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 명상 에세이, 21일 루나 디톡스 #8
오전 7시 50분. 큰일 났다. 세수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기를 연초부터 연습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일찍 일어나면 일곱 시 반, 조금 더 늦게 일어날 땐 여덟 시를 넘겼었다. 여섯 시에 일어나는 것도 미라클 모닝인 것이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니 실로 기적을 일으켜야 했다.
초심이란 게 있어서, 1월엔 생각보다 수월히 되었다. 2월까지도 괜찮았다. 밤에 자다가 중간에 눈을 뜨면, 서너 시쯤에 글 작업을 하고 조금 더 잤다가, 또 일어나서 두 번째 아침을 맞기도 했다. 3월이 되니 적응하는 사이 누적된 듯한 피로에 목이 아프고, 몸도 피곤했다. 피곤하면 손에 든 것을 더 쉽게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도 몇 개 있었다. 몸살 기운마저 느껴져 좀 쉬었다가 다시 해야겠다, 했는데 아주 느슨해지고 말았다.
며칠 아침잠을 보충하는 사이, 예전과 다르지 않은 기상 시간에 몸이 맞춰졌다. 이럴 수가! 역시 습관을 바꾸기란 너무나 어렵다. 누군가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21일 동안 계속하면 습관을 바꿀 수 있다면서요?"
21일은 습관을 바꾸기로 마음을 굳게 먹음과 동시에 시작에 돌입하는 기간이다. 몸에 붙고, 완전히 습관이 들기까지의 기간은 개인에 따라 100일에서 1년까지도 걸릴 수 있다. 사실상 정해져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는데 21일 한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냐고 한다면, 그건 새로운 습관을 들이지 않겠다고 마음을 이미 굳힌 사람의 질문이니 대답을 생략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일어나면 번번이 일곱 시 반 이후다. 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면, 너무나 우울하다. 아침부터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래서 난 안돼.'
'이거 저거 해도 다 안 되는 이유도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서 그런 거야. 일찍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뭘 할 수 있겠어?'
'이렇게 게으르기도 쉽지 않을 거야.'
이렇게 악마적이고 어두운 생각들이 쌓일 때는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이다. 숨을 쉬고 인지하는 것이다. 늦게 일어났을 뿐이라는 것을.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일찍 일어나지 못한 게 도대체 왜 실패란 말인가. 늦게 일어났으면, 일어난 다음 시간부터 자기 전까지의 시간을 잘 활용하면 된다. 정 시간이 더 필요하면, 자는 시간을 좀 늦추면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올빼미족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밤 열한 시만 돼도 이미 졸음을 참을 수 없다).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는 것은,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서 작업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있었는데, 그 이상이 깨져서 싫은 것이다. 그리고, 일어난 시간에 맞춰 세워둔 계획이 있었는데 그것이 어그러지니, 이에 맞춰서 다시 계획을 세워서 또 다르게 해야 한다는 부분이 생긴다. 이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귀찮기도 해서 더 짜증이 나기도 한다. 망했다고 생각하면서 그 하루를 그대로 망쳐버릴 구실을 찾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실패하는 사람들이 하는 사고의 내용이다. 계속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믿는 그 생각이 사실이라는 것을 계속 스스로 증명한다. 그럴 땐 마음속에, 감사함을 찾거나 느낄 여유가 없다.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실패한 사람이라는 패배감에 젖어있으니 말이다.
늦게 일어났을 뿐인데 실패했다는 생각으로 바로 가는 것은, 그전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랬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가, 그 비슷한 상황이 또 왔을 때 다시 비슷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형성되는 원리이다. 그렇지만, 또 어떤 순간에 들었던 음악을 그 뒤 또 다른 비슷한 순간에 떠올리고, '어, 그때 들었던 그 노래 듣자, ' 하고 플레이리스트에서 다시 찾아 듣는 것과도 비슷한 것이다.
실패한 사람이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노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우울하기 짝이 없다. 실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잠깐 그 생각을 붙들고 있는 것도 그럴 수 있지만,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우울해지게 되면 그건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빨리 숨부터 쉬고,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은 사람들의 온라인 모임에 얼른 들어갔다.
요즘 모임에선 꼴찌를 독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에 그래도 들어감으로써 해냈다는 생각이 들고,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사람들과 산뜻하게 아침 인사를 나누고 모임이 파하고 나면, 그때부터 시작하는 하루는 실패했다는 생각에 빠진 채 시작하는 하루와는 다르다.
숨을 쉬면 기분을 전환할 수 있고, 또 숨 쉬기 이전에 했던 생각을 바로 몰아낼 수 있는 신비한 몸을 가진 것이 참 다행이고, 기쁘다. 그리고, 우울하고 가라앉는 생각이 들 때 새로운 숨을 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다방면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건 아닌 것 같았고, 이것 저것 찾아보다 만나게 된 것이 요가와 명상이었다. 수련을 시작하면서 큰 도움이 되는 것 이상으로 삶이 급격히, 그리고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수련을 해보기로 한 뒤부터도 수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1년, 2년, 주에 서너 번은 꾸준히 수련하기를 10년이 넘도록.
바뀐 삶이 꼭 마음에 드는 이상적인 삶이라고는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뭐든 장단점은 있는 법이다. 수련하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었을 것이다. 삶에서 위기라고 느껴졌던 순간에 요가와 명상을 만난 것과, 그리고 이걸 해보겠다고 선택을 한 것, 그 이후로도 매일매일 계속 선택해 온 것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 감사하게 여긴다.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것은 나 자신을 지나치게 드높이고 우쭐해지게 하며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런 사고 속에서 나는 절대, 두 발로 딛고 스스로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게 감사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을 잘했는지 스스로 들여다보고 칭찬해 주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것을 오늘도 잊지 않고 한다.
잠시 내 안에서 움츠러들었던 부분이 다시, 감사한 마음과 칭찬에 의해서 주름 펴지듯이 펴진다. 그리고 기억한다. 나는, 어떤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
| 당신을 위한, 당신의 명상 |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셨나요?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지금까지, 찬찬히 돌아보세요. 내가 생각해도 이건 뿌듯하게 여겨졌던 나의 행동, 스스로에게 감사함을 느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충분히 느끼세요. 느리고 깊게 숨 쉬며, 몸 구석구석으로 그 기분과 흡수시킵니다.
나는 어떤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요? 하트를 꾸욱 눌러 출석 도장을 찍고, 다시 한번 기억하세요. 기분 좋은 마음으로, 나 자신에게 후하고 너그러운 밤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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