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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곽해용 May 31. 2023

제발, 잔소리 좀 그만

잔소리란, 듣기 싫은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을 말한다. 부모나 연장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녀나 아랫사람의 행동을 교정하려고 하는 것 등이 바로 이 잔소리다. “공부해라.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마라. TV 그만 봐라. 컴퓨터 너무 하지 마라. 인터넷 그만해라. 돈을 아껴라. 어른을 공경해라. 결혼해라.” 등등.

물론, 아직 사회 적응에 낯 설은 어린 아이나 부대 적응이 미숙한 신병의 경우에는 일정 기간 반복적인 잔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부모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잔소리를 반복해서 듣는 이들은 더 이상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정반대로 심한 스트레스로 작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운동게임을 할 때도 파트너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지고 있을 때 잔소리를 심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파트너가 원치 않는 잔소리라면 오히려 더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신경이 쓰여서 실수를 연발할 수도 있다. 대부분 경기 중에 파트너끼리 말이 많은 팀은 지게 되어 있다. 얼마나 손발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으면 시합 중에 저럴까 싶다.

물론 소통을 위해 계속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경우는 다르다. 혼자 하는 골프에서도 상대가 코칭을 원하지 않는데도 동반자가 계속 자신의 방식대로 코치하려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초보자라는 이유로 계속 잔소리하다 보면 은근히 무시하는 언동이 살짝 묻어 나오기도 한다. 자칫 감정이 상해서 서로 다투기도 한다. 잔소리보다는 파트너의 행동을 이해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 주고, 상대방의 행동에 신경 쓰기보다 차라리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월든』의 작가 헨리 소로는 ‘연장자들로부터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듣거나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험은 단편적이고, 그들 자신도 믿고 있듯 각각 개인적인 이유로 그들의 삶은 비참한 실패이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한다. 헨리 소로의 철학에 공감했던 박혜윤 작가도『숲 속의 자본주의자』책에서 이 말은 ‘나이 든 사람과 젊은이를 가르고 기득권자, 연장자의 실패를 조롱하고 그들을 무시하자는 도발과 반항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진정한 겸허한 태도를 만나라’는 말이라고 대변한다.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지 ‘잘’ 살아야 하는 숙제가 아니기에 인생의 성공과 완벽에 대한 기준을 버리고 오히려 ‘젊음’에서 배우라고 한다. 젊음이 꼭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젊음 자체가 가진 무수한 가능성 앞에 자기 자신을 활짝 열어놓으라고 했다.

할아버지, 부모 세대의 잔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잔소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내게도 처음에 이 말들이 낯설었지만, 전적으로 공감한다. 연장자는 무조건 대접해야 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버린 우리 사회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도 노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제대로 성숙하지 않은 채 서로 공존해야 하는 현실을 바라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집에도 늘 반복하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80대의 장모님이 계시다. 하루도 변하지 않고 마치 군대 행정보급관처럼 사사건건 참견한다. 식구 하나하나 직접 점검한다. 밥 먹을 때 경우면, 누구는 왜 밥을 먹지 않는가부터 변치 않는 똑같은 잔소리를 한다. 제발 잔소리는 이제 그만이라고 만류하는 우리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린다. 자기가 하고픈 말은 꼭 하고 마는. 그리고 남이 하는 말은 좀체 들으려 않는다. 가는귀가 멀어서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이미 남의 말은 애당초 듣지 않는 습성이 배어 있는 어른이다. 혹시 치매 인가 해서 검진해 보았는데 5분 만에 검사장에서 나오면서 담당자왈. 멀쩡하다고 한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은커녕 하지 않아도 될 잔소리를 꼭 해야만 식성이 풀리는 습관의 어른들. 왜 이러는 걸까. 연장자라면 잔소리는 당연히 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젊은이들을 변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왜 그들은 시대의 변화에는 정작 눈감고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주장은 그렇게도 내세우는 것일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그러시냐고. 자기 방식대로의 사랑 표현이라고 한다. 가족끼리 그 정도 관심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신다. 나도 하릴없이 나이를 먹어가는 처지이지만, 어쩌면 연장자들이 냉철한 자기반성의 단계와 지속적인 자기 배움의 기회를 놓치거나 스스로 포기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대부분 연장자는 자기가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의 모든 분야조차 다 아는 체 훈계한다. 연장자들을 어릴 때 훈계했던 그들의 어른들이 했던 것처럼. 지금의 젊은이들은 연장자들의 훈계가 없어도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창고가 넘쳐나고 있다. 챗GPT에 물어보면 훨씬 더 친절하고 풍부하게 답해준다.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연장자들이 과연 지금 젊은이들이 왜 결혼을 미루고 왜 출산을 꺼리는지 제대로 공감하고 있을까. 멋진 배우자감을 소개해주지도 않을 거면 결혼을 재촉하지 말고, 좋은 일자리를 알선해주지 않을 거면 취업 걱정하는 잔소리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걱정되기 때문이라는 대책 없는 잔소리는 무의미하다.

회초리를 들고 합법적으로 훈계하던 민법 제915조 징계권 조항의 법률도 2020년에 이미 폐지된 터다. 자녀도 엄연히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체벌이 아닌 대화를 통해 건강한 훈육의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함부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아직 간혹 “말버릇이 없다.”라고 훈계하던 연장자가 젊은이들로부터 곤욕을 치렀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연장자들도 이제 스스로 내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경로당에서는 70대가 막내 나이라는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어떤 모임에서든 연장자들만 모여서 하는 것보다 젊은이들과 함께하면 더 활기가 넘친다. 당연한 이야기다. 나이 듦의 노회함에 젊음의 박진감이 함께 할 때 더욱 조화로운 법이다. 연장자의 지혜와 젊음의 힘이 어우러질 때 우리의 삶은 더 번성하게 된다. 대부분 연장자 위주로 회장이나 단체장이 되는 모임은 금방 고루해지고 발전이 더디다. 젊은이들이 조직을 열정적으로 끌고 나가고 연장자들은 곁에서 도와주는 모습이 이상적일 수 있다. 물론 100세 시대로 기대수명이 연장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연장자들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직 충분히 더 일할 수 있다.

나이 듦조차 마치 기득권 인양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안쓰러운 발버둥이 아니라, 내려놓아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내려놓으면 된다. 단지 연장자는 무조건 훌륭하고 공경받아야 한다는 일방적인 사회의 약속이 아니라,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 박혜윤 작가의 말처럼 오히려 경험은 부족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들의 영향을 받아 연장자도 변해가는 건강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

철학자 강신주 작가도『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책에서 자본주의사회는 나이 든 사람이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배울 게 없는 존재로 만들어놨다고 안타까워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잔소리에 앞서 두둑하게 돈을 채운 지갑을 기분 좋게 자주 여는 연장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을 찾아보려 한다. 우선 내가 역량이 되는 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젊은이에게 누가 되지 않으면서 그들이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게끔 작은 디딤돌 역할이라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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