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칼의 증언

I ME ME #4

by 지반티카

내가 말이야
이 집 엄마가 아파트 살기도 전
대문 파란 집에 시집올 적부터 있었는데 말이야

독일에서 영문 모르고 배에 실려서는
한참을 깜깜하게 상자 안에서 여기 쿵 저기 쿵
창고 백화점 전전하다가 만난 주인이 바로 그 엄마였던 말이지

그 여편네도 처음부터 그렇게 매정한 건 아니었어
없던 배가 볼록하게 그 담엔 풍선만치 부풀더니
밖에 나가지도 않고 줄곧 나만 부렸지 도마 위에서

칼질만 잘했지 새댁이라 나무 도마 관리할 줄을 몰라 얼마나 냄새가 났는지 알아
그래서 여태 생선이라면 치를 떠는 거야 내가 비린내도 비린내지만 머리 자르고 장기 갈라내는 게 또 얼마나 기분이 더럽다고

여튼 그 배가 푹 꺼지고 생긴 게 딸내민데 그게 또 아주 기특했단 말이야
그 엄마 일하러 나가고 아무도 없는 집에 전화가 오면 네네하고 뭐 받아 적는 거 같더니만
그놈의 도마를 낑낑대고 꺼내서는 통통한 당근을 아주 야무지게 썰어놨단 말이지 나를 그 쬐그만 손에 용케 쥐고 말야

커가지고는 나랑은 좀 소원해졌지 책을 많이 보고
관계라는 게 그런 거지 좋았다가 아녔다가
어느 여름엔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문을 나서더니 오래 보질 못했어
희고 고왔던 그 엄마 손에도 주름이 늘었지
뭐 손뿐인가 나를 내려다보는 눈가며 칼을 바꾸네 마네 지껄이던 입가며 주름이 패였지 패였어
군 말없이 일해줬더니만 그렇게 내치려고 하니까 주름이 느는 거다 그 말이야
나도 예전 같지 않아서 금방 금방 무뎌지니 할 말은 없지만서도

요 아파트로 오고 나서 좀 뒤에 애가 돌아왔는데
엄마한테 맨 구박만 당하더라고
그전에도 뭐 그렇게 잘 지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지경은 아니었는데

일을 못 구하느니 시집도 못 갔느니 뭐 그런 소리가 들렸어 나야 썰기나 할 줄 알았지 사람 일은 또 잘 모르니까
그래도 그렇지 애 머리를 생선 대가리 쳐내듯 빡빡 쳐대니 마음이 남아났겠어

그러다 어느 겨울밤에, 아 그게 왜 기억이 나냐면 얼마나 추웠으면 부엌 창 안쪽에 이슬이 맺히고 그 앞에 있던 나까지 오들오들 몸이 다 떨리더라니까 나무집 안에서
그 밤에 그 애가 나를 움켜쥐더니만
글쎄 지 목에 겨누더라고
그 담엔 지 엄마 방에 들어가서 그 목에 겨눴다가 근데 그건 차마 안 되겠었나 봐
지 방에 들어가 목에 갖다 대곤 거울을 봤다 다시 나를 내렸다가 무릎을 꿇고 배 쪽으로 내 손을 갖다 대는데 아주 환장하겠더라니까

조마조마해서 내가 하지 말아라, 하지 말아라 몇 번을 말하는데도 들리지도 않는지 계속 들었다 놨다 그러길래
내가 아주 역성을 내면서 살갗을 좀 긁었어 그러니까 피가 난 거지
조금이었어 조금 나도 그럴려고 그랬겠어
뜨뜻한 게 나른하니 아 이게 좋음 여린 살코기 갖고 와서 베어라 베어라 주인한테 몇 번이고 왁왁댈 거 같긴 했지만 내가 명색이 독일제 쌍둥이칼인데

애가 아주 놀라서 나를 바닥에 내던지고서는
눈물을 뚝뚝뚝뚝 흘리더라고
옆방에 지 엄마 깰까 봐 소리도 못 내고 아주
할 거면 칼부림 제대로 하던지 싶어도 다행이지 그지

그 애 눈물은 창에 방울로 맺혔다 죽 미끄러진 물 같앴어
그 애 볼은 막 젖살이 빠져서 깎아지른 당근 같앴어
그 애 손은 팔딱팔딱 뛰는 핏줄도 잊어먹고 얼어붙은 생선 같앴어
내가 본 건 그게 전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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