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하는 마음
이제는 가을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맑은 가을 아침의 하늘은 파랗고 흰 구름은 말없이 흘러갑니다. 산들 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한 느낌인데 커다란 꽃사과나무에서는 꽃사과가 하나 둘 익어갑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초록의 바람이 되어가는 듯하고요.
가을이 되면 김현승 님의 '가을'이 생각납니다. 봄과 대비하며 가을을 노래한 그의 시를 읽어보며 새로운 계절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오늘따라 마음에 닿는 구절을 반복해서 읊조려 봅니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시인도 봄날에 화사한 꽃들이 지며 열매가 되는 모습을 이리저리 바라보셨던 것일까요? 그런데 이제 가을이 되니 시인의 생각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보석 같은 시어가 되는 듯합니다.
가을 아침이니 별 대신 수풀 속에서 빛나고 있을 붉은 보석들을 보러 가기로 합니다. 산들바람이 시원하니 발걸음이 조금 빨라집니다.
하루가 다르게 붉어지는 낙상홍의 열매들이 산들바람이 부는 초가을의 멋진 풍경이 되네요. 이 가을 아침에 다들 붉은빛을 반짝이며 활기찬 모습으로 깨어나고 있습니다. 기지개를 활짝 켜는 그녀들의 초록 미소와 빨간 웃음을 한꺼번에 보게 됩니다.
긴 가지를 따라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사뿐사뿐 걸어가는 듯합니다. 왠지 산들바람을 맞으며 춤을 추는 듯도 합니다. 그렇게 그녀들은 화사한 가을 아침에 빛나며 붉은 보석이 되어 가는가 보네요.
가을을 맞이하는 그녀들의 마음이 점점 붉어지는 듯합니다. 그녀들의 마음에는 지난 초여름에 피던 꽃의 기억과 지난여름의 뜨겁던 태양빛도 담겨있겠지요. 이제 가을바람을 맞으며 붉게 익어가며 새로운 계절을 완성하려는 것일까요?
얼굴을 간질이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다시 천천히 걸어봅니다. 이곳의 매자나무는 올해는 열매가 많지 않네요. 지난 봄날에 가득 피어있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그런데 둥그스름한 잎들도 보기 좋습니다. 초록색이기도 하고 연한 자주색이기도 한 색색의 잎들이 조금씩 진하게 물들어갑니다. 그런데 자주색의 잎 가장자리에 밝은 연두색 테두리가 보입니다. 처음 보는 모습이 산뜻합니다.
초록 잎 안에서 익어가는 좀작살나무의 열매는 마치 보랏빛 보석 같습니다. 아침 햇살에 맑게 반짝이는 그녀들의 미소는 색깔만큼이나 진해져 가는 듯합니다. 길게 늘어진 줄기를 따라 보랏빛 보석들이 굴러 내려오며 즐거운 환호성이 되는 듯하네요. 잔잔한 숲 속의 고요가 그녀들의 가벼운 움직임에 살랑이는 듯합니다. 그녀들의 나지막한 연두색의 미소가 환한 보랏빛 웃음으로 번져가며 그대로 춤이 되고 노래가 되어갑니다.
둥근 야광나무 열매의 볼이 살짝 붉어졌네요. 그렇게 조금씩 단장을 하며 가을을 맞이하려나 봅니다. 나뭇가지에는 그녀들의 발그레한 미소가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그녀들의 미소는 그렇게 환하게 반짝이기도 하네요. 점점 붉어지는 아그배나무의 작은 열매들의 흐드러진 웃음소리도 들려옵니다. 이제 가을이 깊어지면 그녀들은 점점 익어가며 붉은 보석이 되겠지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열매들을 바라보자니 가을과 함께 익어가는 마음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던 예이츠의 말이 맞는가 봅니다. 열매들에게도 마음이 있다면 가을에는 붉어지고 또 뜨거워질 듯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석처럼 반짝이는 마음을 우리에게도 전해주겠지요. 그런데 이 가을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에는 어떤 보석을 담아야 할까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들으며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Carion Wind Quintet이 들려주는 연주가 달콤합니다. 각각의 아름다운 음색을 뽐내는 바순, 오보에, 플루트, 호른 그리고 클라리넷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멋지게 어울리네요. 어쩌면 여러 가지 생각이 깊이 있게 어울리며 사색의 보석이 될 듯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