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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샘 Apr 18. 2023

다시 4월 책 속에서 만난 아이

잊을 수 없는 그림움

  이슬 내리는 아침이면 햇살이 우리를 깨우고, 하루를 보낸 고단한 몸이 집으로 돌아오면 달빛이 포근히 세상을 안아 준다. 우리의 손목에 시계가 없어도 자연은 이렇게 시간을 돌려 우리의 생을 성장시킨다. 

 매년 돌아오는 다시 4월!

  그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텔레비전에서는 침몰하는 세월호와 구조 현황이 종일 계속되고 부모들을 포함한 국민은 경험하지 못한 충격을 견디고 있었다.     

  핸드폰을 타고 오는 내 아들의 울먹임과 안전을 들은 4월 16일. 잠깐은 가족의 무사함에 감사했고, 어른들을 믿고 구조를 기다리며 죽음을 맞았을 어린 영혼들과 자식을 잃은 엄마의 마음이 내게 와 시도 때도 없이 슬픔에 잠기곤 했다.      

  착잡한 마음에 책을 읽게 되었는데,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프랑스의 작가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生 “이였다. 파리의 변두리 벨 빌 지역에 아랍인 소녀 모하메드(모모)와 유대인 노자 아줌마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노자 아줌마는 매춘부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비밀스러운 직업을 가지고 있고, 모모는 맡겨진 아이였다. 그 당시 매춘부는 자기의 아이를 합법적으로 키울 수 없었단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갔다 온 매춘부 출신의 노자 아줌마, 아랍인의 문화와 정신을 전해주는 하밀 할아버지, 유대인 의사 카츠선생님, 여장 남자 룰라 아줌마, 아프리카 출신인 왈룸마 아저씨, 모모의 친구와 우산 아르튀르 등 공통점을 찾기에는 너무 다른 이들이 각자 살아온 인생을 나누며 이웃이 되는 이야기다. 이들의 공통점을 억지로 찾으라면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노자 아줌마가 심한 비만과 수용소 생활의 후유증으로 치매와 여러 병에 걸렸을 때 모모는 노자 아줌마를 떠나지 않고 간호하며 아줌마를 대신해 살림을 꾸려나가게 된단다. 물론 이웃들에게 도움을 받아 어린아이가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해 나가며. 노자 아줌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모모는 구걸, 훔치기 등을 하면서 아줌마와의 시간을 연장해 갔단다. 아줌마의 대소변을 닦아주고, 음식을 씹어서 먹이고, 병원으로 보내려는 하츠선생님을 달래며. 신체적 정신적 안정을 지켜주는 보호자가 되어가는 이야기였다.         


 이 책은 유럽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읽는다면 산만하고 평범한 성장 소설처럼 평가될 수 있지만, 나는 자기 앞의 生을 읽으며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극한 상황에 처한 아이가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가 그리고 존중받는 삶과 죽음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라 생각했다. 모모는 아줌마의 뜻대로 죽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히틀러의 사진을 이용해서 걷기도 힘들어하는 95킬로 거구의 아줌마를 계단을 통해 지하실의 비밀 장소로 내려가 죽음을 맞이하게 해 준다. 이웃들이 아줌마를 시설에 보내지 못하게. 

 이 용기는 그녀의 생을 자세히 보고 함께 살아간 모모만 할 수 있었던 보호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였다. 존중받은 죽음과 보호.     

  우리는 나의 몸과 마음을 보호받을 보호자가 있는가? 세월호 사건 10주년이 1년 남은 현재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급에 맞게 1년에 51시간 이상. 생활안전, 교통안전교육, 신변 보호, 약물 및 사이버 중동 예방, 재난 안전, 직업 안전, 응급처치 교육을 받고, 대피 훈련도 의무화되었다. 유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현장 체험학습도 사전 사후 안전교육이 강화되고, 운전자 교육, 음주 측정 등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서 현장학습 못하겠다는 교사의 불만이 생길 정도로 촘촘한 안내서가 마련되었다.      

  유아들은 언어를 배우면서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는 성교육 때 배운 구호를 자동으로 외친다. 때로 저 뜻을 제대로 알고 외치는 것인가 의심하기도 하지만, 교사들은 유아들이 안전에 위협을 느끼면 할 수 있는 행동 요령을 자동 반응을 하도록 사고의 사례를 보여 주고, 체험 위주의 안전교육을 반복하고 있다. 

  나도 교사의 길을 좋아하고 의욕이 넘쳤으나, 교수 방법이 서툴러 신규 교사 때 맡은 유아들에게 자유롭게 해 준다고 소신으로 안전 약속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물론 내가 유아교육 현장에 들어온 90년대는 안전교육이 법제화되지도 않았으며, 현재보다 위험 요소도 현저하게 적었다. 교사들조차도 안전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았다.

  바깥 놀이터에 가면 유아들은 서로 그네를 먼저 타려고 다툼이 난다. 그래서 나는 초임 교사일 때 “싸우지 말고 같이 타면 어떨까?” 제안하였다. 내 기억 속의 그네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로 굴러서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재미가 있는 놀이기구였다. 그러나 몸의 균형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유아들에게 그 제안은 “ 두 명씩 그네 타다가 다쳐라.”라는 말과 같았다. 두 유아가 같이 올라서기도 힘들었는데 나의 도움으로 그네에 올라간 두 유아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쓰다가 한 유아가 바닥으로 떨어져 상처가 나서 우는 것으로 끝났다.

  자율적이고 재미있는 놀이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하여 지켜야 할 약속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정확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      

  안전교육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세월호 침몰 후 선박 전문가는 해양 사고를 예방하려면 “훈련, 훈련, 그리고 훈련이다. 훈련은 생명 유지와 직접 관련된다. 망망대해에 나갈 때 의지할 곳은 훈련밖에 없다. 훈련의 궁극적 목표는 사고가 났을 때 안전 대처 요령을 자동 반응(reactionary)하도록 몸에 입력하는 것이다.”라고 인터뷰했다. 수백 명의 생명을 구하기는커녕, 먼저 배를 탈출한 선원들 전부는 생명을 유기한 죄로 형사책임을 면치 못했다.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려면 어느 분야든 누구의 책임을 묻기 전에 자기 분야에서 자동 반응(reactionary)하도록 몸에 입력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아픈 교훈도 얻게 되었다.


  교육기관에서의 안전교육은 가정이나 사회에 연계되지 않는다면 효과가 없다. 안전교육에 대한 교사의 견해나 부모의 입장 그리고 사회의 입장은 같아야 한다.

자신과 가까운 친구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났을 때 자신을 안전하게 하는 방법을 몸에 입력하는 생활에 대한 일관성을 보여 주고 함께 실천하여야 하는 것이다.

 때로 안일함으로 때로 귀찮아서 게으름으로 흔들리는 우리 생의 나무에 연습과 노력으로 단단한 나이테를 하나씩 하나씩 새기듯. 


  아침마다 눈을 반짝이며 유치원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모모가 되고 싶다. 그 아이들 또한 성인이 되어 내가 나약한 사회인이 되었을 때 나의 모모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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