목소리라고."


헬륨가스를 마셔야만 가냘픈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감기에 걸렸으니 두껍고 낮은 목소리를 얻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인어공주처럼 목소리를 영영 잃어버린 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말을 덧붙이며.

내 말에 그녀는 갸웃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정도의 아픔만으로는 학교를 빠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회사에 출근하면서도, 일을 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아이 생각이 났다. 학교에 보내지 말걸 그랬나, 괜히 더 심해져서 오면 어떡하지. 친구들에게까지 감기가 옮겨 가면 어떡하지.

열도 없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해 놓고, 지금 와서야 후회로 얼룩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까맣게 물들어가는 마음 한켠을 간신히 붙들어 잡는다. 그렇게 아이도 성장해 가는 거라며,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퇴근 후 우린 다시 만났다. 다행히 컨디션이 어제보다 더 좋아진 듯하다. 여전히 목에선 쇳소리가 나왔지만 의사소통엔 어려움이 없었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힘들었지. 학교는 어땠어?"

"엄마, 대박이야."

밑도 끝도 없이 대박이라고 외치는 딸아이 얼굴을 보니 웃음이 피어 나왔다.


"목이 아파서 나 한마디도 못했어."

"말하는 걸 좋아하는 네가 한마디도 못 했다니, 거 참 심심했겠네."

"심심할 틈이 없었어. 말을 안 했는데 오히려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다가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애랑 무슨 놀이를 한단 말인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물었다.


"오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것 같아. 말을 하지 않는데,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 친구들의 마음이 엄청 잘 들리는 거야. 몰랐던 사실들을 엄청 많이 알게 되었어(누구는 무얼 좋아하고, 누구는 어딜 다녀왔고.. 등등).

게다가 내가 한마디도 안 하고 듣고만 있으니까, 다들 엄청 좋아해. 평소보다 더 많은 친구들이랑 놀다 왔다니까. 그동안 나만 얘길 했었나 봐. 조금 미안해지더라."

"기특해라. 우리 딸,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왔구나."

두 눈에 생기를 담고 학교에서의 일을 생생하게 나열해 가는 아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녀석의 입과 손이 귀엽기만 하다.


"그리고 엄마 말대로 친구들이 그랬어. 목소리가 엄청 매력적이래. 저음으로 노래하는 엄청 유명한 가수 같대. 뭐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 나네. 엄마 있지, 내 목소리가 맨날 이랬으면 좋겠어."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아이의 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운 감정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첫째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이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곧 죽어도 내뱉어야 했고, 옳다고 생각하는 건 주저 없이 끝까지 밀어붙여야 했다. 그런 이유로 주변을 돌아볼 여유 같은 건 부리지 못했다.

친구들과 동생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이따금씩 발생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수십 번을 얘기하고 따끔하게 혼도 내 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소용이 없는 듯했다. 사람 성향이 어디 쉽게 바뀔까.


그랬던 아이가 감기로 말을 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귀가 열렸을 터였다. 어쩔 도리 없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것이고, 발언권을 빼앗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백 번을 말해도, 천 번을 말해도 바뀌지 않던 아이가 그날 이후 조금씩 달라졌다. 상대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듣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으며, 말을 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다. 듣는 태도도, 말하는 방식도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변화였다.



침묵이 때로는 백 마디 말을 이긴다.


그 말을 몸으로 배운 셈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더 많은 마음을 들을 수 있었고, 친구들과 더 깊은 우정을 쌓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스스로 깨달은 배움은 그 어떤 훈육보다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아이가 침묵으로 세상을 달리 바라보게 되었다면, 엄마의 침묵은 아이를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연습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보다 기다림이, 가르침보다 인내와 경험이 더 효과적인 훈육이 될 수 있다는 걸, 오늘도 아이를 통해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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