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려는 지 날씨가 흐릿합니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네요. 산책길의 겹벚꽃은 벌써 다 떨어져 가고 초록의 잎들이 커가고 있습니다. 줄을 지어 서있는 벚나무에는 가득했던 꽃 대신 버찌가 달려있습니다. 초록 잎 사이에서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봅니다. 이름 모를 새는 아침 식사 중인가 봅니다. 뭔가를 물고 신나게 날아가는군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가지마다 가득 피어있던 매자나무의 붉고 노란 꽃들은 벌써 다 져가네요. 땅 위에 가득한 겹벚꽃 나무의 분홍색 잎 위에 몇 송이만 남아있군요. 꽃잎은 깨져버리듯 지고 이제 붉은빛의 씨방이 자라나려나 봅니다. 이제 꽃은 져도 꽃과 열매의 이야기는 계속될 듯합니다. 꽃이 열매가 되어가니까요.
지난주에 꽃봉오리가 가득했던 팥배나무의 꽃은 이제 활짝 피었습니다. 초록의 잎 사이로 아이보리색의 꽃이 이 가지 저 가지에 가득 피어있네요. 꽃봉오리, 벙글어지는 꽃, 활짝 핀 꽃들이 모두 말간 모습입니다. 초록의 잎들에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상큼한 연두 색감을 보여줍니다.
맑은 느낌의 꽃들이 길게 늘어진 가지마다 탐스럽게 피어납니다. 초록이 짙어가는 숲 속에서 잔잔한 노래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꽃들의 노래일까요 아니면 새들의 노래일까요?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두 송이가 정겹습니다. 그녀들의 맑고 싱그런 미소를 말없이 바라보게 됩니다.
화살나무의 연두색 꽃은 벌써 져가고 씨방이 부풀어 올라 있기도 합니다. 메마른 땅을 뚫고 올라오던 고사리의 순은 벌써 초록의 잎으로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군요. 하얀 꽃잎에 보라색 줄이 선명한 제비꽃도 바라보며 다시 걸어봅니다.
하늘은 여전히 흐린데 약간 땀이 날듯합니다. 어제 만큼은 아니지만 오늘도 기온이 꽤 오른 듯하네요. 벌써 더워지는 것일까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초록이 짙어가는 숲을 바라봅니다. 바람은 잠잠하고 멀리 산새 소리가 숲의 고요함을 깨워줍니다.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던 산사나무 꽃도 활짝 피어납니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에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꽃봉오리도 꽃도 산뜻하네요. 가지마다 한가득 화사하게 피어있습니다. 이리 봐도 산뜻하고 저리 봐도 멋지군요. 맑은 향기가 가득한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듯 피어나는 산사나무 꽃들의 모습에는 어떤 활기가 가득합니다. 그녀들이 노래를 부른다면 왠지 신나는 곡일 듯하네요. 먼 하늘을 응시하는 그녀들의 뒷모습은 고즈넉한 풍경이 됩니다.
어떤 꽃은 지지만 또 어떤 꽃은 피어납니다. 봄날에 계속 이어지는 꽃들의 릴레이에 산책자는 그저 즐거울 뿐입니다. 그런데 산들거리는 꽃들을 바라보다 몇 년 만에 선배와 통화를 하게 됩니다. 문득 제가 생각났다고 하시는군요. 서로 오랜만이라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누구는 또 누구에게 마음의 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기억하는 한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마음의 꽃은 시들지 않을 듯도 하고요.
나에게 그가 기쁨이듯이 그에게도 내가 기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전한다면 기쁨도 더 커지겠지요. 이 봄날에 그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Liebestraum) 3번을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피아노 연주로 들어봅니다. 하얀 꽃들이 활짝 핀 화사한 봄날이 더욱 달콤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