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빠덜'을 향한 첫걸음
2024년 12월 18일,
나의 첫 번째 만다라트 계획표를 완성했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이자, 이제는 글로벌 슈퍼스타가 된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 그를 보다가 '만다라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타니는 어떻게 그토록 뛰어난 야구 선수가 되었을까? 뉴스 기사에는 그의 놀라운 기록을 축하하는 내용과 함께, '인성'마저 완벽하다는 칭찬이 가득하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인성 문제로 논란이 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오타니는 어떻게 인성까지도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그가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꼽은 '만다라트'를 발견했다. 만다라트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장 중앙에 두고, 이를 이루기 위한 세부 목표들을 사방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으로, 목표를 시각화하는 도구다. 처음 본 만다라트는 마치 '초급 스도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사각형이 가득한 모습이 그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타니의 만다라트 중앙에는 ‘8 구단 드래프트 1순위’라는, 당시 그의 목표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몸만들기’, ‘제구’, ‘구위’, ‘멘털’, ‘스피드 160km’, ‘인간성’, ‘운’, ‘변화구’라는 8개의 세부 목표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각 세부 목표들에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더 작은 실천 사항들이 빼곡하게 이어져 있었다.
오타니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 만다라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 어린 나이에 이렇게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만다라트 계획표를 보며,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운'과 '인간성'이라는, 다소 의외의 항목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에게 '운'이란 '로또 당첨', '길 가다 돈 줍기', '이벤트 당첨'처럼, 어쩌다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 정도의 의미였다. '인간성'이라고 하면, '사기꾼이 아닌 사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 '매너 있는 행동' 정도만 떠올랐다. 그런데 오타니가 생각하는 '운'은 나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던 것 같다. 그의 만다라트에는 ‘운’을 이루기 위한 세부 목표로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부실(부 소속실) 청소, 물건 소중히 다루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긍정적 사고, 응원받는 사람 되기, 책 읽기 등이 적혀 있었다. 순간, 내가 얼마나 '운'을 피상적으로만 생각해 왔는지 깨달았다. 오타니에게 '운'이란, 선행을 베풀고 일상 속에서 좋은 태도를 유지하며,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인간성’ 항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타니는 인간성을 기르기 위한 세부 목표로 ‘감성 키우기’, ‘사랑받는 사람 되기’, ‘계획성 갖추기’, ‘배려심 가지기’, ‘감사 표현하기’, ‘예의를 지키기’, ‘신뢰받는 사람 되기’, ‘지속력 기르기’ 등을 적어 두었다. 실력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인성을 가다듬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오타니의 기사를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질투심이 일었다. 고작 한 살 차이인데, 그는 이미 뛰어난 실력과 부를 모두 성취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런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실제로 그가 세운 만다라트의 많은 부분을 이미 이뤘다고 생각하니, 과연 나는 지금까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그저 게임 레벨을 올리기에 급급했고, 중학교 때는 좋아하는 과목의 점수를 잘 받는 것이, 고등학교 때는 여학생에게 고백하는 것이, 군대에서는 그저 살을 찌우는 것이 목표의 전부였다. 멀리 내다보지 못한 채, 그저 눈앞에 놓인 단순하고 즉흥적인 목표만을 좇았던 지난날들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더 부끄러운 것은, 그마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목표들이 태반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게임 레벨을 올리고, 체중을 늘렸을 때는 (비록 짝사랑으로 끝났지만 이성친구 사귀기는 실패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쾌감은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졌고, 나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대신, 사라진 쾌감의 잔상을 좇아 또다시 즉흥적인 목표를 세우고는 했다.
이제 와서 과거의 나를 탓하거나 후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있는 가장으로서, 제대로 된 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가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금 살고 있는 다가구 주택보다 넓고, 방 개수도 더 많고, 무엇보다 수압 걱정 없이 따뜻한 물로 마음껏 씻을 수 있는 ‘내 집’ 마련의 꿈. 월 400만 원씩 꾸준히 저축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은 소망. 취미인 수영과 자전거를 꾸준히 연습해서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출전하고, 더 나아가 입상까지 해보고 싶은 욕심. 나아가 내가 가진 영상 촬영 및 편집 능력을 발휘해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바람까지. 이 모든 것이 결국엔 ‘더 나은 삶’을 향한 갈망이었다. 만약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처럼 단순히 눈앞의 상황만 보고 판단했다면, 여전히 '아파트로 이사 가자!', '돈 많이 벌자!', '운동 잘하자!'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은 더 성숙해진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몇 평의, 어떤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은 건데?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는데, '많이'의 기준은 뭐지? 운동을 잘하고 싶다고? 그렇다면 '잘한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냥', '잘', '많이' 같은, 기준도 모호하고 뜬구름 잡는 목표가 아닌, 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했다. 이사를 간다면, 지금 살고 있는 방 3개짜리 다가구 주택보다 넓고, 수압 걱정 없이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아파트로 가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월 400만 원 이상 저축하고 싶다. 그래야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질 테니까. 운동을 잘하고 싶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대회에 나가서 수상하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있을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내 안의 수많은 '그냥'들을 하나씩 구체화해 나갔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만큼 그동안 얼마나 막연하게, 대책 없이 살아왔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모든 것을 하고 싶은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또 한 번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진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멋진 아빠’였다.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은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부모님의 잦은 다툼까지...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온 나는, 훗날 내 아이에게는 나와 같은 결핍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멋진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아파트를 떠올렸고, 아버지가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보여주고 싶어서 트라이애슬론 대회 입상을 꿈꾸게 되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나도 오타니처럼 가슴속에 품은 큰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목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 스스로도 그 목표를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만 급급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기는커녕, 실천은 하지 않고 회피하기에 바빴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살아왔다는 것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동안 외면해 왔던 진실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 조금 늦었을지 모르지만,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나아가 보려고 한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 아빠'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그래서 나도 오타니처럼 나만의 만다라트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아빠가 되기 위한 과정에는 경제적인 준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세운 목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들을 이 일지에 기록해 나가겠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기록들이 모여, 언젠가 내가 꿈꾸는 '멋진 아빠'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다가가기 위한 작은 실천들을 하루에 하나씩 이 글에 기록해 나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멋진 아빠(굿빠덜)'이라는 원대한 꿈을 만다라트 가장 중앙에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