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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설 Mar 18. 2024

[화조풍월 연작 2] 鳥 : 까마귀와 카나리아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화조풍월 (花鳥風月)

명사 | 꽃과 새와 바람과 달이라는 뜻으로, 천지간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일반적으로 풍류를 일컫는 말이며, 혹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쓰인다.





    어느 지방에 까마귀 한 마리를 새장에 넣어 여행을 다니는 나그네가 있었다. 나그네는 까마귀의 검은 깃털과 짙은 눈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나그네는 까마귀와 친구로서 함께한다는 사실을 매우 다행이라 여겼다.

      어느 날 자주 가는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는 카나리아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나그네는 평소에 카나리아에 깊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그네는 카나리아의 알록달록한 깃털과 밝은 눈동자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그네는 카나리아도 같이 여행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나그네가 가진 경비로는 까마귀 한 마리만 굶지 않게 할 여유 밖에 없었다. 카나리아를 뒤로 하고 마을을 나온 나그네의 머릿속은 카나리아가 가득 찼다. 그때부터 나그네는 까마귀의 검은 깃털과 짙은 눈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그네는 까마귀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까마귀만 없다면 카나리아와 여행을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그네는 여전히 까마귀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나그네는 자기 손으로 직접 까마귀를 내쫓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새장에 자리가 있어도 카나리아가 자신과 같이 떠날 거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나그네의 카나리아에 대한 잡념은 깊어져만 갔다. 결국 나그네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그네는 소중한 까마귀와 검은 깃털, 짙은 눈보다 더 아름다운 카나리아를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마을로 돌아간 나그네는 카나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주저 없이 카나리아의 목을 잘랐다. 피가 나그네에게, 그리고 까마귀에게도 튀었다. 나그네는 흔적도 남지 않도록 카나리아의 몸과 머리에 불을 붙였다. 불이 줄어들고 나그네가 잿더미를 뒤져보자 안에서 카나리아가 나왔다. 알록달록한 깃털과 밝은 눈동자는 새까만 깃털과 새까만 눈동자로 타 버렸고 몸은 전체적으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나그네는 타다 남은 카나리아를 피범벅이 된 까마귀에게 밥으로 주었다. 나그네는 '이제 보니 까마귀가 카나리아보다 더 알록달록하고 더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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