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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Oct 11. 2024

하동빈│목숨을 원한다면 흔쾌히


소년

하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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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울 정도로 창문이 덜컹거렸다. 커다랗던 소음은 잠귀가 밝은 나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대번에 눈이 뜨였고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움직임 없이 두 눈만 끔뻑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풍이 만들어낸 소리였다는 걸 깨달았고, 깊은 후회가 몰려왔다. 우리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몰아치는 태풍 탓에 창문이 깨지거나 간판이 떨어질 있으니 밖을 나서지 말라는 뉴스를 봤지만, 그냥 흘려들어버린 탓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다. 박스 테이프라도 엑스자로 붙여두었어야 했다.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을 거라면 뉴스를 봤던 거냐며 미련했던 스스로를 탓하고 있던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옅게 들려왔다. 창문에서 퍼져 오는 덜컹거림이 아닌 무언가를 만지거나 스쳤을 나는 그런 소리 말이다. 긴박하게 이어지던 소리는 마침내 끝이 났다. 강한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음 탓에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작은 소리였다.


무언가를 찾는 소리쯤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이 늦은 시간에 대체 무얼 찾는 걸까. 지금이 몇 시인지 궁금해서 시계가 있는 쪽을 바라봤지만, 야광 시계는 빛을 잃은지 오래였다. 도통 노력해봐도 시침과 분침을 찾을 수가 없다. 어디론가 숨어버린 그들을 찾으려면 불을 켜야 했다.


"끼이익-."


고장난 안방 문고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걸 돌릴 때마다 들려오는 기분 나쁜 소음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내 귀를 간질였다. 잠에서 깬 나의 상태를 알리고도 싶었고, 안방을 나서는 엄마의 목적지도 궁금했다. 그게 부엌쯤일 것이라 상상하며 엄마를 불러봤다.


"엄마?"


이불을 발 아래로 차내고 허리를 일으켰다. 이어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무릎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대답이 없는 엄마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안방 불을 켜 보았다. 안방 문 틀에 서있던 나는 현관 신발장 앞 엄마의 뒷모습에 화들짝 놀라고야 만다. 내 키 반만 한 커다란 가방을 한 손에 쥔 채 등을 보이고 서 있다. 대답이 없는 엄마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엄마, 어디 가?"


내 물음에 어떠한 답도 하지 않은 채 꾸역꾸역 운동화에 두 발을 차례로 들이미는 엄마, 그리고 그런 그녀를 마주하고자 현관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나.


"동빈아... 엄마가 미안해. 부디 잘 살아."


어렵사리 입을 연 엄마의 음성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평소의 엄마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엄마는 가방과 함께 현관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미안하다는 말과 잘 살으라는 말은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나 나올법한 멘트가 아니던가. 영원한 헤어짐을 위한 인사 말이다. 태풍이 불어닥치는 야심한 밤, 그 어떤 빌드업도 없이 엄마가 아들에게 건네는 끝인사라니. 더 늦기전에 붙잡아야 했다. 더 멀어지기 전에.


타다다닥-.


맨발로 엄마를 따라 뛰어 나갔다. 썩 묵지함이 느껴지는 가방을 들고 가는 엄마는 금세 나에게 잡혀버렸다. 가방 끄트머리가 내 오른손에 걸렸다. 다행이다. 엄마를 돌려 세울 수 있어서.


"엄마! 대체 이 시간에 어딜 가는데!"


미친듯 쏟아지는 비와 쉴새 없이 몰아치는 태풍 탓이었을까. 평소라면 골목 곳곳에 쩌렁쩌렁 울려퍼졌을 내 목소리가 금세 사라져 버리고야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급한 나의 외침은 엄마의 귀에까지 도달했고, 그녀를 멈추게 만들었다. 엄만 드디어 돌아섰고,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거센 비바람에 흠뻑 젖어버린 엄만 눈도 제대로 뜨질 못했다.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날리다 엄마의 얼굴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어버렸고, 회색 원피스 사이로 보라색 속옷이 적나라하게도 비쳤다.


"엄마는... 여기 더 있으면 죽어.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냐.  살고 싶어, 동빈아."

"엄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고통을 모른척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후회로 짙게 물들어 다. 한 발짝 더 나서지 못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날 멈춰 세우고야 만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엄마가 죽어 나가는 꼴을 꼭 봐야겠어? 그게 아니라면 놔, 제발."


난데없이 내리치는 천둥 탓이었을까, 내 흐느낌은 엄마에게 닿질 않았다. 더 크게 훌쩍여보지만 더 큰 비수가 날아와 내 왼쪽 가슴 한 가운데 박혀버렸다. 피가 철철 흐르는 아픈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다. 그렇게 엄마 가방을 꽉 쥐고 있던  손은 엄마로부터 멀어졌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태풍은 엄마를 데려갔다. 내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9년 전 겨울, 그게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흠, 흐음."


헛기침 소리에 깜짝 놀라 그만 벌떡 일어나버렸다. 할머니와 함께 병실에서 잠이 든 모양이다.


"아,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주무시나 보군요. 그냥 두세요. 퇴원 날짜 말해주러 왔어요. 뼈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붙어가고 있고, 근육의 움직임도 정상 범위 내로 들어왔으니 내일이면 퇴원해도 되겠어요. 대신 경과를 계속 지켜봐야 하니, 일주일에 한 번 꼭 내원해주셔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할머니는 수술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입원 치료를 잘 마쳤고, 그 결과 깁스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로 퇴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었음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하는걸까. 아니면 또 다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우리를 가엽고 불쌍하게 여겨야 하는 걸까. 도무지 모르겠다. 어린 자식을 두고 살기 위해 떠나야만 했던 엄마의 마음에 점차 이해를 더하고 있다면 그건 거짓말일까. 내가 당시의 엄마였더라도 같은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을까. 엄마를 향한 미움의 불씨가 점차 연민으로 변해가고 있다.


고통 없는 시간 속에 나를 던져 넣을 수만 있다면, 무조건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지옥같은 현생에서의 모든 순간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 댓가로 목숨을 원한다면 흔쾌히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고, 나의 몸뚱이가 하나씩 부서져 가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될테니 말이다. 더는 그를 마주치지 않아도 될테니 차라리 그 편이 낳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상상들은 언제나처럼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은 말도 안되는 소설 속에서 나를 꺼내놓았고, 다시 현생으로 불러들였다.


내일 할머니를 퇴원시키려면 준비를 마쳐야 했기에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술만 마시면 뭐든 집어던지고 부숴버리는 그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 있을 집을 정리해야 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순 없었기에 시장에도 다녀와야 했다. 할머니가 잠든 사이, 이 모든 걸 다 끝내야 했기에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나서 본다.




* 사진 출처 Pixabay, trile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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