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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1. 2022

붉은 열매와 물든 나뭇잎 그리고 모차르트의 라크리모사

야광나무 열매가 빨갛게 익어갑니다. 볼수록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고 생명에 대한 놀라움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나뭇잎도 물들어가네요. 아마도 겨울을 준비하나 봅니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낙엽은 추위로부터 뿌리를 보호하고 썩어서 나무에 영양분을 준다고 합니다. 자연의 법칙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어느 잎은 벌써 떨어졌지만 아침 햇살을 받는 붉은 열매들은 반짝입니다. 뭔가 그녀들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늘에서도 붉게 붉게 익어갑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것은 나뭇잎 만이 아니고 열매도 있네요. 작고 붉은 열매들이 땅의 이곳저곳에 가득 떨어져 있습니다.      


열매가 조금 더 큰 야광나무와 조금 더 작은 아그배나무는 사이좋은 이웃입니다. 다들 모여서 붉게 익어갑니다. 아그배나무의 노랗게 물들어가는 잎 아래에서 작은 열매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듯합니다. 다들 입을 모아 힘차게 가을의 노래를 부르네요.      


길게 뻗어 나온 줄기 끝의 아그배나무 열매가 반짝반짝하네요. 노란 잎새와 붉어지는 열매들이 가을바람에 산들산들 춤을 추는 듯합니다.      



이곳의 야광나무와 아그배나무는 지난봄에 새순이 돋고 연두색 잎이 커가더니 분홍색 꽃망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뭇가지마다 하얀 꽃이 활짝 피고 다시 꽃이 지며 작은 열매가 되었습니다. 한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과 비를 맞으며 초록 열매가 커가더군요. 이제 가을이 되니 붉게 익어가는데 안에서는 씨앗이 단단하게 영글어가고 있겠지요. 그런데 벌써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는군요. 새와 함께 멀리 날아간 열매는 어디에선가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면 새싹을 틔울 듯도 합니다.     


나무에서 돋아난 초록의 나뭇잎은 광합성을 하며 나무를 키우고 살아가게 하더니, 계절이 변하며 점점 노랗게 물들어갑니다. 이제 바람이 불면 아름다운 율동을 보여주며 땅으로 떨어지겠지요. 그러고는 나무의 뿌리를 따뜻하게 보호하다가 마침내는 썩어 나무만이 아니고 씨앗에서 돋아나는 새로운 싹에게도 영양분을 주게 될 듯합니다. 꽃과 열매 그리고 새순과 낙엽으로 계속되는 생명의 순환이 아름답습니다.      


이런 자연을 보며 사람들은 부활과 환생을 생각했던 것일까요? 사람에게도 순환은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식물과 비슷한 모습은 아니겠지요. 문득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차르트의 장례식 장면이 생각납니다.     


너무나도 단출한 그의 장례식에 '라크리모사'가 울려 나옵니다. 위대한 작곡가의 35년간의 삶은 이렇게 마감이 되는군요. 당시의 장례식이 모두 이와 비슷한 모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말년에 쪼들리는 생활을 한 것은 알지만 아내 콘스탄체가 아니더라도 살리에리나 다른 친구들이 조금 더 장례식 비용을 댈 수는 없었을까요?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하다 미완성으로 남긴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Lacrimosa)'를 다시 들어봅니다. 레퀴엠은 라틴어로 '안식'이라고 하는군요. 가사를 조금 음미해 봅니다.     


Lacrimosa dies illa,

눈물 어린 그날,      


Qua resurget ex favilla

티끌로부터 부활하여     


그녀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니 마음 한구석에서 슬픔이 배어 나오는 듯합니다. 어떻게 슬픔마저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프리메이슨의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모차르트입니다. 하지만 그의 미사곡에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가득 배어있습니다. 그의 대관식 미사곡 중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을 소프라노 캐틀린 배틀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빈필의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서의 연주가 멋집니다.      


모차르트는 오래전에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음악은 지금은 전 세계에서 연주됩니다. 관람객들에게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면서요. 잠시 좋아하는 곡을 생각해봅니다.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1번 그리고 23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3번과 5번도 떠오릅니다. 그리고 클라리넷 협주곡, 플루트 협주곡 2번, 플루트와 하프 협주곡, 오보에 협주곡, 바순 협주곡, 호른 협주곡 1번, 교향곡 25번, 35번, 40번, 41번, 또한 오페라 후궁에서의 도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마술피리.... 아, 너무 많네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부인의 아리아 '어디에 있는가, 아름다운 순간들은(Dove sono i bei momenti)'을 들어봅니다. 백작부인은 이제 하녀 수잔나와 옷을 바꾸어 입고 백작의 바람기를 고치려 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그와의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안타까워지는가 봅니다.      


가을은 점점 깊어가고 야광나무 열매와 아그배나무 열매는 반짝이며 붉게 익어갑니다. 그녀들은 생명의 환희를 느끼는 것일까요? 이 또한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지금은 모차르트의 라크리모사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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