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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Sep 22. 2024

유하나│하지 말걸 그랬다


소녀

하나


────



"하아암. 피곤해."


기다렸단 듯 마구 쏟아져 나오는 하품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아보지만 무리였다. 어제 그리 늦게 잠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자꾸만 퍼져 나오는 하품을 막을 도리가 없다.


"아야!"


입을 너무 크게 벌린 탓에 하마터면 턱관절이 빠질 뻔했다. 자중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버스가 멈춰 섰다. 밤 눈이 어두워 매일 다니는 길임에도 정거장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이따금씩 생겼다. 그럴 때면 버스에서 내려 지나친 정거장만큼 걸어 돌아와야 했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아저씨, 저 내릴 거예요!"


빈좌석 없이 학생들로 가득 차 있던 버스 바닥에 내려놨던 묵직한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을 손목에 대충 끼워 넣고는 운전석까지 후다닥 달려갔다. 이미 서너 명이 줄을 서서 차례차례 내리고 있었다.


"휴, 저 또 놓칠 뻔했잖아요. 감사합니다."


매일 만나는 버스 기사님이 날 보며 방긋 웃어주었다.


"적당히 하고 오늘은 일찍 자거라. 많이 피곤해 보인다."

"오늘은 꼭 그럴게요. 조심히 가세요!"


걱정 아저씨라는 별명을 가진 기사님은 오늘도 나에게 염려의 한마디를 건넨다. 따스한 아저씨의 인사 덕이었을까. 온몸 가득 차 있던 피로 물질들이 피부 밖으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한층 가벼워진 몸뚱이를 이끌고 버스에서 내려 손목에 끼워둔 가방들을 맨바닥에 잠시 두기로 했다. 수많은 교과서와 문제집 탓에 손목이 시큰거렸다. 무리가 갔던 손에 힘을 빼고 탈탈 털어보며 손목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다시 책가방을 들어 올려 등 뒤로 걸치고 양팔을 모두 다 뺀 그 순간, 차가운 물방울이 손 등 위로 떨어졌다.


툭- 툭툭.


큰일이다. 지각할까 일기예보도 보지 못하고 등교한 탓에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 바보... 어쩌려고 그런 걸 확인도 안 한 거야.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엄마가 챙겨 온 우산을 건네받아 펼치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우산을 펴며 까르르 웃던 아이도 있었고, 누나의 우산을 가져왔다며 툴툴대는 아이도 있었다. 밤늦은 시간, 자신을 기다려준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각기 다른 방식이라고 보여졌다.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시끌벅적 들려오는 소리에 자꾸 눈길이 갔다.


쏴- 쏴아.


한두 방울 가녀리게 내리던 빗줄기는 미친 듯 몰아치는 소나기로 바뀌고야 만다. 멍청이 유하나, 집에 어떻게 가려고 우산을 안 챙긴 거냐고. 이렇게 허술한 정신상태로 대체 서울대에 어떻게 갈 건데. 그건 숨쉬기 운동하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라고! 비라도 잔뜩 맞고 집에 갔다가 독감이나 폐렴이라도 걸린다면 어쩔 건데. 재수가 없어서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면 병간호는 누가 해 줄 거고, 중간고사는 또 어떻게 준비할 건데!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를 향해 겨눈 채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우려에 과장을 보태본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시간 낭비일 뿐, 대책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는 걸 깨닫는다. 조금 기다려볼까, 소나기는 시간이 지나면 그치던데.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부터 육십까지 세어본다. 그러나 비는 점점 더 거세질 뿐, 그칠 기미가 없다. 가방을 멘 채 정류장 벤치 위에 앉아 하릴없이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봤다. 어느새 잘근잘근 손톱 끝을 깨물고 있다.


전화... 해볼까. 한 손으로 휴대폰을 열었다 접었다 한참을 반복해야 했다. 결심이 선 나는 휴대폰을 다시 열고 단축 번호 1번을 길게 눌렀다. 엄마는 통화 연결음도 없이 전화를 잽싸게 받아 주었다.


"엄마, 지금 통화 가능해요?"

"@$%#^$&!#&"


웅얼거리는 목소리들이 꽤나 시끄러웠다. 엄만 전화를 받았다는 걸 알지 못하는 듯싶었다. 다시 한번 크게 엄마를 불러보기로 했다.


"엄마! 엄마아~!"

"(작은 소리로) 잠시만요, 전화 왔나 봐요. 여보세요? 하나구나!"

"응, 엄마 나예요."

"집 도착했어?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어. 얼른 씻고 자야지."

"엄마... 혹시 지금 바빠?"

"지금 회의 중이라 정신이 없네. 미안, 빨리 끝내고 들어갈게. 우리 공주님, 늦지 않게 자."


뚜뚜뚜뚜-.


전화, 그거 하지 말걸 그랬다. 내 목소리엔 엄마를 움직일 힘이 전혀 없다는 걸 오늘도 깨닫는다. 알고 있었지만 늘 잊어버리고, 뒤늦게서야 알아차린다. 축 늘어진 어깨만큼 내 얼굴 근육들도 바닥까지 힘없이 처지는 기분이다. 게다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바빴던 엄마는 내가 어디에 있든, 무슨 상황이든, 무엇이 필요하든 관심이 없었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엄마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싱글맘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큼이나 힘든지 누누이 들어왔기에, 난 엄마의 착한 딸이 되어야 했다. 엄마에게 더는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벤치에 앉아 마냥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린 지도 벌써 십여 분. 오늘 숙제가 몇 개였더라. 대충 지금 막 떠오른 것만 세어보더라도 개나 된다. 귀가가 더 늦어진다면 난 숙제도 하지 않은, 태도가 매우 불량한 아이로 낙인찍혀 버릴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소나기 따위가 지금껏 쌓아온 올바른 나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했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비를 맞는 길을 택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냅다 달렸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고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지만 달음질하는 나를 멈출 수는 없었다.




*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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