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 남편과의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려고 한다.
주변사람들에게 자기 상황을 이야기하면 열이면 열 모두 다 이혼하라고 한다.
이혼의 사유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새댁은 이혼을 반대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냥 이혼을 결정하면 뭔가 놓쳐서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고 한다.
열명이 반대하고 딱 한 사람이 이혼을 말렸는데 새댁은 그 사람 말에 동의가 되어 이혼을 보류했다.
이혼을 할 만큼 오만정이 다 떨어지진 않았나 보다.
'요즘 이혼은 흠도 아니야'
라는 말이 팽배하지만 이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결정을 하면서도 맞는지 의심하면서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았을 것이다.
이혼을 하고도 아닌척 거짓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이혼을 안 했다기보다는 못했다.
용기도 없었고, 손익을 따졌을 때 이혼을 해서 얻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내가 참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그때마다 화를 내며 풀어버려서 오히려 남편이 더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이혼충동을 느낄 때는 남편이 미워서 엿이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 없이 혼자 살면서 고생을 좀 해봤으면 하는 마음.
내가 아는 몇몇 이혼남들은 이혼 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치아가 빠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젊은 나이인데도 그럴 정도면 이혼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힘든 일인것 같다.
나에게도 이혼을 선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들이 몇번 있었다.
처음 이혼을 선포했을 때 남편은 도망쳤다.
사나흘동안 잠적했다가 혼자 들어올 용기가 없었는지 친구를 앞세워 들어왔다.
자존심이 상할 때마다 먼저 이혼을 부르짖는 남자치고는 소심하고 모양이 빠지는 행동지만 남편도 이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가 자기와 달리 습관적으로 이혼이라는 단어를 내뱉지 않았고
"이혼할 때 하더라도 그런 말을 쉽게 하면 안 돼"
라고 말을 해 왔었기에 나의 이혼선언은 남편에게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그 후로는 이혼이야기를 예전처럼 자주 하지는 않는다.
이혼을 한다 쳐도 보이는 귀책사유는 대부분 남편에게 있기에 남편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성격차이, 가치관의 차이도 이혼사유가 되는 마당에, 외도와 가정에 대한 무책임은 누가 봐도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남들이 인정을 하고 안 하고 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
나에게 조언을 하거나 쉽게 이혼을 권유하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어려울때 돕던 사람들이 아니다.
"왜 그러고 살아? 나 같으면 당장 이혼했겠다"
라며 쉽게 말을 뱉어버리고 남의 행, 불행을 판단하고 결정하려는 사람이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말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누가 이혼한다고 하면 나는 말리는 편이다.
이유는 한 가지다.
기회.
회복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혼을 돌이키기는 어렵지만 보류한 이혼은 언제든 할 수 있으니 늦은 이혼이란 없다.
이혼을 항상 마음에 두고 살더라도 예기치 않게 관계회복의 기회가 온다.
이렇게 자신할 수 있는 것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이혼해야 새 출발을 하기가 좋다고들 말한다.
과연 새 출발 한 사람들이 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일까.
나의 주변에 이혼한 사람도 많고, 재혼 후 또 이혼한 사람들도 있다.
아프리카 선교보다 힘든 것이 재혼이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모든 커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초혼 때보다 오히려 재혼하여 잘 사는 친구도 있다.
(내가 아는 한커플만 그렇게 살고 있다)
그 친구가 모델이 되어 재혼을 꿈꾼다면 워렌버핏을 보고 주식투자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10년 전의 내가 지금과 다르듯 남편도 달라지고 변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들 말하지만 그 말은 자기 자신은 절대 고쳐지지 않을꺼라는 신념의 반증이다.
고쳐질 기회가 있고, 달라질 기회가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여전히 내 결혼이 진행 중인 것이다.
실제로 긍정이든 부정이든 달라진 부분이 많이 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나누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내가 좋으면 긍정이고 싫으면 부정인 것이다.
내 감정을 나조차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편과 사이가 좋을 때는 밥을 먹다가 재채기를 해도 약간 짜증은 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사이가 나쁠 때는 그게 그렇게 지저분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지저분하다 못해 더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 내 마음도 제어가 안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