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크로스핏에서 1분이란!(2편)

1원이 더 이상 돈의 가치로 인정받지 못하던 순간.

by 하루

<그림:챗GPT 출처 11/3>


1원이 더이상 돈의 가치로 인정받지 못했던 어린시절의 한 순간이 있었다.

그날 난 1초도, 1분도 버렸다.


10원이 큰 의미의 화폐의 가치를 가지고 있던 시절...20원이 없었다.

20원만 있으면 오징어게임의 달고나를 할 수 있을텐데...그때는 '뽑기'라고 했다.

남들이 침을 발라가며 우산, 세모를 뽑고 있을 때 하염없이 넋을 놓고 부러워하며 구경만 했다.

20원만 있으면! 남들처럼 그렇게 뽑기를 하고 환하게 웃을 수 있겠지.

저 맛은 무슨 맛일까. 아이들의 표정에서 읽히는 저 황홀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왜 20원도 없을까.


뽑기장수는 화려한 손놀림으로 휘리릭 그리고 탁 내리친다.

그 앞에 쪼그려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자신의 달고나를 잡고 침을 발라 우산을 만든다.

"돈 없으면 저리가!. 훠어훠어~~"

쪼그려앉아 구경도 못하고 멀리서 근처를 맴돌며 서성인다.

'나도 하고 싶어!'


어느날부터인가 1원이 길거리에 나뒹글고 있었다. 1원이 10개면 10원!

무슨 일이지 신기해하며 길거리 바닥을 뒤집고 다니며 1원을 찾아 다녔고 며칠의 노력 끝에 나의 수중엔 1원 10개와 10원 1개, 20원이 생겼다!


흥분해서 달려갔는데 놀이터는 삭막했다. 왠일인지 어느 순간 뽑기가 시들해지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매일 놀이터에서 아저씨를 기다렸다. 20원을 꼭 쥐고 신세계를 경험하겠구나 생각하며 밤마다 설렜다. 드디어 뽑기장수아저씨가 오셨다.


신나서 20원을 내며

"저 뽑기요!"

"안돼! 돈 다시 가져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돈이 있는데 다시 가져오라니.

그 순간 뭔가 더 생각도 하기 전에

아저씨의 손에서 나의 귀한 1원과 10원은 공중에 날랐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돈을 보며 그때 깨달았다.


세상은 나에게 전혀 자비로울 마음이 없구나.


이유도 모른 채 모래속을 뒤짚고 또 뒤져가며 울고 또 울며서 1원을 찾아 헤맸다.

얼굴은 붉어진 채 까맣게 햇볕에 타고 있었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길을 45년 넘게 지나칠 때마다 그 날의 슬픔이 떠올랐다.

그 길이 소름끼치도록 싫었는데...

그 길에서 아주! 아주!

더럽게 오래 살았고 지나다녔다.

시체보관소 뒷 길의 놀이터!





초등 3학년이 되어서야 시체보관소라 생각했던 곳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푸세식 화장실이였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 2학년 때 전교생의 절반이 손잡고 그곳으로 전학을 갔다. 여자 중학교였는데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오전, 오후반이 있었던 우리 학교 학생들이 손잡고 이곳으로 왔었다. 폐쇄된 건물이라 화장실이였던 것도 나중에 알았다....푸하하하...


돈이 흩뿌려졌던 그 때의 나는 5살도 채 안됐을 때였다. 어쩌면 더 어렸을지도...


중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이해의 선물>,

내 기억엔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였던 것 같은데...

은박지에 싸인 버찌 씨 몇 개를 들고 그것이 화폐인 줄 알고 사탕을 사러 온 아이에게 사탕을 주었다는 아름다운 실화다. 주인공은 그것을 통해 '배려'를 배웠다고 한다. 훈훈한 동화같은 이야기였다.


푸~~~ 지랄하고 자빠졌네.

현실은 돈이 없으면 그런 거다.

주변에 서성거릴 자격도 안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몰랐다.

왜 그날 나의 돈이 공중으로 날랐는지.

나이가 들고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10원은 괜찮지만 1원은 더이상 시중에 통용되지 않는 화폐가 되었다는 것을.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네이버에게 물어보니 통용은 되지 않았으나 세상에! 1원 통용시기가 1966년 8월 16일 1원 동전 발행부터 1992년까지라고 한다. 1992년부터 사실상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지만...이미 내가 초등 2학년 때 뽑기는 100원을 했다. 그때서야 뽑기를 했다. 몇 번을 했다. 시시했다. 100원짜리 동전의 이순신 아저씨도 시시했다. 더이상 황홀하지도 않았다. 뽑기를 할 때마다 그저 더 어린 나에게 뿌려졌던 1원이 따갑고 아팠던 기억만 났다. 그깟 뽑기!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해!



그렇게 1원의 가치가 사라지면서

1초는, 1분은 나에겐 무의미가 되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크로스핏이 말했다.


5초면 느린 나도 버피가 하나 끝나고

5초면 로잉 1cal은 타고도 남을 수 있고

5초면 파워스내치를 하나 더 할 수 있는

1초까지도 종목에 따라 깔끔하게 뭔가를 하나 더 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이라는 것을.


'뭐라고! 죽겠는데 아직 1분이나 남았어!' 속으로 외친다.


"뭐하세요. 아직 1분이나 남았어요. 하나 더!!!"

"아. 저 진짜 오늘은 안돼요. 죽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와드를 한다.

1분은 그냥 쉬기에 때로는 민망한 시간이니까.

남은 시간동안 온몸의 힘을 짜내며 운동한다.



그렇게 1분이, 1초가 다시 나에게 왔다.







keyword
이전 08화크로스핏에서 1분이란!(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