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윤정 May 16. 2024

빛나는 알맹이

복싱을 하며 배운 것

 세어보니 복싱을 한 지 만 4년이 되었다.


 나에게 이 시간들이 무슨 의미가 될지 몰랐다. 항상 모든 일의 의미는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온다. 그래서 의미가 되나보다. 난 그저 운동을 하니 건강이 좋아지나 예상했다.


 복싱을 하면서 나는 조금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고, 조금 더 꾸준한 사람이 되었고, 조금 더 걱정을 덜 하는 사람이 되었고, 조금 더 엄살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복싱 체육관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친구가 물었다. 복싱을 하면 괴한이 나타났을 때 때리는 호신술 같은 게 가능하냐고 했다. 이해는 가지만 귀여운 질문이었다.


 내 대답은 그런 걱정을 안 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런 사소한 걱정과 불안들이 없어지는 것이 좋다.


 나 또한 세상이 무섭고 내가 약하기 때문에 많은 걱정과 불안에 에너지를 많이 썼던 것 같다. 물론 복싱을 한다고 괴한을 때려잡을 자신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일어날 일을 걱정하느라 지금 현재의 일들을 못하는 수가 줄어든다. 수많은 걱정들은 지금 할 일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아 대는 핑계에 불과하다. 약하고 소극적으로 살아도 되는 핑계가 되는 것이다. 혹시 괴한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하면서.


 용기 있고 활력 있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슬프게 들리는지 기쁘게 들리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 나는 그런 말들이 부담되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는 것 같고 잘 못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지금은 같은 말이 참 기쁘게 들린다. 이 느낌을 몰랐으면 어쩔 뻔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복싱을 배우며 즐거운 날도 힘든 날도 웃는 날도 우는 날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나의 한 걸음이 되어 지금의 나로 데려다 주었다.


 철학 스승님이 추천해서 하게 된 운동인데 하고 보니 철학에서 말하는 삶을 배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철학은 삶을 잘 사는 법을 알려주는데 글로만 봐서는 어려운 것들이 많다. 어떤 느낌, 보이지 않는 것들은 글로 배우는 것보다 직접 해보고 느껴보는 것이 좋다. 물론 삶의 다른 경험에서도 배울 수 있겠지만 복싱이 내가 아는 선에서 꽤 괜찮은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육체적 심리적 허들이 높아 힘들지만, 힘든 만큼 집약적 도약의 깨달음을 준다.


 복싱을 잘하는 사람도 많고, 선수도 아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느꼈던 것들은 빛나는 알맹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꽤 오랜 허무주의에 힘들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던 세상에서 하나씩 빛나는 알맹이들을 찾아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가고 있다. 


 또 다른 빛나는 알맹이들을 위하여 찾아올 나의 의미들을 위하여 더 많이 느끼고 더 살아있게 살아볼 거다.


 이제 레슬링을 배우러 간다. 

이전 09화 기대할 수 없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