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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더하기 Apr 26. 2022

파김치 담는 거 일도 아니지요




시인들은 벚꽃을 팝콘으로, 목련꽃은 신부의 하얀 드레스로 노래를 하는 봄이 왔다.

나는 지금처럼 농사일이 많은 계절이면 오면 주말에 혹시라도 땅콩을 심고 있다던가, 고추모를 심고 있다던가라는 얘기를 들을까 봐 부모님께 안부인사를 저녁 아니면 주중에 하는 아주 계획된 효도?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골 태생과는 좀 안 어울리게 나는 먼지 알레르기? 가 있다.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딱 일하기 싫은 핑계를 대기에 적당할 정도의 알레르기다.

가까이 살아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도와드리면 좋겠지만 흙먼지가 닿은 피부는 씻어도 가려워서 한동안 벌겋게 될 정도로 긁고 종기까지 나야 낫는 것을 알아서 의도적으로 일을 도와 드리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나에게 일을 하라고 시키시지도 않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고추도 다 심어서 이제는 한가 찌네. 김장김치도 이제 질리지? 열무김치랑 파김치 담가 놨으니까 가져가서 먹어."

엄마의 반가운 호출을 기다리며 4월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봄은 좀 다르다. 계획에 없던 봄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허리디스크 수술은 주중만 골라서 전화를 할 수도 찾아 뵐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휴무날 오전에 친정에 갔다. 엄마는 내 차 소리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마당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밭에 쪽파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 파김치 담가 주고 싶어 죽겠다."


엄마는 아픈 허리보다 밭에서 의미 없이 잘 자라고 있는 쪽파가 더 걱정인가 보다.

얼마나 잘 자랐길래 그러시나 마당 옆 밭으로 나가서 보니 '아! 쪽파 너무 아깝다'란 생각이 훅하고 지나갔고, 흙먼지 하나도 허락하고 싶지 않던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나와 파를 뽑고 있었다.


이걸 뽑아서 어쩌려고? 괜히 가져가서 음식물 쓰레기 만드는 거 아니야?


뽑은 양을 보니 50리터 정도 되는 봉투에 가득 담겼다.


"엄마 파김치 레시피 좀 알려 줘요."

"네가 담아 본다고? 파김치는 쉬워 절일 필요도 없고."




나와 동승해온 쪽파는 거실에서 한동안 나의 귀차니즘과 어찌 담가야 할지 모를 두려움과 같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1. 파를 다듬어 씻는다

2. 양파 사과 마늘 찬밥 한 숟가락을 넣고 간다

3. 액젓과 꿀 매실기스 고춧가루를 넣고 불린다

4. 2와 3을 섞어서 파에 버무린다. 끝


이렇게 엄마와 인플루언서의  레시피를 조합해 순서를 나름대로 정한 다음 파에서 김치로의 변신을 이어나갔다. 엄마 말대로 절일 필요도 없고 다양한 양념이 필요치도 않아 파김치를 담는 것은 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제법 완성된 김치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 어느 장인이 담은 비주얼과 견주어도 뒤질 거 같지 않아 보였으며 맛 또한 그러한 것 같았다. 자만심이 봄날 벚꽃 피듯이 정신없이 피어났다.


하루 베란다에 두고 좀 익힌 다음 반찬통에 소 분한 뒤  냉장고에 들어간 나의 첫 번째 파김치는......

열면 안 되는 비밀서류인 듯 봉인된 채 더 이상 꺼내지지가 않았다. 정말 음식물 쓰레기만 한 통 담은 거 아닌지 모르겠다. 엄마가 담가서 주는 파김치는 반찬통에 덜어 놓기 무섭게 없어졌었는데 말이다.


엄마의 허리디스크가 나으면 쪽파 뽑고 다듬으며 김치냉장고 문이 바빠지게 맛있게 담는 법을 제대로 배워 봐야겠다. 일하기 싫은 적당한 핑곗거리 흙먼지 알레르기를 잠시 잊고.


나중에 내가 엄마에게 김치를 담가 주면서 정말 '파김치 담는 거는 일도 아니네'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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