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박주가리는 씨앗을 날리고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차가운 느낌이 드는군요. 늦가을은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달라지는 듯합니다. 오늘도 차가운 날씨지만 스타벅스의 진한 크리스마스 블렌드를 들고 잠시 나서봅니다.      

오늘도 박주가리는 가을의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하얀 솜털이 달린 홀씨를 날리려고 하네요. 지난여름에 진한 향기를 내뿜던 솜털이 보송한 꽃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무더위 속에서 꽃이 지며 작은 열매를 맺어 키워가더니 이제 씨앗을 날리려 하는군요.     

오, 벌써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하얀 비단 실을 매단 듯한 홀씨가 막 날아가려 하네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숭고한 모습이네요. 앞쪽의 박주가리 열매도 조금씩 터지고 있습니다. 안쪽에 커피색의 홀씨가 살짝 보입니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박주가리도 홀씨도 마치 날아가려 하는 듯합니다. 바람이 좀 더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이제 터지기 시작하기도 하고 조금 기다리는 그녀들도 있네요. 각자의 속도로 최적의 시간을 찾고 있겠지요. 

말라버린 듯한 껍질이 시간을 말해주네요. 비록 거친 모습이지만 안에는 잘 익은 씨앗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조팝나무의 숲 안쪽에는 아직 초록의 열매들도 있군요. 그녀들 또한 그녀들의 시간으로 씨앗들을 키워가며 때가 되면 땅으로 보내겠지요.     

밤의 박주가리의 모습을 보러 다시 나서 봅니다. 박주가리는 밤에도 쉬지 않고 씨앗을 날리려 하네요. 플래시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느낌입니다. 박주가리의 열매 안에 가득했던 에너지가 분출하고 있네요. 씨앗 하나는 벌써 날아가려 합니다. 수많은 씨앗들은 이제 차례로 날아갈 듯합니다.      

     

이 아이들은 깊어가는 가을밤에도 묵묵히 씨를 날리고 있네요. 그 모습이 마치 어둠 속에서 자고 있는 새 같기도 합니다. 문득 조선시대 수묵화 중 창강 조속의 숙조도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새는 자고 있을지 모르지만 박주가리는 자고 있지 않네요. 안으로 에너지를 가득 모으며 씨앗을 날리고 있습니다.      

신기한 자연의 순환을 보면서 산책자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모든 것은 각자의 시간에 따라 변해갑니다. 하지만 소중한 무언가는 지금 이대로 간직하고 싶고 또 기억하고 싶은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런데 낮에도 밤에도 쉬지 않고 씨앗을 날리는 박주가리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아마도 홀씨들이 어디엔가 안착하여 새싹으로 돋아나기를 바랄 듯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날리는 박주가리의 수고로움을 응원하고 싶어 집니다.

슈베르트의 밤과 꿈을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밤바람을 가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와 묵직한 느낌의 호른의 울림이 멋지네요. 산책자의 마음에도 어떤 느낌이 울려오는데 가을밤은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깊어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