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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1. 2022

10월의 노래, 가을의 노래

이제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입니다. 한 여름의 더위는 어느덧 멀어지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느낌입니다. 잠시 시간을 돌아보니 벌써 10월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깊어가는 이 가을에도 꽃은 피고 열매는 더욱 진하게 익어갑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가을의 꽃과 익어가는 열매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봅니다.


노란 국화가 활짝 피어납니다. 진한 국화향을 맡으니 새삼 가을이 느껴지네요. 왠지 누나 생각도 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와 잘 놀아주던 누나의 머리는 벌써 많이 희끗희끗 해졌습니다. 아직도 어린 동생에게는 애틋한 미소를 보내주고 있지만요. 보라색 국화에서는 왠지 보랏빛 향기가 나는 것 같네요. 색깔은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나 봅니다. 그렇게 보라색 향기가 나는 보라색 꽃에 다가가 봅니다.      



풀숲에는 서양 등골나무의 꽃이 해사합니다. 꽃은 지고 잎만 남아있는 비비추의 초록 잎 사이로 작은 꽃들이 모여 피어 하얀 미소를 보내옵니다. 이름을 생각하니 어느 먼 곳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나 봅니다. 그녀는 이국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씩씩하게 살아가며 꽃을 피우고 있군요.        


새콩의 가는 줄기에는 작은 꽃이 예쁘게 피었네요. 살짝 벌린 입술 같은 보랏빛 꽃잎에서는 맑은 향기와 함께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아마도 가을을 즐거워하는 노래이겠지요. 가을 햇빛은 환하게 비쳐오고 남천의 열매는 붉어집니다. 단단한 느낌의 열매 안에 햇빛을 가득 담아 가면서요. 얼굴을 간질이는 밝은 햇살에 눈이 부신 듯 그녀들은 눈을 반짝이며 깔깔거리네요.      


그늘에서 산들바람에 흔들거리는 이곳의 매자는 상쾌한 느낌입니다. 잎새도 열매도 아직 초록인데 뭔가 느릿느릿하고 여유 있는 느낌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도 서두를 것 하나 없다는 표정 같기도 하고, 아직 푸릇한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듯도 합니다. 가을 햇살도 받고 따스한 바람도 맞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붉어지려나 봅니다. 그녀도 느림의 미학을 아는 것일까요? 그래서 한 겨울에도 하얀 눈을 맞으며 붉게 붉게 남아있는 것일까요?     


어느 매자 열매에서는 빨갛게 불이 켜지는 듯합니다. 불씨가 커지기 시작하면 주변은 금방 붉게 타오르겠지요. 가을은 생각보다 빨리 깊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이 화사한 가을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즐겨보려는 듯 하나둘씩 붉어지고 있습니다.       


가을 햇빛이 그림자를 만들며 지나가는 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어봅니다. 언제부터인지 10월이면 한 번씩 듣게 되는 노래네요. 세월이 지나도 소프라노 금주희 씨의 목소리는 여전히 풋풋한 느낌입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아침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녀는 휴일 아침의 전화에 깨어난다는데 산책자는 그녀의 노래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반가운 목소리의 주인공과 함께 그녀는 가을날의 어느 휴일을 즐겁게 보내겠지요. 산책자는 오랜 친구의 반가운 전화를 받았으니 즐거운 이야기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여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머지않아 이곳에도 영상 속의 화면들처럼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겠지요.      


이제 완전히 붉어진 낙상홍은 그늘에서도 초록과 빨강의 선명한 대비를 보여주며 반짝반짝 빛이 나는군요. 낮게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는 초록 잎과 빨간 열매들의 가벼운 움직임이 가을을 즐거워하는 몸짓 같습니다. 이 가지에도 저 가지에도 초록 잎은 살랑이고 붉은 열매들은 반짝입니다. 줄줄이 달려있는 붉은 보석에서 빛이 나는 듯 단단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그녀들은 그렇게 아름답게 익어가며 스스로 살아있는 보석이 되어가는군요. 어느 열매는 빨간 볼이 마치 터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빨갛게 익고 익어 누군가에게는 설렘의 대상이 되어가면서요.        


작은 열매들이 가득 달려있는 좀작살나무도 가을을 느끼고 있는가 봅니다. 보랏빛으로 익은 열매들은 반짝이고 초록 잎은 조금씩 노랗게 변해가는군요. 그런데 어느 열매는 벌써 갈색으로 말라 가기도 합니다.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잘 익은 열매는 땅으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송알송알 달려있는 열매들이 조금씩 색깔이 변하는 잎 사이에서 진한 보랏빛으로 반짝입니다. 마치 보석 상자가 열려있는 듯하네요. 말 그대로 빛나는 가을이네요. 그런데 산책자도 덩달아 눈이 부십니다.       


가을은 주황색으로 익어가기도 합니다. 초 가을보다 조금 더 발그레해진 야광나무 열매에는 어떤 그리움이 배어 가는 듯도 합니다. 단지 산책자의 느낌인지도 모르지만 그리움은 이제 가을의 햇살을 간직하며 더욱 붉게 익어가겠지요. 색깔이 변해가는 나뭇잎 사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은 가을 같습니다. 어느 시인이나 산책자의 기도가 없더라도 점점 익어가며 단맛을 더해 가겠지요. 생각해 보니 그녀는 때를 알아 스스로 붉어지는군요. 그런데 그녀는 그녀를 보며 우리의 마음도 따라 붉어지는 것을 알기나 할까요?     



이 초록의 잎들은 이제 단풍이 들며 점점 붉어지고 눈이 내리면 하얗게 변해가겠지요. 하지만 마른 가지에 다시 매화는 피고 세상은 연두색으로 살아날 것입니다. 또한 진하게 익어가는 열매들은 땅으로 돌아가 추위를 이기고 다시 초록의 새싹으로 돋아나겠지요. 시간은 그렇게 말없이 흐르고, 자연의 색깔은 변해가고, 순환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지요. 어쩌면 그것이 세상의 진실의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움은 그립다고 소리친다고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간직한다면 더욱 깊어질 듯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푸르른 날에,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하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며, 만나고 싶으면 만나야 할 듯합니다. 가끔씩 '푸르른 날'을 따라 부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어쩌면 마음속에서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르던 그리움이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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