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름과 갈증의 차이
목마름을 겪는 자는 어느정도 웃으면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자기 입속에 담긴 타액을 삼켜가며, 버틸 수는 있는 정도이다. 몸이 간질거리지도 않는다. 그저 참는다는 경계도 없다. 다만 갈증이란 다른 의미이다. 갈증은 쩍 갈려져 있는 땅덩어리처럼 목 전체가 몹시 물을 갈망하는 정도이다. 이때는 몸 여기저기에 집중하게 되며, 다른 것은 눈에도 안 들어오게 만든다. 오직 머릿속에는 '물' 하나만 있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목표가 단지 목마름 정도에만 속한다면, 그건 목표와 걸맞는 행동을 하루 이틀정도 안해도 눈 감아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건 모든 화근의 시초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늘 갈망하는 상태를 일부러 만들지 않는 이상, 편안할수록 그 행복에만 녹아들게 된다. 바뀌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나도 내 목표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목마름 정도의 수준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내가 속일 뻔 했구나. 하면서 계속 나만의 수행을 이어나가자고 설득했다. 세상 모든 달콤한 속삭임도 내 안에서 생긴 속삭임보다는 못할 것이다. 내 뇌가 날아오는 총알보다 더 센 존재이고, 유대인 랍비의 말처럼 교육이 칼보다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 이롭게 적용될수도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에게도 해롭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두뇌는 가장 강력한 동반자이자, 내가 믿을 수는 있으나, 너무 믿으면 해로운 존재이다. 타협의 형태가 옳지 못한 방향이라면 그건 오히려 독이 될수 있다. 반대로는 도움과 성장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친구(두뇌)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갈망하는 정도가 내 의지만큼 비례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 얘기는 너무 옛날때부터 들어온 말인지라, 요즘은 "당신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도파민 조절이 문제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다" 같은 내용의 영상들이 많이 나오지만, 나는 아직도 의지와 개인적인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심리적인 근거들로 인해, 내 의지가 강하지만 그 기준에 못 미쳐서 힘들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건 다른 의미에서 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의 변수들은 통제불가능 하듯이, 편안함이라는 변수로 인해 오늘은 조금만 할까? 같은 속마음이나, 날씨나 컨디션은 모두 받아들이는 속마음에 한해서 변수로서 작용하니, 통제할 수 없는 이러한 변수들에 대해서 뇌가 반응하는 그 속마음에 속지말고, 일단은 버티면서 해야 한다.
이상은 감정이 만들고, 손익은 이성이 따진다. 그럼 힘들때마다 물어보자.
한번만 더 해보자.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