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제 열매를 맺을 준비가 끝났다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비와 바람을 탓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것은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자연의 과정일 테니까요.
꽃은 피어 예쁩니다. 그리고 그 피어있는 시간의 길이는 다만 자연의 선택이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봐도 꽃이 지는 것은 못내 아쉽네요. 꽃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직 우리의 마음뿐일 듯합니다만.
밤새 내리던 비는 이제 그쳐가는데 빗물에 젖은 매화의 꽃잎은 하얗게 떨어져 있습니다. 매화나무 아래에도, 아직 빗물이 가득한 화단의 경계석 위에도 하얀 아쉬움으로 남아 있네요. 그런데 매화는 지는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한 점 분홍 빛을 간직한 꽃잎이 하얀 꽃잎 위에 기대고 있습니다. 둘 다 작은 물방울을 담고 있군요. 마치 하늘이 비치는 잔잔한 호수에서 조각배에 타는 연인들 같네요.
꽃잎과 함께 꽃받침도 떨어져 있군요. 아마도 할 일을 다한 듯한 꽃술도 꽃받침과 동행하는 듯합니다. 그렇게 물 위를 떠다니듯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꽃이 떨어진 가지에서는 머지않아 초록색 매실이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겠지요?
경계석의 이어진 부분이 작은 시내가 되는 듯합니다. 빗방울을 간직한 꽃잎들은 물에 흘러 땅으로 돌아가겠네요. 어쩌면 그대로 마르려나요? 그늘이 지니 꽃잎은 더욱 하얘지는 듯합니다. 맑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게 됩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구름이 밀려가고 또 흩어지며 햇살이 나오려나 봅니다. 진한 향이 올라오는 커피를 마시며 이별의 곡으로 알려진 쇼팽의 연습곡 작품번호 10의 3번을 들어봅니다. 왠지 마음이 잔잔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