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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Mar 25. 2024

당신도 바람  필줄 아는 남자였니?

[외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편의 가출이 6개월간의 별거가 될 거라고는 남편도 나도 예상한 바가 아니다.

남편이 없는 생활은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늘 불편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고...


그 후로도 부부싸움 후에 남편은 외박을 했지만 버르장머리를 고치자며 내가 현관 비번을 두어 번 바꾼 후로는 쫓겨날까 봐 무서운지 절대 외박을 안 한다.


주. 색. 잡기의 3종세트 중 남편은 주, 잡기에는 능했어도 '색'에 관하여는 속 썩 일 일이 없을 거라고 믿었었다.

평소에 내가

"당신 바람은 절대 피우면 안 돼 알았지?"라고 말을 하면 내가 듣고 싶은 정답은

"내가 널 두고 누굴 만나겠니? 절대 그럴 일 없으니 걱정 마"인데

남편은 항상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냐"며 미심쩍은 대답을 했다.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사귀겠냐는 뜻이냐고 다그쳐 물어도 그 대답을 수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바람 안 피운 남자가 있다면 그게 내 남편일 거라 믿었으니 참 어리석기 짝이 없다.

다른 여자는 거들떠도 안 보고 오직 배우자만 보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꼭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한다.

정신과를 가든 비뇨기과를 가든.

지금은 그 말에 100% 동의하지만 적어도 그때는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의 행동이 의심스러워도 일부러 휴대폰을 뒤지거나 뒤를 밟을 필요는 없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드러나야 할 일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되기 때문이다.


20년 전인가... 오래전 이야기다.

피곤한 몸으로 꿀잠을 자고 있는 한밤중에 집으로 전화가 왔다.

당시 집전화에 발신자표시 서비스가 시범적으로 운영될 때라 호기심 많은 나는 일찍이 신청해서 쓰고 있었는데 낯선 휴대폰 번호라서 혹시나 하고 받았다.

"거기 000 씨 집이죠? 와서 데려가세요"

목소리만 들어도 엄청 싸움 잘할 것 같은 드센 여자 이미지가 확 풍기는 말투였다.


술집에서 술값 계산을 안 한 모양이군...


어디라고 말도 안 하고 뚝 끊어 버리는 게 이상해서 다시 그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남편 휴대폰으로 전화했다.

"당신 바람피우냐? 웬 여자가 전화를 했던데?"

그냥 던진 말에 남편은

"나 꽃뱀한테 걸린 거 같아. 나 좀 구해줘."라며 얼토당토 안 한 이야기를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런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건지...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었다.


상간녀는 남편이 두려워할 만 존재였다.

그 여자의 치밀함에 나도 소름이 끼쳤으니까.

남편 휴대폰을 뒤져서 집전화번호를 알아냈고, 집으로 전화해서 아들이 받으니 엄마 친구라며 거짓말을 해서 집도 알아낸 상태다.

아침 일찍 집 근처에서 잠복하다가 내가 출근하는 뒤를 밟아서 버스까지 따라서 타고 직장까지 알아 두었다.

친구와 함께 손님인 척 다시 방문해서 내 명함까지 받아갔다.

남편에게 내 명함을 보여 줬을 때 남편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치가 떨렸다고 했다.

나에게 걸리는 건 시간문제라 여겼기 때문이겠지.


한마디로 상간녀가 우리 집 내막을 속속들이 다 아는 것이다.

그러면서 걸핏하면 집에 전화해서 폭로하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해서 남편이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며 지냈는데 그날은 뭐가 뒤틀렸는지 직접 행동을 한 것이다.

자기 전화번호가 찍힐 줄도 모르고...


그때부터 남편과 상간녀, 그리고 나.

셋의 전쟁 같은 싸움이 시작됐다.

그 여자는 모성애도 없는지 군대 갔다가 휴가 나온 아들을 시켜 내 직장으로 전화해서 나를 협박했다.

말이 협박이지, 20대 초반의 청년이 뭘 하겠는가.

"000 씨죠? 남편 단속 똑바로 하세요!"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떨리는 걸 나는 느꼈다.

상간녀는 전방위적으로 나를 압박하고 싶었나 본데 방법이 유치하고 저질스러웠다.


나도 잃을 것이 없는 상태라 되려 그 아들을 협박했다.

엄마의 은밀한 사생활이 담긴 영상을 확보하고 있으니 마음대로 하라며 거짓말을 했는데 순진한 아들이 순간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말을 못 하고 어버버 어버버 어지간히 당황했나 보다.


'나쁜 년... 이런 아들한테까지.... 넌 진짜 엄마 자격도 없는 년이다...'


꽃뱀한테 걸렸다며 구해달라던 남편은 이미 다 들통이 났음에도 매몰차게 상간녀를 떼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 여자가 나를 많이 좋아하나 봐"라며 귀신 씨나락 까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네가 지금 네 무덤을 파고 있구나.'


아이들이 있는데서 이런 문제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남편은 끝까지 자기는 좋아한 적도 없고,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라고 했다.

끝까지 속 뒤집는 소리를 하는 이 남자는 정말 다 없는데 그중에 눈치가 제일 없다.


'이 와중에 그걸 말이라고 하니???'


이럴 땐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는 거야 이 바보야.

스타일 어쩌고 하면서 속을 긁을게 아니고.


눈치 없는 게 죄는 아니지...

나와 살기 위해서 남편은 내 말을 따라주려고 노력 한건 인정해 준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오기.

퇴근 후 휴대폰 반납하기.

그 여자의 전화나 문자에 절대 대응하지 말 것.

(통신사에 확인할 것이라고 협박했는데 먹혀들어 감)

등등...


전화를 안 받으니 상간녀는 마지막 발악을 했다.

남편이 일하는 곳까지 찾아가 자기가 상간녀라며 바람피우는 남자도 일할 수 있냐고 망신을 주기까지 했다.

그뿐 아니다.

남편이 쉬는 날을 어떻게 알고 내가 출근한 후 집에 와서 남편을 데리고 나갔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집에 있을 때인데 "아빠 어깨가 축 처져서 그 아줌마 따라갔다"는 말에 내가 완전히 꼭지가 돌았었다.


'니년이 기어이 선을 넘었구나.'


그때부터 나는 복수를 시작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지. 맞는 말이다.

아이들이 치욕스럽고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한 그 상간녀를 절대 가만 두지 않으리라.


다행인 것은 남편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물으니 마치 거짓말 탐지기 앞에라도 있는 듯 이실직고했다.

어느 모텔을 주로 다녔으며, 어느 술집에서 만나고, 그 여자의 집은 어디인지까지 상세히 알려줬다.

먼저 상간녀 집의 등기부 등본을 떼 봤다.

사해행위로 인한 어쩌고... 압류를 잡힌 적도 있고... 압류를 잡은 사람의 인적사항을 보니 그 여자 집에서 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개인정보보호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인적사항을 얼마든지 조회할 수 있었다.

인맥을 동원해 그녀의 가족관계도 열람했다.


남편에게 들은 말과 서류를  조합하여 시나리오를 만들어봤다.

두 번의 이혼으로 성이 다른 아들과 딸이 있고, 아들은 군대에 갔고 딸은 이혼한 생부가 키우고 있으며 이혼 과정에서 그 여자의 집에 전남편이 압류를 한 것으로 정리가 됐다.


상간녀는 남편이 전화를 안 받으니 작전을 바꿨다.

매일 아침 집으로 전화해서 여자끼리 얘기를 하자며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하고, 남편의 또 다른 내연관계를 자기가 알고 있다면서 미혹도 했다.

'너도 속고 있어. 내가 도와줄게'하는 뱀의 속삭임으로 끊임없는 구애(?)를 했다.

하마터면 나도 넘어갈 뻔했다.

상간녀에게 들은 말로 따졌더니 그 말을 왜 믿냐고 하는 남편이 오히려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내 남편에게도 접근했겠지...


사람이 살면서 거짓말을 안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정말 안 하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을 안 만나서 안 했을 뿐이다.

상간녀와 상대하면서 나는 수도 없이 거짓말을 했다.


"나도 애 키우는 엄마 너도 애가 있는 엄마니까 참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이건 아닌 거 같다.

애들이 보는데서 남편을 데리고 가?

그거까진 하지 말았어야지.

나 너네 둘 간통으로 집어넣을 거야.

나도 이 마당에 남편하고 살 생각도 없고.


너 남편한테 증거 없으니까 무조건 잡아떼라고 시켰지?

내가 증거가 없어?

너 00 모텔 다녔더라. 거기 cctv 있는 거 몰랐지?

내가 어렵게 구했다.

그리고 너 지난번 이혼할 때도 법적으로 좀 복잡했던데 이번에 한번 제대로 들어가 봐.

내가 말을 안 하니까 몰라서 그런 줄 알지?

야, 전남편도 너네 집이랑 가까운데 살던데, 아들이랑 딸 앞에서 개망신 한번 당해  봐.

변호사 사무실에 있는 친구한테 자료 넘긴 상태라 그 친구는 바로 착수한다고 해도 내가 너네 애들 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네가 이렇게 나오면 봐줄 필요도 없지.

내가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집으로 전화해.

그럼 나는 바로 친구한테 전화할 거고, 집으로 법원에서 서류 갈 테니까 둘이 감방 다녀와서 잘 살아라.

행운을 빈다"


솔직히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상간녀가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카드가 처음이자 마지막 카드였으니까.

그런데 의외였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이 그 여자에게 연락이 왔다고 했다.

앞으로 연락 안 할 테니 잘 먹고 잘살라고 했다면서 당신 마누라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든 걸 다 알고 있더라고 했단다.

남편도 그 여자랑 똑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근데 너 그런 거 다 어떻게 알았어?"

하며 신기해했다.

"나 몰라? 맘먹으면 뭐든 하는 거"

"알지. 당연히 알지. 넌 한다면 하는 거"


그렇게 정리가 깔끔하게 됐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그 후에도 그녀는 자기가 아닌 척, 스팸 문자인 척 남편에게 끈질기게 문자를 했다.

그리고 발신번호가 다른 공중전화로 전혀 다른 사람인척 나에게 전화해서 욕을 하고 끊는다거나 가끔은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사람이라며 겁을 주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남편이 그 여자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겁도 없이 남편의 불륜 장소는 집과 가까운 먹자골목이었다.

한 번은 호프집에 들어갔는데 상간녀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호프집 여주인이 묻더란다.

저 여자 어떻게 아느냐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까 그 여주인 하는 말이

그 상간녀의 수법은 늘 비슷하다.

그리고 상습적이다.

이 동네에서 소문난 여자다.

자기 친구도 두 명이나 남편이 저 여자랑 바람이 났었는데 저 여자는 끈질겨서 절대 혼자 끊어낼 수 없다.

집에 말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야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남편이 그 여자를 '꽃뱀'이라고 부른 이유다.

꽃뱀이라는 말도 아까운 여자다.

추잡스럽기는...


그 일 이후 나는 상담을 다녔다.

2주에 한번 한 시간씩 상담을 하며 6개월가량 꾸준히 다녔던 것 같다.

"이제 남편의 외도에 관한 건 다 치료가 되었어요"

라는 말을 듣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장담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신기하게 그 이후로는 그 일로 인해 남편을 의심하거나 분노하는 일이 없다.

인생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억될 뿐이다.


나는 그래서 이런 일이 있는 사람에게 꼭 치료를 권한다.

내가 괜찮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다.

곪은 채로 묻어두면 언제 어떤 상황에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바람이라는 것은

대상, 때, 장소만 맞는다면 누구에게나 비껴갈 수 없는 유혹이다.

남편뿐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수 있냐는건 세상에 없다.

모든 사람은 그럴수 있다.

자신의 나약함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뿐이고

들키고 안들키고의 차이다.


남편의 바람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있어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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