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원히 울 수 있는 나만의 방

감사함 명상 에세이, 21일 루나 디톡스 #4

by 지반티카


지난밤의 일이다.

자려고 요를 깔았다. 요 앞에 커다란 인도 천을 암막 커튼처럼 빛이 들어오지 않게 쳐두었다. 불을 끄려고 할 때 앞집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앞집은 종종 북적인다. 손님이 와 있을 때면 웃음소리가 크게 난다. 그래서 이번에도 웃는 소리인 줄 알았다. 잘 들어보니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울고 있었다. 혼자. 그런데 우는가 싶으면 웃는 것 같아서, 다시 웃음소린가 했다.


설마.


다시 귀 기울여 들어보니, 울음소리가 맞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야 하는데 이 사람이 계속 울면 어떻게 하지?'

'자야 되는데, 잠을 못 자면 어떻게 하지?'


그 사람이 손님과 깔깔거리며 웃을 때,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고 관리인에게 몇 번 문자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웃음이 아니라 울음소리가 되니 마냥 당혹스럽지만은 않았다. 남 일 같지 않아서였다.


대학교 때, 4년 내내 기숙사에서 살았다. 3학년 때부터는 고학년의 특권으로 싱글룸에서 지냈다. 혼자 지내며 좋았던 것들 중 하나는, 아무 때나 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좋지 않았던 것은, '왜, 무슨 일이야?' 하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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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있는 집보다도 커다란 방에서, 어느 밤엔가 나는 울고 있었다. 옆집 사람처럼, 혼자. 금요일 밤이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파티에 갔든지 집에 올라갔든지 등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방들이 비어있었으니까. 당시 사귀던 사람과 헤어졌고, 그래서 힘들었고, 술을 마시고 전화를 걸곤 했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짓을 해야만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도 모질거나 야무지지는 못해서 연락을 받고 있었다. 헤어진 것도 사귀는 것도 아닌 그 상태가 또 괴로워서 나는 술을 한 잔 따라놓고 울었다. 아주 크게 엉엉 울었다. 한 번 하고 나면 두 번부턴 쉽다고, 몇 주 동안은 의식처럼 금요일마다 매주 행했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방문 앞에 붙어 있는 메모를 발견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졌으면 좋겠어. 너를 위해 기도할게.'


건너편 방 사람은 기독교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그때는 그 사람의 마음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나의 상태를 들켰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을 느꼈다. 물론, 누가 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울었기 때문에 같은 층의 모두가 내가 울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메모를 본 순간, 당시 내 상태에 대한 광고가 뿌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모질게 노란 포스트잇을 떼서, 아주 힘차게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미안하지 않았다. 감사한 마음은 더더욱이 없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건너편 방의 사람을 기숙사 안에서, 길에서 마주쳤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그렇게 지나간 일이 되었다.


그런 일이 한참 전에 있었다는 것이 생각나니, 옆집 사람이 울고 있는 것이 남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남일 같지 않아지니,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의 나처럼, 누구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마음일 수 있지 않은가.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글쎄. 참견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과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어서 오지랖은 부리지 않았다.


대신 자기 전에 매일 하고 있는 찬팅 메디테이션 (chanting meditation)을 시작했다. 이 사람의 마음이 풀리고, 이 사람의 마음이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슬픔이 잦아들고, 슬픈 일이 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는 그 사람을 위해서 빌었다. 오래전 건너편 방에 살았던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해 줬던 것처럼, 옆집 사람을 위해서 빌었다. 그 기도에는, 이 사람이 '울음을 그치면 내가 조용히 잘 수 있을 거야, '와 같은 계산적인 믿음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보냈다. 건너편 방에 살았던 사람에게, 한참을 지나서. 연락은 닿지 않지만, 그 사람을 생각하며 보내는 진심은 그가 어디에 있든 가 닿을 것이다.


머지않아 옆집 사람은 울음을 멈추었다. 실컷 다 울고 그친 것이길 바랐다. 말해주고 싶었다. 울게 된 상황이나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슬프게 울 일이 때로는 생긴다고. 참지 않고 시원하게 울어야 울분이나 한으로 쌓이지 않는다고.


나는 그 사람이 차라리 그렇게 운 것이 좋았다. 철없던 대학 시절과 여러 변곡점을 지나 그 사람이 울어야 했던 순간을 지켜줄 수 있고, 생판 남인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 좋았다. 만약 그 사람의 현관을 두드리며 시끄럽다고 했다던지, 관리인에게 뭐라고 한 마디라도 문자를 넣었다면 그 사람은 다시 그 방에서 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울 일이 생겼을 때, 나 또한 참아야 할 것이다. 그건, 내가 꿈꾸는 더불어 삶 (interdependent life) 의 모습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속시원히 울 수 있는 각자의 방이 필요하다. 옆집 사람에게 혼자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다행이다. 나 역시 아무도 내 눈물을 볼 수 없는 나만의 방이 있음에 감사하다. 가족들과 같이 살 때는 샤워하면서 울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길에서, 사무실에서 몰래몰래 울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울고 싶을 때 언제든 울면 된다. 물어봐주거나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래서 괜찮다. 힘들어지면 또 후두둑 눈물을 흘리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괜찮아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위로나 기도가 없을 때에도, 혼자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 나만의 방에서, 내면으로부터.




| 당신을 위한, 당신의 명상 |


울고 싶을 때, 울고 있을 때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이 있나요?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사람이 있나요? 그때로 되돌아가,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다시 느껴보세요. 그때는 놓쳤었던 그 사람의 표정, 했던 말, 행동을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를 생각하는 기분과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명상 | *


힘들 때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으신가요? 집이 아니라도 좋아요. 그 공간에 다시 가시게 되면, 눈을 감고 공간 자체를 느껴보세요. 그리고 공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봅니다.


* 두 번째 명상은 개인별 선택 사항입니다. 명상은 기분 좋은 만큼만 하셔도 좋고, 원하신다면 더 깊이 숙고하셔도 좋습니다.



하트를 꾸욱 눌러 출석 도장을 찍고, 힘들 때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해 보세요.

찾아내신 보물 같은 감사함댓글로 나누어주셔도 좋습니다. 저에게는 연재를 이어가는 힘이 되고, 다른 독자 분들에게는 이런 부분에도 감사할 수 있구나, 하고 시야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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