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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2. 2022

자연의 본질과 인간의 삶에 대한 어떤 생각

자연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환한다는 사실도 하나의 법칙인 듯합니다. 생물은 자연에서 태어나 살아가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본능이라는 법칙을 따르기도 합니다. 다윈에 의하면 생존과 번식은 생물의 중요한 삶의 이유인 듯합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고 삶 자체인 것이지요.     


그런데 생물의 생존에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물들에게는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한 먹이 사슬이 있고 경쟁이 있고 또한 공생도 있습니다.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식물에도 경쟁은 있습니다. 더 많은 햇빛을 얻기 위해 성장 경쟁도 하고 침엽수와 활엽수처럼 영역을 넓히기 위한 경쟁도 있습니다. 소나무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천연 제초제 성분을 뿌려 주변의 풀들을 물리치기도 합니다. 콩과 식물과 뿌리혹 박테리아처럼 공생하기도 합니다.       


식물은 번식을 위해서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합니다. 바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꽃가루와 꿀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동백처럼 동박새와 서로 협력하기도 합니다. 어떤 식물들은 특유의 냄새로 파리를 부르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경쟁을 피해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또한 멀리 퍼져나가기 위한 전략도 다양하고요. 몇 개의 탐스러운 열매로 동물들을 유혹하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작은 열매들이 새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 동안 매달려있기도 합니다. 다들 각자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생존하고 또 번식해 가는군요. 식물은 동물과 공진화를 하기도 하지만 동물의 먹이가 됩니다. 가시로 힘겹게 저항하기도 하면서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섭취해야만 하는 동물은 생존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 보입니다. 먹이사슬은 슬픈 숙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먹이사슬의 아래로 갈수록 개체 수를 많이 늘리고 상위 포식자는 스스로 적정 개체 수를 유지하려는 듯합니다. 이런 먹이 사슬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정해 보이지만 각 동물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겠지요. 사실 사람도 외부에서 에너지를 섭취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미 장자께서 '당랑박선(螳螂搏蟬)'으로 설명하지 않으셨던가요? 그리고 새가 사마귀를 노리고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는 것을 바라보던 장자에게 과수원 주인이 쫓아온 것을 보면, 인간도 본질적으로는 그 연장선에 있는 듯합니다. 인간끼리도 말이지요.       


동물들의 번식에는 수많은 전략들이 구사됩니다. 거기에는 조화로운 끌림, 목숨을 건 경쟁 그리고 아름다운 희생도 있습니다. 또한 강탈과 사기도 있고요.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동물들의 짝짓기 전략은 다양하고도 치열합니다. 또한 양육의 방식도 다양합니다. 거기에도 양육을 위한 눈물겨운 희생, 또는 무책임 그리고  암컷 또는 수컷의 헌신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종에서 암컷이 새끼들을 돌봅니다. 특히 포유류는 그렇게 진화된 듯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짝짓기의 결정권을 가진 성이 양육을 한다고 하는군요. 임신과 양육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각해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자연계의 생물의 생존과 번식 방법은 정말 다양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식이겠지요. 자연은 그렇게 각자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입장으로 진화해온 듯합니다. 그것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연의 법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인 듯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각 종의 특화된 전략이 각 개인의 특성에 따라 모두 나타납니다. 인간은 한 종으로서 공통된 속성이 있지만 또한 개인 간의 차이도 다양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욕망은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하지만 인간은 본능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온전히 지배받지는 않는 듯합니다. 인지가 발달함에 따라 인간에게는 선악이라는 개념이 발생했고 공존의 방식과 공멸의 위험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채집과 수렵에서 벗어나 농경과 목축을 하며 정착생활을 한 이후에는 문화와 문명도 만들어 냅니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삶과 집단의 질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온 과정이기도 합니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는 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야생과 문명이 갈라지네요.     


인간은 본능을 넘어 다양한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개인 간의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 듯하고요. 어느 누구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전력을 다하기도 합니다. 누구는 봉사하는 즐거움을 최고로 치며, 누구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독신으로 살아갑니다. 위험에 처한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인 사랑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다양한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 인간은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삶은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하고 싶어 집니다.      


엊그제 본 벚꽃은 분홍빛이 감돌기도 하고 하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꽃은 피어나고 벌들은 꿀을 찾아 모여듭니다. 하지만 인간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오만에 빠질 일은 아니고 오히려 겸허하게 자연을 대해야 할 듯합니다. 자연이 있어 우리도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호기로운 마음과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휴식과 위안을 주기도 하고요. 문명 속에 살아가는 우리도 사실은 대자연의 한 부분인 것이네요. 그러므로 자연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공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자연은 우리의 포근한 집이며 살아가는 터전이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을 예술이라 부르건 아니면 삶이라 부르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인간 역시 아름다운 존재인 듯합니다. 아름다운 봄날에 엘렌 그리모의 피아노 연주와 파보 예르비의 지휘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을 들어봅니다. 달콤한 봄바람 같은 멜로디와 맑은 피아노 소리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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