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산책, 트럼펫 부는 할아버지

감사함 에세이, 21일 루나 디톡스 #2

by 지반티카


공원에 산책을 나왔다. 어디선가 트럼펫 소리가 들린다. 걷다 보니 어느 순간 트럼펫 소리가 가까워지는 지점이 나타났다. 계속 걷다 보니, 트럼펫 소리가 더욱 커졌다. 어떤 할아버지였다. 어느 지점에서 숨이 끊기는지를 알겠다. 끊겼던 지점에서 다시 서투른 악기 소리가 난다.


Trumpet 2.png 처음 그려본 트럼펫. 서투른 맛에 그린다.


슬쩍 돌아서 본 할아버지는 개울 건너편에 있다. 개울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걸까?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여튼, 물가 건너서 서 있는- 아니, 앉아있는 할아버지는 볼을 불룩하게 부풀렸다가, 바람을 뺐다가 하면서 계속 트럼펫을 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노래다. 혼자서 불러보니 나는 다소 빠른 리듬에 조금 더 높은 음으로 부르게 되었다. 트럼펫 소리는 높은 것 같으면서 생각보다 낮다. 나의 목소리는 낮은 것 같으면서 생각보다 높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계속 트럼펫을 분다. 불었던 부분을 또 불고, 잠깐 멈췄다가 다 불었나 싶으면 또 불고. 연습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 나이에도 무언가 연습할 게 있는, 연습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도 뭔가 하고 싶은 게 있고, 그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할아버지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다. 다들 각자의 산책에 열중하고, 같이 온 일행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꽃 피기 시작한 나무들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도 할아버지를 쳐다보면서 뒤에서 뭐라고 하거나, 웃지 않는 그 모습이 좋다. 옛날이라면 분명히 누군가는 나서서 "이런 데서 연습하시면 안돼요," 라고 했을 수도 있고, 또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왜 저기서 저러고 있어?" 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점점 그렇지 않은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걷다 보니 느껴진다. 각자에게는 각자가 원하는 바를 표현할 자유가 있다.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지금 이렇게 온라인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글로 옮겨서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참 감사하다. 누군가가 글을 보게 하려면 동네 마을 벽에 붙이던지, 실어줄 때까지 신문사나 잡지사, 출판사에 보내야 했다면 두렵고 귀찮아서 글을 쓸 엄두도 못 냈을지 모른다.


이런 오늘날의 분위기와 문화와 사회가 조성되기 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헌신, 그리고 희생이 있었다.


나는 그저 살기만 하면 된다. 먼저 이 땅을 살아간 선조들이 이룩해 놓은 것에 폐를 끼치지 않고, 능력껏 세상에 더할 수 있는 좋은 것이 있다면 나누면서 살기만 하면 된다. 산책을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고, 이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는 여유가 있다는 것, 그런 여유가 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할아버지가 계속 트럼펫을 불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항상 읽고 싶은 책이 있었고, 찾아가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별 거 아닌 것에도 우리는 같이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가 눈물이 터질 때도 있고, 날이 좋을 땐 밖에 나와서 걸으며 혼자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이번엔 별 생각 없이 나왔는데, 트럼펫을 부는 할아버지를 보니까 생각이 났다. 매일 의도적으로, 또는 애써서 할아버지를 떠올리려 하지는 않는다. 산 사람에겐 산 사람의 삶이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당신 이전에 살아간 선조들과 같이 피땀 흘려 일궈 놓은 땅에서 자연을 누리고, 부모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가 준 육체와 숨을 만끽하고, 평화롭게 살아간다.


오늘 내 하루가 평화롭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내 생각을 목소리와 글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살고 싶었던 것이, 살고 싶다고 늘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살고 싶다, 가 아니라 살고 있구나, 가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함이 크다. 주어진 삶을 숨이 멈출 때까지 끝까지 사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할아버지가 전생에 걸쳐 내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트럼펫을 부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건, 어깨 동무를 하고 연인과 나란히 한 여정을 걸어가는 사람이건, 또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스케치하듯이 목소리로 옮겨두는 사람이건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사람들 한명 한명이 모여서 같이 흘러가는 하루가 모이면 삶이 된다.


공원에 군인들이 들어온다. 나라를 지켜줄, 머지 않아 선대가 될 후배들이다.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 당신을 위한, 당신의 명상 |



앞서 살아간 사람들 중, 감사한 사람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감사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떠오르는 생각들을 짧게 적어보세요. 당신을 위한 오늘의 기록으로 남겨두셔도 좋고, 살아계시다면 문자나 말로 감사함을 전해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혼자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 됩니다.


하트를 꾸욱 눌러 출석 도장을 찍고, 잊고 있었지만 감사한 사람을 찾아 든든한 밤으로 하루를 마무리해보세요.

찾아내신 보물 같은 감사함댓글로 나누어주셔도 좋습니다. 저에게는 연재를 이어가는 힘이 되고, 다른 독자 분들에게는 이런 부분에도 감사할 수 있구나, 하고 시야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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