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선유도공원/국내 최초의 재활용생태공원
가느다란 눈이 바람에 밀려 빗금처럼 내리더니 금방 쌓였다. 살포시 내린 눈을 밟기 미안했지만, 그래도 바닥을 딛지 않고서는 걸을 수 없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다.
지난번에 쓰다만 글에 살을 붙여서 올린다. 연초, 눈이 많이 내렸던 휴일의 기록이다.
"당신 생일이라고 눈이 다 내리네"
새벽부터 소담스럽게 내린 눈이 해가 뜨면서 녹아내리고 있었는데, 남편은 아직 이불속에 있었다. 나무는 입었던 하얀 옷을 벗고 있었다. 함박눈이 진눈깨비로 바뀌고 있어서 길이 미끄러우면 애들 오기 번거로울 텐데, 나는 걱정스러웠다. 아버지 생일이라고 애들이 준비한 대로 해야 하지만.
애들이 예약한 식당은 여의도에 있었다. 싱싱한 해산물로 깔끔하게 차린 가성비 좋은 맛집이었다. 오랫동안 앉아 천천히 밥을 먹었다. 다 먹고 나서 눈도 그쳤고, 혈당스파이크도 막아야 한다고, 이런 것을 읊으며 선유도로 애들이 앞장섰다.
'이제 애들이 보호자가 되어가는구나'
최초의 수식어를 만들어낸 영웅 조경가 정영선. 그녀의 작품 선유도에 와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꼭 '가보라고 강추했었다. 나는 애들 덕분에 '최초의 재활용생태공원'에 최초의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공원이 고즈넉하고 매력적이었다. 자주 가는 샛강은 원시림의 느낌이라면 선유도는 개방감 있는 공원의 느낌이 강했다. 강 건너 풍경이 드러나면 탁 트인 멋이 더하겠지만 내가 간 날, 북한산은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날이 아주 흐렸다.
애들 말에 의하면 예술공연이 벌어지기도 한다니 그런 소식 들릴 때 와보면 좋겠다. 선유도의 꽃과 나무들이 활짝 피어나고 노래와 악기 연주하는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등 소리가 풍성해지는 때.
갖가지 두를 것들로 감쌌어도 여전히 추웠다. 몸상태가 받쳐주지 못한 건지 따끈한 것이 몸 안으로 들어와 줘야 할 것만 같았다. 길이 미끄러워 힘을 주어 걸어야 해서 그랬나. 가다 말고 쉬고 싶었다. 힘 빼고 온기에 몸을 맡길만한 곳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조금만 가면 카페가 있다고 했다. [나루]를 찾아갔다. 덜 걷고 멀리 바라만 보아도 좋은 장소였다.
산책은 짧았지만 처음이라서 좋았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에는 쉬운 법이니까. 이렇듯 걷기는 가보지 않은 곳의 셀렘과 가본 경험의 익숙함이 늘 공존한다.
눈을 떠보니 아침 인사처럼 안전 안내 문자가 와있었다. 간밤에 내린 눈에 대한 내용이었다. 창쪽으로 가서 바깥을 내다보니 차가 다니는 길은 짙은 검은색이고 사람이 다니는 길은 뽀얗다.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우니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는 말, 자식들 걱정 끼칠 일은 만들지 말고 우리가 자식 말을 잘 들어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