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풍경 그리고 색깔이 다른 옥수수
이제 여름은 한가운데 들어와 있고 무더위는 절정인 듯합니다. 흰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은 파랗기만 한데 초록의 대지에 내리쬐는 햇살은 강렬합니다. 열기가 배어있기는 하지만 낮게 불어오는 바람이 싫지만은 않네요. 비록 땀은 나지만 뭔가 건강해질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뜨거운 햇빛을 가득 받고 있는 커다란 배롱나무는 유유자적한 모습입니다. 왠지 더워도 상관없다는 듯 꽃봉오리를 연달아 터뜨리고 있는데, 진한 분홍색의 화려한 꽃들은 느릿하게 하늘거리고 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에 흰 구름과 함께 붉은 꽃이 흐르는 듯합니다. 꽃봉오리는 오히려 뜨거운 날씨가 좋다는 듯 툭툭 터지며 활짝 피어납니다. 작은 초록의 꽃봉오리 안에는 커다란 꽃이 담겨있었군요. 배롱나무의 꽃그늘 아래에서 뜨거운 햇살을 피해봅니다. 그런데 배롱나무의 꽃들은 스스로의 그림자에 그늘이 져도 그 화려한 모습은 여전합니다.
길가의 그늘 쪽에 피어있는 구기자 꽃에서는 낮은 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활짝 핀 진한 보랏빛의 꽃과 연한 색감의 뒷모습을 가까이 들여다봅니다. 그러고 보니 노랗게 변해버린 꽃도 있군요. 이제 열매를 맺으려는 것이겠지요.
지난봄에 묵직한 향기를 날리던 때죽나무의 꽃은 이제 열매로 익어갑니다. 꽃봉오리와 닮은 열매 안에는 아마도 향기가 농축되어 있을 듯하네요. 그렇게 꽃의 기억을 담은 열매는 이제 새들의 도움을 받아 멀리멀리 퍼져나가게 될까요?
댕댕이덩굴의 깨알만 한 꽃봉오리에서 작은 꽃이 연달아 피어납니다. 작은 꽃 사이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개미는 꿀을 다 모았는지 어디론가 바삐 가는군요.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던 마의 줄기가 낮은 바람을 따라 하늘거립니다. 줄기에 달려있는 작은 열매들은 마치 그네를 타는 듯 즐거운 모습입니다.
야광나무의 초록 열매가 열기가 담겨있는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렇게 반짝이며 단단한 느낌으로 커가는군요. 햇빛을 받고 있는 어느 야광나무 열매는 벌써 익어가나 봅니다. 연한 노란 색감이 배어나는 연두색의 열매가 사랑스러운 느낌입니다.
초록의 잎새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을 받으며 주렁주렁 달린 야광나무의 열매들이 달콤한 모습으로 익어갑니다. 꽃받침이 떨어진 흔적은 마치 호기심이 가득 담겨있는 어린아이의 눈 같네요. 둥근 열매들은 뜨거운 햇빛을 담으며 붉어지기도 하네요. 어쩌면 가을날의 열매가 빨간 것은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일 듯합니다.
이제 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간직하며 열매들은 익어갑니다. 그렇게 꽃의 기억과 향기를 간직한 열매들 안에서는 단단한 씨앗이 영글어 가겠지요. 야광나무의 그늘에 앉아 흐르는 땀을 식히며 쉬어가기로 합니다. 엔야의 'Orinoco flow'도 들으면서요. 경쾌한 멜로디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나무 그늘에서 포충망을 든 아이들을 만납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초등학교 삼 학년 오빠와 이 학년 여동생은 매미를 잡으러 왔다는군요. 매미를 잡을 뻔했는데 오빠가 놓치고 말았다고 동생이 약간 억울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저 남매는 커서도 매미를 잡으러 다니던 어느 여름날을 기억하게 될까요?
집에 돌아오니 식탁에 맛있는 옥수수가 놓여있습니다. 노란색이 매끈한 옥수수도 있고 군데군데 자주색 알갱이가 박혀있는 옥수수도 있군요. 문득 어린 시절에 양손으로 잡고 옥수수를 먹으며 하모니카라고 불기도 했던 생각이 납니다. 오늘도 그래 볼까요? 즐거운 생각을 해보며 테이크 아웃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십니다. 헤이즐넛 시럽을 추가했더니 향긋한 맛도 느껴집니다. 엔야의 'Book of days'도 듣는데 멀리서 매미 소리도 들려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