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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1. 2022

매미 소리가 들려오는 여름날의 단상

창문을 여니 습기 가득한 바람 끝에는 언뜻언뜻 선선함이 배어있는 듯합니다. 오늘이 입추라더니 바람도 벌써 느낌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그런데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무겁게 흘러가고 있네요.      


알맞은 때가 지나가기 전에 짝을 찾으려는 매미소리가 우렁찹니다. 힘찬 유혹의 소리이지만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귀를 때리듯 울려오는 강한 소리에서는 처절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서 매미가 운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매년 이 시절이 되면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런 강렬한 울음이 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제 여름은 무겁게 가라앉으며 대지로 흩어지는 듯합니다. 점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더위를 조금씩 어디론가 실어 가게 되겠지요.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유리잔에는 물방울이 조금씩 커지더니 이내 흘러내립니다.     


왕충(王充) 선생에 의하면 우리는 무위자연의 우주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의 탄생에 우리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자연의 법칙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라져 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가며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발견하며 그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며 수많은 우연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연하게 다가오는 만남은 그의 의지에 따라 특별한 인연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인연에 의해 서로는 삶의 즐거움을 더하며 세계를 키워가게 되겠지요.      


그런데 어떤 인연은 인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기도 합니다. 문득 젊은 시절의 어느 봄날에 송광사 대웅전 앞뜰에서 만났던 파르스름한 머리의 비구니 스님이 생각납니다. 희미한 기억 속에도 살짝 빛나던 하늘색의 눈동자는 선명하네요.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천천히 걷던 회색빛 승복의 그녀에게서는 어떤 아우라가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엊그제 보았던 꽃과 열매를 다시 봅니다.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꽃이 피어납니다. 아마도 계절과 상관없이 각자에게 알맞은 시간에 맞추어 꽃을 피우는 것이겠지요.     


하얗게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니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꽃잎인 줄 알았더니 나비가 앉아있습니다. 그렇게 꽃은 나비를 부르고 나비는 또한 꽃이 되는군요. 낮게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고 나비도 날개를 펄럭입니다. 이렇게 나비는 꿀을 얻고 꽃은 열매를 맺게 되겠지요.      


     

마치 나비 같은 바깥쪽의 꽃의 안에서도 작은 꽃이 피어납니다. 안쪽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들은 하얀 별 같습니다. 이 꽃의 이름이 산수국이 아니고 원예종 나무수국 플로리분다라고 알려준 어느 분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백당나무에서는 열매가 커가고 있는데 어느 나무에서는 꽃이 피어납니다. 작은 꽃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한데 아마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가 친구이었건 연인이었건 '나'에게는 꽃이었네요. 내가 의지를 가지고 그를 바라보고 또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도 다가와 내 마음의 꽃이 되었나 봅니다. 그런데 만일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나는 그에게 무엇이 될까요? 나비가 될까요? 아니면 새가 될까요? 어쩌면 그가 꽃이라면 나비가 될 것이고 그가 벌써 열매가 되었다면 새가 되지 않을까요?      


어느 여름날에 꽃도 보고 나비도 보고 이런 생각도 해보며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도 들어봅니다. 눈을 감고 들으니 뭔가 아련한 생각들이 자꾸만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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