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벚꽃놀이

감사함 명상 에세이, 21일 루나 디톡스 #6

by 지반티카

꽃이 다 펴버렸다. 개나리가 핀 줄은 진작에 알았는데, 벚꽃이 핀 줄은 이번주를 보내면서 알게 되었다. 산에 와보니, 벚꽃이 다 펴버렸다. 너무 때 이르게 만발한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도 어떤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 차림인데. 이상한 계절이다. 완연한 봄인 것 같으면서 춥고, 껴입고 있으면 다시 반팔을 입어야 될 정도로 더워진다.



벚꽃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다. 뒤에서 오던 등산객들이 나를 지나쳐서 앞서간다. 사진에 사람들까지 함께 담겨버린다. 예전엔 그게 싫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엔 지나가는 대로 찍는다. 사람도 풍경이기 때문이다.


자꾸 사람이 없는 곳을 찾게 된다. 사실, 사람이 없는 곳이라고 하면 혼자 사는 집이 제일 사람이 없다. 거긴 정말이지 나뿐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밖에 나와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이 없는 것의 좋은 점을 꼽자면, 새의 지저귐이 선명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며 걸어도 괜찮다는 것도 좋다. 말하다가 문법이 틀려도 된다. 잠깐 멈춰서 쉴 수도 있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말을 해도 되며, 어떤 내용의 말을 해도 괜찮다. 사람들이 있을 땐 나도 모르게 의식해서 목소리를 낮추게 된다. 제대로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릴까 봐 조심스러워진다. 그렇다고 대단한 내용의 말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어차피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통화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어폰을 꽂고 있으니까).


걷기만 하면 되는 여유를 갖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작년, 재작년엔 거의 매일 이런 하루를 보냈다. 그러자면 일을 덜 해야 했고, 일을 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지금은 일이 많다. 벌린 일을 하고 또 하고, 그래도 일이 많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일이 많은 것도 좋은 일이다. 어쨌든,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또,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으면 해야 하는 일이 되고, 어느새 하기 싫은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산책로에 사람이 한 두 명만 있을 땐 좋았다가, 너무 많아지면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목련이 활짝 피었다. 목련은 알고 있는 봄꽃 중 제일 빨리 피고 빨리 진다. 이 나무에선 한 송이도 지지 않고 쌩쌩하게 잘 피어있다. 멈추어서 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했다. 꼭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멀리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잠깐 멈추어서 쉴 여유가 필요했을 뿐.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땐 길에 사람이 많든, 적든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카페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건, 나와서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건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많으면 빨리 피곤해지는 게, 그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을 하게 되어서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하기 싫은데, 그들이 앞에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알고 보면 그때 떠오르는 생각들 속에 나를 중심으로 도는 생각들이 있고, 그 뒤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고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도는 생각들은, 예를 들면 이런 생각들이다.


'왜 저렇게 천천히 걷는 거야, (난) 빨리 걷고 싶은데.'


'통화하면서 저렇게 크게 웃을 일이야? (내 핸드폰의) 음악 소리가 묻히잖아.'


'평일 한낮에 카페 나와 있는 사람들은 다 살 만한가 봐 (난 잠깐 짬 내서 나온 건데).'


참고로, 나는 저런 생각들을 언제 적에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물론, 보기 드물게 하는 자랑인 것도 맞다. 그전에는 대체 어떤 성질로 살았다는 건지 짐작 가는 바가 있더라도 그 생각은 못 본 척 멀리 밀어두자.


하여튼, 생각의 흐름을 관찰한 바로는 내가 중심에 있는 생각은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면, 항상 하던 사고의 흐름에서 나와서 숨을 쉬고, 하지 않던 쪽의 생각의 방향으로 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나의 경우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에 가까워 현실 살이에 어려움을 겪는 쪽에 가깝다. 긍정은 낙천적인 것과는 달라서, 현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뭘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 후,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서 행동을 하는 것까지를 일컫는 말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그대로 행한다.


하루 중에 뭔가 조바심을 내며 쫓기듯 한다던지, 다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없다. 별생각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인 하루다. 부딪히는 사람들도 없고, 굳이 나를 찾아와 괴롭히는 사람도 없으며,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아지는 오늘. 급할수록 돌아가고, 그럴수록 여유를 가지는 것은 그때 가서 실전으로 행하면 된다. 즐기기만 하면 되는 날에, 위기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대비를 하고 있어 봐야 몸만 딱딱해진다.


해가 따사롭다. 멀리서 베이지색의 모자를 쓴 커플이 나란히 걸어온다. 겹겹이 핀 벚꽃이 하얗게 살랑거린다. 벚나무 사이에 우뚝 피어난 목련은 형광빛을 띤 노랑색으로, 눈이 부시게 예쁘다. 우아한 자태를 보란 듯이 뽐내면서. 더 풍성하게 표현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어떻게 표현되든 무슨 상관인가. 눈이 즐거우니 그걸로 됐다.


부족한 듯 부족하지 않게, 모든 존재가 제 자리에서 스스로 빛난다. 아름다운 하루다.



| 당신을 위한, 당신의 명상 |


오늘은 외출을 하셨나요? 집에 계셨나요?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를 떠올려보세요. 그때 그곳엔 어떤 사람들이 있었나요? 주변에는 어떤 동식물과 자연이 있었나요? 누군가가 만든 작품, 가구 등이 있었나요?


이번엔 눈을 감고, 위의 질문에 답하며 떠올렸던 그 장소, 그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그때 당시 나 자신을 포함해 주변에 있었던 모든 것들을 찬찬히 둘러보세요.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고, 어떠한 생각으로 빠지지도 않고, 숨을 쉬면서요.


그때 느꼈던, 또는 놓쳤었지만 다시 발견한 생각과 기분을 느껴봅니다. 긍정적이었던 것이든, 부정적이었던 것이든 모두.

오늘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든, 이 하루치의 경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감사할 수 있으신가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에 계시다면, 숨을 쉬면서 스트레스가 되는 생각과 감정을 몸 바깥으로 흘려보내세요.


| 명상할 때 TIP 하나 |


봄이라고, 벚꽃이 피었다고, 일요일이라고 꼭 좋은 날이란 법은 없겠죠. 감사한 마음이 들면 드는 대로, 들지 않으면 그런대로 하루를 보내는 것도 괜찮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사함을 찾거나 음미할 여유가 전혀 없을 때에는, 먼저 숨부터 천천히 쉬어보세요.


하트를 꾸욱 눌러 출석 도장을 찍고,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놓쳤던 여유, 감사함을 찾아 음미해 보세요.

찾아내신 보물 같은 감사함댓글로 나누어주셔도 좋습니다. 저에게는 연재를 이어가는 힘이 되고, 다른 독자 분들에게는 이런 부분에도 감사할 수 있구나, 하고 시야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

keyword
이전 06화덕분에, 덕분에, 덕분에 계속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