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수편의 글을 통해 나는 남편을 고발했다.
그러나 내가 썼지만 나의 이야기는 쏙 빠져서 남편만 나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남편의 눈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늘 궁금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글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다.
글을 마칠 때쯤 되면 우리 관계에 뭔가 변화가 있을까.
나는 남편이 돈을 제대로 주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졌고, 돈만 제대로 준다면 이렇게 싸울 일도, 오해할 일도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남편의 화투도박은 결혼 전부터 있던 습관이었다.
그때는 지인들과 가끔 하는 것이니 본인도 여가를 즐기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나와 연애를 하는 중에는 도박보다 연애가 더 좋았을 테니 당연히 도박도 잠시 휴지기를 가졌고, 나는 남편이 그런 것을 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남편은 결혼 후 가족모임을 비롯해서 친구들을 만나도 심심찮게 화투를 쳤고, 심각성에 대해 나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화투로 빚을 지거나 중독이 되는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을 뿐, 내 주변엔 없었기에 남편이 하는 행동에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방치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 큰아이 네 살 때다.
남편이 밖에서 화투를 치면 밤을 새우고 노느라고 외박을 하게 되니 차라리 내가 보는 눈앞에서 하라고 했다.
남편은 화투꾼들을 집으로 불렀고, 그때부터 작은방은 노름방이 되었다.
바보같이 나는 그 사람들에게 간식까지 챙겨주며 시중을 들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다.
노름방엔 담배연기 때문에 아이들을 못 들어가게 했는데도 조금씩 봤던 모습이 각인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청소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조용해서 보니 두 아이가 문이 열린 노름방에서 화투로 어른 흉내를 내며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퇴근한 남편에게 다 갖다 버리라고 했다.
이러라고 했다가 저러라고 했다가 변덕을 부렸지만, 자기 생각에도 잘못이라고 여겨졌는지 남편은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 후 남편의 외박은 다시 시작됐다.
끊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면 손목으로라도 하는 게 도박중독이라는데 나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나의 행동이 있다.
외박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궁여지책으로 머리를 쓴 것이 도박으로 돈을 따면 절반을 나에게 주라고 한 것이다.
돈 주는 게 아까워서 그만둘 거라 여겼는지, 돈이라도 받아야 용서가 될 것 같았는지 아무튼.
남편은 그때부터 외박 후에 나에게 돈을 줬고, 그 돈은 도박과 외박의 잘못을 동시에 탕감받는 면죄부가 됐다.
어쩌면 돈을 다 잃어도 나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서 땄다고 하며 돈을 줬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도박중독에 내가 탄탄한 아스팔트를 깔아 준 셈이다.
그러고 지금에 와서 남편 탓을 하고 잘못을 지적하며 그깟 중독하나 잘라내지 못하는 남편이라고 무시하고 있으니...
남편의 중독은 여전하다.
어쩌다 본 남편의 휴대폰에 '빌려준 돈 갚으라'는 도박멤버의 문자가 있었지만, 남편은 나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노름한다고 빚을 져서 대신 갚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쉬는 날 좀 노는 걸 가지고 유난이냐.'
그렇다.
남편은 나에게 빚을 갚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번돈을 집에 주지 않고 도박으로 탕진했으니 빚을 진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만 탓할 수 없는 것이 남편의 지금 모습에 나의 책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박이 끊기 힘들다고 해도 내가 처음부터 단호하게 대했더라면 남편이 지금의 모습으로까지 오진 않았을 것 같다.
며칠 동안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만일 이혼을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하면 항상 마음이 한쪽이 무거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남편이 없는 집이 편한 것도 사실이다.
가끔 문상 가느라 못 들어오는 날은 마치 휴가라도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못해 들뜬다.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내 기분이 가라앉고 짜증이 나는 날도 있다.
집안의 분위기는 대부분 아내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내 기분이 안 좋으면 딸도 기분이 안 좋다고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은 나와 남편뿐 아니라 함께 사는 딸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이혼?
말도 안 된다.
그러니 오해라면 풀어야 하고 이해받아야 할 일은 이해받고, 용납해야 한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라 피하고 싶지만 남편과 대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남편은 퇴근하면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아파트 주차장에 파킹해 놓고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내가 운동하러 나가고 나면 그때 들어온다.
가끔 내가 좀 늦게 운동하러 나가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오늘은 남편이 있는 주차장으로 그를 만나러(?) 나갔다.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다.
분노버튼이 눌러지면 나 스스로도 감정이 주체할 수 없기에 먼저 내 감정을 다스려 달라고...
온전히 맡기겠으니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달라고...
그리고 남편의 마음을 열어달라고...
마지막으로 만약 지금이 화해의 때가 아니면 남편 차가 그 자리에 없기를 기도했다.
변함없이 남편은 차 안에 있었다.
운전석 옆에서 서서 유리를 톡톡 두드렸다.
휴대폰을 보고 있던 남편이 깜짝 놀라서 돌아봤다.
"옆에 타도 돼?"
남편이 주섬주섬 옆자리를 정리했다.
내가 앉자마자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나에게 돈을 꺼내줬다.
한참 전부터 주기로 약속한 돈이다.
계속 생활비를 주지 못한 이유가 따로 계를 들어서라고 했고, 그걸 이번에 타니 주겠다고 한 거다.
(요즘도 계를 하는 사람이 있나 보다)
금액은 약속한 액수에서 절반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켰다.
남편이 변명을 했다.
지인이 선물옵션에 투자하라고 해서 했다가 400만 원을 잃었다고 했다.
한심했지만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왜 그렇게 귀가 얇아? 당신 그런 사람 아니잖아.
신혼 때 오빠랑 형부랑 다단계 하면서 당신을 그렇게 꼬셔대도 안 넘어가던 사람이..."
남편이 내 말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만 부탁을 한다고 했다.
"제발 버럭 화부터 내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내가 말하면 그 말에 너는 더 화를 내니까"
남편말을 부정할 수 없다. 다 맞는 말이니까.
"그때는 내가 감정이 꼭대기에 있을 때니까 그렇고 지금은 아니니까 말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기도하면서 '나는 없다'라고 부인한 상태라 감정의 동요는 없다.
"넌 나랑 싸우면 자꾸 나가라고 하잖아.
근데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정말 내가 일도 못하게 되면 집에서 버려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럼 나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거 같아서 아는 사람이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면서 나한테도 해보라길래 한 거야.
근데 다 잃었지.
그러고 나서 다신 안 하기로 했어"
이렇게 이실직고하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반성까지 하니 더더욱 덮어줘야 할 일이다.
물론 남편 말이 100%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여부가 오늘 대화의 본질은 아니다.
주식으로 폭망 한다는 걸 깨달은 걸로 치면 교육비 400만 원은 싸지...
앞으로 정말 정신 차리고 나에게 잘하겠다며 진심을 다해 말했다.
이런 고백은 처음이 아니다.
그때마다 의심을 하면서도 그 말을 믿었던 것은 돈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오직 돈에 대한...
말을 하는 그 순간에 남편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의지박약이고,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보다 자기가 즐기는 술자리와 노름방의 유혹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남편의 잘못은 누가 들어도 잘못한 게 맞다.
반대로 나는 지능적인 사람이라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죄가 무죄임을 설득할 수 있다.
내 잘못이 드러나지 않게 잘 포장하는 기술이 있다.
남편은 10여분 정도 나랑 얘기하면서
"내가 잘못한 게 많으니까"
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나는 기껏해야
"나도 그래"
라는 말로 가볍게 넘기면서 석고대죄하는 표정으로 말하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나야말로 하나님의 '덮어주심'이 없었더라면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이 고스란히 드러날 죄인이다.
100 데나리온의 죄에 무거운 죄책감을 갖는 남편을 책망할 자격이 있을까.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이미지는 '생활력 강한 실질적 가장'으로 각인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남편은 도박, 술, 바람등으로 버는 돈을 거의 탕진한 무책임한 가장이다.
그러나 나를 남편처럼 낱낱이 고발한다면 오히려 남편이 불쌍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매일 속아도 또 다음날이 되면 믿고 싶다.
믿어지지 않지만 믿고 싶다.
이것은 남편 사랑이 아니고 돈사랑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정.
가정을 훼손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예전엔 이혼 안 하는 엄마가 정말 이해가 안 됐어.
왜 그러면서까지 사는지...
근데 지금은 고마운 마음이 커.
엄마.
가정을 지켜줘서 고마워"
요즘 가끔 딸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올해로 딸은 서른넷이 됐다.
벌써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딸은 아직 모태솔로다.
부부싸움을 많이 보여준 내 탓일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 탓이라기보다 아직 짝을 못 만났을 뿐이라는 것에 무게를 싣는다.
그러고 싶다.
"내가 아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빠가 집에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우울할 것 같아.
투닥거리며 싸우더라도 엄마랑 아빠가 있는 평범한 집이 요즘 정말 감사해.
아빠 때문에 고생한 엄마를 보면서 힘든 때도 많았지만 이렇게 건강한 가정이 될 때까지 인내한 엄마가 정말 존경스러워."
영원히 평행선위를 걸을 것 같던 남편과는 요즘 가끔 맞을 때가 있다.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남편을 다 알 수는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다.
좌로 가라면 우로 갈 정도로 내 말이라면 지겹게도 안 듣던 남편이 내 말을 듣는다.
듣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말을 하면서도 이건 틀린 말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조차 남편은 내 말이 맞다고 한다.
딸은 내가 달라져서 아빠가 변한 거라고 말을 해준다.
나도 안다.
남편들은 단순해서 아내가 조금만 달라져도 그들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딸이 없으면 남편과 한집에 있는 게 불편했던 내가 요즘은 딸을 독립시킬 계획을 하고 있다.
남편과 둘만 남아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이제 진정한 동료애(?)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