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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Mar 29. 2024

나의 결혼이 실패하지 않은 이유

[깨끗한 호적이 최고의 유산]

지금까지 수편의 글을 통해 나는 남편을 고발했다.

그러나 내가 썼지만 나의 이야기는 쏙 빠졌다.

그래서 남편만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남편의 눈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글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다.

글을 마칠 때쯤 되면 우리 관계에 뭔가 변화가 있을까.


나는 남편이 돈을 제대로 주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졌고, 돈만 제대로 준다면 이렇게 싸울 일도, 오해할 일도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최근에 내 상한 마음의 원인이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며칠 동안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만일 이혼을 한다면?

이라고 가정을 해도 여전히 마음은 편치 않을 것 같다.

우울이 온몸을 지배할 만큼 그 생각에 깊이 빠졌다.

결심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나와 남편뿐 아니라 함께 사는 딸의 정신건강까지도 해치고 있었다.

그러니 오해라면 풀어야 하고 이해받아야 할 일은 이해받고, 용납해야 한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라 피하고 싶지만 남편과 대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퇴근하면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아파트 주차장에 파킹해 놓고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내가 운동하러 가고 나면 그때 들어온다.

그러다가 내가 좀 늦게 운동하러 나가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남편을 만나러(?) 나가기 전 기도한다.

분노버튼이 눌러지면 나 스스로도 감정이 주체할 수 없기에 먼저 내 감정을 다스려 달라고...

온전히 맡기겠으니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달라고...

그리고 남편의 마음을 열어달라고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만약 지금이 때가 아니면 남편 차가 그 자리에 없기를 기도한다.


변함없이 남편은 차 안에 있다.

운전석 앞에 서서 유리를 톡톡 두드렸다.


"옆에 타도 돼?"


남편이 주섬주섬 옆자리를 정리한다.

내가 앉자마자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나에게 돈을 꺼내준다.

한참 전부터 주기로 약속한 돈이다.

계속 생활비를 주지 못한 이유가 따로 계를 들어서라고 했고, 그걸 이번에 타니 주겠다고 한 거다.

(요즘도 계를 하는 사람이 있나 보다)

금액은 약속한 액수에서 절반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켰다.

남편이 변명을 한다.

지인이 선물옵션에 투자하라고 해서 했다가 400만 원을 잃었다고 한다.

한심했지만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왜 그렇게 귀가 얇아? 당신 그런 사람 아니잖아.

신혼 때 오빠랑 형부랑 다단계 하면서 당신을 그렇게 꼬셔대도 안 넘어가던 사람이..."


남편이 내 말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만 부탁을 한다고 했다.


"제발 버럭 화부터 내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내가 말하면 그 말에 너는 더 화를 내니까"


남편말을 부정할 수 없다. 다 맞는 말이다.


"그때는 내가 감정이 꼭대기에 있을 때니까 그렇고 지금은 아니니까 말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기도하면서 '나는 없다'라고 부인을 한 상태라 감정의 동요는 없다.


"넌 나랑 싸우면 자꾸 나가라고 하잖아.

근데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정말 내가 일도 못하게 되면 집에서 버려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럼 나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거 같아서 아는 사람이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면서 나한테도 해보라길래 한 거야.

근데 다 잃었지.

그러고 나서 다신 안 하기로 했어"


이렇게 이실직고하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반성까지 하니 더더욱 덮어줘야 할 일이다.

주식으로 폭망 한다는 걸 깨달은 걸로 치면 교육비 400만 원은 싸지...

앞으로 정말 정신 차리고 나에게 잘하겠다며 진심을 다해 말한다.


이런 고백은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또 믿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말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임을 안다.

하지만 인간의 나약함을 내가 모르는 바도 아니고, 우리는 모두 의지박약이라 환경이 바뀌면 장사가 없지 않은가.


남편의 잘못들은 누가 들어도 잘못한 게 맞다.

반대로 나는 지능적인 사람이라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무죄를 설득할 수 있다.

내 잘못은 드러나지 않게 잘 포장할 줄 아는 기술이 있다.


남편은 10여분 정도 나랑 얘기하면서 "내가 잘못한 게 많으니까"라는 말을 여러 번 한다.

나는 기껏해야 "나도 그래"라는 말로 가볍게 넘기면서 석고대죄하는 표정을 짓는 그를 바라보았다.

나야말로 하나님의 '덮어주심'이 없었더라면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이 고스란히 드러날 죄인이다.

100 데나리온의 죄에 무거운 죄책감을 갖는 남편을 책망할 자격이 있을까.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이미지는 '생활력 강한 실질적 가장'으로 각인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남편은 도박, 술, 바람등으로 버는 돈을 거의 탕진한 무책임한 가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를 남편처럼 낱낱이 고발한다면 오히려 남편이 불쌍한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매일 속아도 또 다음날이 되면 믿고 싶다.

믿어지지 않지만 믿고 싶다.


"예전엔 이혼 안 하는 엄마가 정말 이해가 안 됐어.

왜 그러면서까지 사는지...

근데 지금은 그래도 가정을 지켜줘서 고마워"


요즘 가끔 딸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올해로 딸은 서른넷이 됐다.

벌써 결혼해서 아이들 하나, 둘 낳은 친구들이 많지만 딸은 아직 모태솔로다.

부부싸움은 많이 보여준 내 탓일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직 짝을 못 만났을 뿐이라는 것에 무게를 싣는다.


"내가 아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빠가 집에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우울할 것 같아.

투닥거리며 싸우더라도 엄마랑 아빠가 있는 평범한 집이 요즘 정말 감사해.

아빠 때문에 고생한 엄마를 보면서 힘든 때도 많았지만 이렇게 건강한 가정이 될 때까지 인내한 엄마가 정말 존경스러워."


영원히 평행선위를 걸을 것 같던 남편과는 요즘 가끔 맞을 때가 있다.

딸은 엄마가 달라지니 아빠는 저절로 달라지더라고 말한다.

나도 안다.

남편들은 단순해서 아내가 조금만 달라져도 그들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딸이 없으면 남편과 한집에 있는 게 불편했던 내가 요즘은 딸을 독립시킬 계획을 하고 있다.

남편과 둘만 남아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이제 진정한 동료애(?)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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