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덕분에, 덕분에 계속 글을 쓴다

감사함 명상 에세이, 21일 루나 디톡스 #5

by 지반티카


평일과 주말의 구분 없이 일을 한다. 수업을 하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틈틈이 그림 과제도 한다. 퇴근이란 없다. 잠을 잘 때가 쉴 때이다. 피곤해서 집중은 안 되고, 낮잠을 잘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밖에 나가서 걷는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가본 적 없는 건물로 갔다. 고층 건물은 아닌데, 사각형과 삼각형이 맞대어져 있어 그 꼭대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 이곳에서 미술 전시가 있다고, 지인들이 알려주었다.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어쩐지 입구에서 이름과 연락처를 받는다. 앞에 온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 이름은 대표자 한 분만 쓰시면 된다고 말하는 직원의 안내가 들렸다. 앞의 사람이 이름을 쓰고 비켜섰다. 내게는 쓰라고 하지 않았다. 일행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들어가도 되는 건가, 하고 약간은 주저하며 갤러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서든 누군가 불쑥 튀어나와 "더 들어가시면 안 돼요, " 하고 막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엄격한 분위기가 있었다.


계단을 오를수록 그림 특유의 냄새가 진해진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미술관에서 나는 냄새에는 물감과 기타 재료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냄새가 괜찮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피곤한 상태여서 그런지 좀 거슬렸다.


그림들 가운데 가장 오래 머무르게 되었던 그림은 2층에 있는 유화 작품이었다. 나무들이 가득 그려져 있고, 각 나무의 밑동마다 나이가 쓰여 있었다. 몇 년부터 몇 년까지 살았다는 표시다. 앞쪽에는 1400년대생과 1500년대생이 있다. 뒤쪽으로는 1800년부터 1900년대까지 살았던 나무들이, 그 옆엔 1900년대생, 1900년대생과 기록된 끝 연도 없이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나무들이 나란히 서 있는 식이다. 오래전 태어난 나무일수록 나무의 색깔이 진하고 어둡다. 많은 색깔이 쓰이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검은색, 갈색 정도일까. 아리송한 기호가 그려져 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길을 지나면서 나무가 몇 살인지 궁금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언제 태어나 몇 년을 살다가 몇 년도에 떠났는지 관심을 두어 본 적도 없다. 연도가 쓰여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 여러 시대에 걸쳐 살아갔던 존재라는 것이 확 와닿는데 말이다. 인류 외에 살아있는 다른 생명체를 정말로 존중하며 살았던 하루가 삶에서 며칠이나 될까? 동족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살았던 날들은? 내가 나를 존중하고, 지금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낀 적은 며칠이나 될까.


Trees.png 전시 관람 이후 그린 그림. 나무도 숨 쉬고, 소통하고, 느끼는 생명체다.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고,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예술 작품에 스며든 작가의 의도는 감상자로 하여금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도록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의 사진을 찍는 배경으로 사용하는 것에 더해서,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나 그의 노력을 느끼고 있을까?


로비와는 달리 2, 3층에는 20-30대가 모여 다소 떠들썩한 분위기로, 도슨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름을 적으라고 했던 건 도슨트 때문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직원이 묶어준 뜻밖의 일행은 도슨트를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3층과 지하, 전층에 걸쳐서 전시되어 있는 많은 그림들을 보는 것이 무료였다. 어떻게 무료일까?

비치된 팸플릿 마지막 페이지를 보니, 스위스의 울리 지그 (Uli Sigg)라는 컬렉터의 전시라고 되어있다. 그가 모은 그림의 일부를 하나의 테마로 묶어 전시한 것이다. 수집품에선 수집가의 취향이나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데, 이 전시에서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팸플릿의 설명에 따르면, 지그는 그림을 기증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사람이라고 한다. 예쁜 그림보다는 삶이나 시대성이 담겨있는 작품들을 모은다는 원칙을 가진 컬렉터였다. 그래서인지 바로 예쁘다, 하는 그림들보다는 한 번에 딱 와닿지는 않지만 생각을 하게 되는 그림들이나 사회 풍자적인 그림들이 많았다.


예쁜 것도 좋지만, 의미가 깃든 시대정신을 담을 때 한층 더 깊이 있는 예술 작품이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시각적으로 예쁜 것도 미학적인 측면에선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을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게 내어준 컬렉터의 마음이 참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멋지다.


몇 달, 몇 년에 걸쳐 작가들이 완성한 그림에는 그들의 숨과 노고, 미처 다 말할 수 없는 고민들이 담겨있다. 이런 작품들을 그냥 볼 수 있다는 게 관람객으로서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작가들도 마냥 그림을 비싸게 팔아야겠다는 마음이 컸다면 이런 의미가 담긴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처럼 작품이 무료로 전시되는 것을 기뻐한 작가들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부를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에는, 지그와 같이 작가들의 자유로운 기질과 깊은 의도가 담긴 좋은 작품들을 기증하거나 돈이 필요한 곳에 기부를 많이 하고 싶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가치 있게 돈을 쓰고 싶은 마음,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은 마음.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이왕이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좋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렇게 자연스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돈을 많이 벌게 되면 하고 싶은 것은 또 얼마나 많고, 나누고 싶은 곳도 얼마나 많은지. 동시에, 막상 줘본 적이 없으면 돈이 있어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경험상, 언제든 지금 나눌 수 있는 것을 진심을 담아 나누는 것이 나와 주변 모두에게 이로웠다. 몸이 좋지 않다던지, 신경을 써야 할 가족 문제가 있다던지 할 때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워질 때도 있다. 하다 못해 피곤하기만 해도 집중도가 떨어져 의도가 분명한 글 작업이나 요가 수업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럴 때일수록 잠깐 쉬었다가, 그때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방법을 강구해서 행동으로 옮겨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의성은 그럴 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무한정 시간이 많고, 방해 요소가 하나도 없을 때에만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 같지만, 어느 정도 방해되는 요소를 극복해야만 할 때 나오는 경우도 상당한 것이다.


언제나 몸과 마음에 무리되지 않을 만큼. 개인적으로는, 나누는 행위 자체보다는 건강한 경계를 지키며 나눔을 지속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눔은 모든 종교가 늘 실천하기를 강조하는 수행의 일부인가 한다. 평생에 걸쳐 하게 되는 연습이다.


'아, 이제 다 모르겠어!' 하고 손 놓고 한껏 해이해지는 때는 온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쉴 때는 충분히 쉬어야 그다음이 있다. 이렇게 전시를 보러 오는 것도 보는 행위를 행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창작과 수업으로부터 벗어나 쉼이 되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양분이 된다. 그리고 또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행동으로 옮겨보게 되는 것은 지그와 같은 컬렉터,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하고 그림을 선보이는 것 같지만 엄청나게 노력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작품을 통해 만나면서 영감을 얻는 덕분이다. 건강히 살아있는 동안, 나도 내 눈앞에 펼쳐지는 삶을 어떻게든 구현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긴다. 한 번의 숨도 낭비하고 싶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언제 태어났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지만, 언제 끝 연도가 찍혀 흙으로 돌아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나날들. 나무들도 아마 그랬지 않았을까. 땅속으로 뻗은 뿌리를 통해 서로와 소통하며, 수천 년에 걸쳐 오래오래 살아온 게 아닐까.


부유한 컬렉터도 아니고, 책이 불티나게 팔리거나 해외 곳곳에서 전시 초청을 받는 유명 작가도 아니며 대단한 요가, 명상 선생님도 아니다. 대신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무슨 일이 되었든 그 일을 행하는 목적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면, 어떻게든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도.


다시, 글로 돌아온다. 지속할 동기와 영감을 선물해 준 머나먼 이국의 컬렉터와 작가들 덕분에. 귀한 시간을 내어 글을 읽어주는 이 땅의 독자들 덕분에. 언제나 내가 마실 공기와 쉴 수 있는 그늘을 내어주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 덕분에.


덕분에, 덕분에, 덕분에 계속 글을 쓴다.




| 당신을 위한, 당신의 명상 |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신가요? 직업으로든, 취미로든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 지금 당장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더라도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왜 하고 싶은지 떠올려보세요.


하고 계신 일을 지속 가능하도록, 또는 하고 싶은 일이 하고 싶어 지도록 영감을 준 사람들이 있나요? 그 사람들은 어떤 영감을 주었나요? 떠오르는 그 사람들의 표정, 했던 말이 있나요?


그 사람들이 나와 같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인 것을 느껴보세요. 나 역시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숨 쉬며 느껴봅니다.



|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명상 | *


영감을 받았을 때의 기분, 그때 들었던 생각이나 다짐 등이 있었다면 다시 한번 떠올리며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 기간을 두고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고 다시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 두 번째 명상은 선택 사항입니다. 건너뛰는 선택을 줄곧 해오셨다면, 한 번쯤은 시간을 내어 이 부분까지도 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하트를 꾸욱 눌러 출석 도장을 찍고, 내게 영감을 주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 풍요로운 하루로 마무리해 보세요.

찾아내신 보물 같은 감사함댓글로 나누어주셔도 좋습니다. 저에게는 연재를 이어가는 힘이 되고, 다른 독자 분들에게는 이런 부분에도 감사할 수 있구나, 하고 시야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한 번의 숨도 낭비하지 않고, 각자의 목적을 향해서 끝까지 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충분히 푹 쉬는 토요일 밤 보내세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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