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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별 Oct 13. 2024

유하나│꿈일 거야


소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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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나 보던 배우들을 직접 만난다는 설렘과 긴박하게 전개될 스토리가 줄 짜릿함을 상상하니 시시 웃음이 났다. 엄마가 골라주는 뮤지컬은 언제나 옳았다. 함박웃음을 자아내기도 했고, 끝없이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던 적도 있었다. 뮤지컬은 내 안에 꽁꽁 숨겨두고 지워버려야 했던 미세한 감정 세포들을 모조리 다 깨워버리는 신비한 마법 같았다. 그런 마법 속으로 빠져 들어가 나도 그들처럼 진한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도 싶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공부 그리고 시험이 주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횡단보도 위를 폴짝폴짝 뛰어본다. 구름과 구름 사이를 휙 하고 게임하듯 건너는 기분이다. 그때였다.


"하나야!"


두 손으로 힘껏 날 밀어버리는 엄마의 힘에 놀랄 틈도 없었다. 난 그저 꽉 쥐고 있던 주둥이를 놓아버린 풍선마냥 저멀리로 내동댕이 쳐졌다. 그리고 이어져 들려오는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소리.


부웅- 쾅!


추돌이 만들어낸 커다란 굉음은 시공간을 전부 꽁꽁 얼려버렸다. 횡단보도와 도로에 있던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차도 사람도,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요함을 깨는 또 한 번의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언가 도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철퍼덕.


간담이 서늘하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뭐지...... 갑작스레 바닥에 널브러진 탓에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꽤 많은 사람들로 인해 내 앞엔 울타리가 쳐져버렸고, 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몸을 일으켜야 했다. 아스팔트 바닥에 쓸렸는지 양 무릎에는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무릎에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한 나는 두 팔을 이용해 바닥을 짚고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고자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다친 건 무릎인데, 왼쪽 가슴이 욱신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한다. 엄습한 불안감을 이겨낼 방법을 떠올려보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아니...... 아니야......"


채 스무 걸음도 떼지 않았는데, 벌써 마주해 버렸다. 설마 하던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럴 리가 없어. 이건 꿈일 거야. 꿈이어야 해. 사실이 아니라고. 내 옆에 있어야 할 엄마가 왜 저기 누워있는 거지. 난 분명 엄마와 공연을 보러 가던 길이었다. 몇 발자국만 더 걸었다면 무사히 도로를 건널 수 있었는데 ...... 엄마를 정중앙에 두고 원을 그리듯 점차 퍼져나가는 저 새빨간 물이 다 피란 말인가. 차마 더 지켜볼 수 없었다. 덜덜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고 배가 싸하게 아파왔다.


"우웩!"


메스꺼움 탓에 오바이트가 나와버렸다. 도로 위에서 몸을 90도로 굽힌 채 속을 게워내야 했다. 내뱉고 나니 어지러움이 몰려온다. 눈 앞이 새하얗게 변해간다.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바빠보이는 그들의 움직임도 더는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


털썩.




"잠시만요! 여기 사람이 한 명 쓰러졌어요. 아니요. 교통사고 피해자는 아니에요. 빨리 좀 서둘러 주세요. 사고를 당한 여성은 의식도 없구요, 피를 많이 흘리고 있어요."




* 사진 출처 : Pixabay, Republ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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