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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고 말하는 이에게

꽃자리/구상

by 맘달

꽃자리

by Momdal

가시가 아니고 꽃이었다니

꽃인 줄 모르고 가시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거였어?


나를 '위해 '돋아난 가시는 어느 순간 '위해'가 되고 말았어. 보호나 방어가 아니고

뾰족한 끝에 찔리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였으니까


가시가 꽃으로 변한 것인지, 애당초 가시가 아니라 꽃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누가 뭐라 한들 내가 가시라면 가시인 것이고 내가 꽃이라면 꽃인 것이지


뭐라고 하지 마! 가시면 가시였던 거야. 가시로만 보일 정도로 힘들었던 거라고

꽃향기를 맡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게 꽉 막혀 있었던 거야, 그때는 정말 그랬던 거야


그럴 수도 있어! 이런 일 저런 일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꽃을 가시로 느낄 수가 있었겠어

자기가 그랬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그런 때가 있기도 해, 이런 일 저런 일 겪다 보면





고통을 감내하며 사랑을 증거 한 십자가상 예수가 보여, 가시관을 쓰고 죽어가고 있어

그래, 길가메시가 기나긴 여정 끝에 만난 생명의 나무도 가시덤불이었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은 멋있기라도 하지, 가시방석에 찔려 죽으면 그건 뭐가 되는 거야

가시가 가시 그대로 있으면 거기가 끝인 거지만 가시가 흐물흐물 녹아 꽃이 되면......


거기까진 생각해보지 않는데

가시방석의 가시가 문드러져 흘러내린 자리에 꽃이 피는 것을 그려보면 마음이 환해져


가시를 지닌 꽃 중의 꽃 장미는 가시와 꽃의 공존, 가시가 꽃을 보호하는 것이겠지

모순을 지닌 장미가 주는 가르침, 가시가 없다면 장미는 장미꽃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도망칠 수 없어서 초목은 뾰족한 가시나 독을 가지는 거래

삶에서 도망칠 수 없어서 마음에도 가시가 돋는 건가 봐


초목이 가시 하나 만들 때마다 이파리 하나를 만들지 못한다고도 들었어

그래서 아등바등 살면 앉은자리가 어떤 자리인지조차 분간이 되질 않는가 봐


감옥에서 빠져나오고 쇠사슬을 끊고 동아줄을 풀어야만, 그것도 스스로 해내야만

가시의 '위해'에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어


그런가 봐, 자기가 쌓아 올린 것은 자기 힘으로 허물어야 하는 거였어

만들어 내는 것도 부수는 것도 나라면, 나란 존재 참 대단하지 않아?


지금은 영 아닌 것 같아도 괜찮아! 꽃자리라는 것을 지금 당장 모르더라도

지금 이 자리가 꽃자리라고 믿어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가시방석이 아닌 꽃자리였다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게 된다면

뭐가 뭔지 모르고 뭉개고 있는 것보다 천만 배는 낫지 않겠어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고 '지금' 말하면 좋고

지금 아니어도 말할 수만 있으면 돼, 다 좋아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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