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태도로 다정하게 대하는 여인을 보면 우아하다고 느낍니다. 부드러운 심성의 여인에게는 '여성스럽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씩씩한 남자가 위험에 처한 여자를 구해주는 모습을 보면 '남자답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성스럽다'와 '남자답다'라는 의미는 그것이 다일까요?
남자와 여자는 인간으로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렇게 평등한 인권을 가진 존재입니다. 역사를 통해 사회적 차별은 존재했습니다만. 하지만 남녀 간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생물학적 차이가 심리적 차이를 만들었는지도 모르지만요.
그런데 여자의 몸과 남자의 몸 중 누가 더 아름다운 것일까요? 둘 다 아름답지만 굳이 우열을 가리라는 난센스 질문에는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남자에게는 여자가 더 아름답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더 멋지게 보이지 않을까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모두 완전한 비례를 갖춘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각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여성 누드 조각은 미의 여신 비너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있습니다. 가슴과 배 그리고 엉덩이가 유난히 불룩한 이 작은 여자의 모습에는 아마도 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듯합니다. 그런데 이 유물의 이름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입니다. 미의 여신의 이름을 붙인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봅니다. 아마도 다산의 상징에서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여자의 몸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알맞게 진화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몸 안에서 아기를 키우고 또 세상에 태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육아를 통해 한 인간으로 성장시킵니다. 그런데 임신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또한 출산은 상당한 고통과 위험이 수반됩니다. 육아는 매우 힘든 과정입니다. 인간이 서서 걷게 되면서 미숙아를 낳게 된 이후 엄마는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야 합니다. 젖을 먹이는 것뿐 아니라 수많은 보살핌이 있어야 아이는 생존하고 커갈 수 있습니다.
이제 아이가 밥을 먹게 되면서는 아빠의 역할도 중요해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역할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엄마는 정서적 위안 이상이기도 합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엄마한테 더 잘한다고 섭섭해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아이들은 한때 엄마 몸의 일부였거든요.
어쩌면 여성의 우아함은 모성애에서 나오는 듯합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비록 그녀가 어린이라 하더라도 사춘기를 지나며 여자로 커갑니다. 도킨스식으로 말해보자면 여자들은 모성의 밈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여성성은 보다 애정적이며 협력적이고 따라서 우아합니다.
그렇다면 남자답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대부터 수렵은 남자의 몫이었습니다. 아마도 매머드 같은 거대한 동물을 사냥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한 부족 간의 약탈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부족을 지키는 든든한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을 해서 부족에게 단백질을 제공하며 부족을 보호하기도 하는 힘은 남성성의 상징이겠지요. 그리고 그 힘 안에 내재된 것은 아마도 남편과 아버지의 마음일 듯합니다.
이제 산업사회가 되어 이 시대의 남자들은 돌도끼 대신 넥타이를 매고 직장에 출근합니다. 당연히 아내와 자식을 잘 먹여 살려야겠다는 의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는 아드레날린을 뿌리며 동물을 사냥하던 것과는 다릅니다. 상당한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때로는 고통을 안으로 숨겨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남편 또는 아버지들이 가진 용기의 또 다른 이름일 듯합니다.
고대에는 남자도 많이 울었다 합니다. 산업사회가 되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눈물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남자들은 강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고 그에 따라 내적 갈등은 커져갔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남자들은 중년이 되면 드라마를 보며 울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호르몬의 문제가 아니고 오랫동안 참아왔던 감정을 이제야 승화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지금도 옳은 일이라면 신념을 버리지 않거나, 이익을 위해 쉽게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반드시 남자만은 아닙니다.
모성이나 부성이 여자와 남자의 모든 행동의 원인으로 설명되지는 않는 듯합니다. 여자와 남자의 심리적 차이는 있지만 인간의 심성, 욕망, 의지 등 공통의 속성 또한 크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평등한 시대에 여자와 남자의 심리적 차이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좁혀진 듯도 합니다. 남아있는 것은 이미지일 뿐도 하고요. 어쩌면 이제 심리적 측면의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보편적 인간의 개별적 차이일 듯도 합니다.
지금 시대는 정보 시대입니다. 이 시대를 움직이는 힘은 지적인 역량이지 근육의 힘이 아닙니다.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여성스럽다는 말도 남자답다는 말도 조금 달라져야 할 듯합니다. 어쩌면 여성스럽다는 인간스럽다, 남자답다는 인간답다고 말해야 할 듯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여자와 남자가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의, 남자는 남자라는 공통적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가진 고유의 특성 때문에 서로에게 더욱 매력적이고 더욱 아름다운 듯합니다. 어쩌면 애정이 가득한 여성스러움과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는 남자다움이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는 듯도 합니다.
암수가 다른 두 꽃이 서로의 꽃가루와 꽃잎을 이겨 빚어낸 낙상홍의 열매를 바라봅니다. 초록 잎 사이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가 아름답습니다. 빨간 볼에 뭔가 보조개가 들어가 있는 듯하지만 열매 안에서는 단단한 씨앗이 영글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빨간 낙상홍을 보며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I Puritani) 중 ‘아, 그대 사랑하는 이여(A te o cara amor talora)’를 들어봅니다. 사랑하는 두 남녀의 노래는 아름답고 또 달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