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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샘 Sep 20. 2023

가방 메고 모자 쓰고 휘파람 불며

옹달샘이 없는 블루베리 동산의 맛집

배낭 메고 모자 쓰고

신나게 캠핑 간다.

배낭 메고 모자 쓰고

휘파람 불며 간다.     

물놀이 달리기 춤추기 대회

가면 놀이 극놀이 신나는 캠프’     

 신나는 캠프라는 동요 가사이다. 빨리 모자를 찾아 쓰고 짐을 꾸려 일상에서 떠나고 싶은 신나는 가사이다. 이 노래를 부르는 유아들은 엉덩이를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흔들며, 마음은 벌써 교실을 나서고 있는 모습이었다. 


활동별 단위 수업이 아닌 놀이 중심, 유아 중심 교육과정에서는 유아들의 욕구를 많이 반영하여 운영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유치원이 아닌 곳에서 자연현상을 직접 관찰하거나 조사하면서 전개하는 경험. 현장 체험학습은 같은 환경 속에서 생활함으로써 생기는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나 유아의 흥미나 의욕을 일으켜 학습 효과를 높인다.      

 유아들의 대부분이 당진 시내에 거주한다는 실태를 반영하여 유치원에서 자연 친화적 교육을 해보자는 의도로 매월 찾아오는 숲 선생님들과 숲 놀이를 하였고, 계절별로 농장에 가서 농산물을 관찰, 수확하여 요리하는 체험학습을 운영하였다.     

  유아들은 딸기 농장에서 자신들의 얼굴 높이에 있는 딸기밭 두렁에서 딸기를 따서 먹고, 체험장에서 둥근 그릇에 딸기를 담아 손으로 으깬 후, 으깬 딸기를 모아 쨈을 만들어 왔다. 농장에서 유아들에게 선물로 준 딸기 모종을 유치원 텃밭에 심어 다음 해에는 시고 달지 않은 노지 딸기를 먹어 보았다. 딸기가 봄에 먹는 과일이었으나 시설재배로 이제는 겨울 과일이 되었지만, 텃밭에 심은 딸기는 제철에 맞추어 봄에 익었다. 자연의 시계는 변함없이 자연에 맞추어 가고 있으니까.     

  완두콩밭에 가서 완두콩 꼬투리를 큰 망에 담아서 교실로 가져왔다. 각자 까는 만큼 팩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기로 하였다. 반 수의 유아들은 몇 개를 까고 나서 그만하고 싶다고 했지만, 끈기가 있는 유아들은 엄마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완두콩 팩을 꽤 채워서 가져가기도 한다. 완두콩은 유아를 위한 동화에 많이 나오는 콩이라서 유아들에게 이야기가 많았다. “선생님 이 콩 심으면 하늘까지 클까요. 거인네 집에 가보고 싶은데?”

“선생님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할머니 댁에 가져가서 밭에 심어 보세요.” 

그 후 재크의 콩 나무처럼 완두콩이 자라서 거인이 사는 나라에 다녀왔다는 친구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거인의 나라에서 들려오는 황금 하프 소리를 기다린다.


6월 장마가 오기 전 빨리 감자를 캐러 가야 했다. 유치원 인근의 농가로 감자 캐기를 하러 가는데 그날은 유치원 전체의 감자 축제였다. 주무관님은 아침부터 손수레에 유아 호미와 장갑, 감자 상자를 실어다 밭에 놓으시고, 감자 줄기까지 걷어 두셨다. 반별로 시차를 두고 도착한 유아들은 호미가 놓여 있는 자리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감자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였다. 교실에서 감자는 구황식물이며, 줄기는 땅 위에서 자라고 뿌리와 덩이는 땅 밑에서 자란다는 것. 그리고 흙을 조심조심 파내지 않고 강하게 파내면 호미로 감자에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사전교육을 하였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감자는 유아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교사가 호미로 흙을 아래로 긁어내리면 감자들이 눈이 부신 햇살을 보고 부끄러운 듯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유아들은 환호하고 호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감자는 고구마와 달리 푸석한 땅에 깊지 않은 곳에 있어서 유아들은 감자 캐기를 좋아하였다.

 내가 얼마나 큰 보물을 캐내었는지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내 달라고 유아들의 부탁이 많았다. 부탁이 아니어도 현장학습 시 교사의 또 다른 임무는 일일이 사진을 찍어 각 반의 단체 대화나 밴드에 올리는 것이다.

유치원으로 돌아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찐 감자를 간식으로 먹고, 감자로 문양을 만들어 찍기 놀이도 한다. 감자를 한 가방씩 메고 하교하는 유아들은 뒤로 넘어질 듯한 모습을 연출하며 자신들의 감자를 자랑하였다. 감자를 받은 엄마들은 감자볶음, 감자 된장찌개, 군감자, 찐 감자 등 감자 요리 사진을 찍어서 단체 카카오톡에 올려 주었다. 그날은 유치원 교육공동체의 감자 축제가 되었다.     

 블루베리 농장에서는 블루베리를 따 먹고 에이드를 만들었다. 블루베리 나무의 키는 유아들 눈높이에 딱 맞아서 관찰하기도 따기도 좋았다. 농장에서 5그루의 블루베리 나무를 유치원 운동장에 가져다 놓고 블루베리 동산을 만들어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찐한 보랏빛 블루베리를 따 먹지 못하였다. 블루베리 동산의 열매는 익지 않고 초록색만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과일을 좋아하는 내가 익은 것을 다 따먹는다는 의심을 받는 상황이 되자, 궁금한 건 못 참는 행정실장님이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인간 CCTV가 되겠다고 선언한 다음 날 진실을 알게 되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는 토끼가 다녀갔고, 유아들의 기대가 가득한 블루베리 동산에는 새벽보다 먼저 산새가 다녀간다는 사실을. 옹달샘이 없어서 블루베리를 먹는 새를 발견한 실장님은 재빨리 실내화를 벗었단다. 그러나 블루베리 도둑에게 던지지 못하고 다시 신었다고 하였다. 

“왜요 실장님! 실내화 집어 던져서 블루베리 먹은 범인 새를 잡았다고 유아들에게 자랑해야지요?” 나는 웃으며 실장님의 진실을 들었다.

“그게 좋았을까요? 던지려는 순간, 블루베리도 저 산새도 유아들에게는 모두 반가운 놀이 친구인데 죽거나 다친 새를 보면 또 새가 불쌍하다고 울고불고할 애들이 생각나서 참았어요.” 

“우리 실장님! 순간의 선택이 유치원 생활을 좌우하는데 잘 생각하셨네요. 새라도 죽었으면 저 애들의 레이더 눈총을 받았을 텐데요.”

“그렇지요. 부장님! 아마 새가 실내화 맞아서 죽기라도 했으면 저는 미운 실장님이라고 애들에게 찍혀서 며칠 동안은 행정실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걸요.”


 오랫동안 교직에 있다 보면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고 교육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유아 중심 사고를 하는 멋진 직원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그렇게 찬란한 가을이 오면 블루베리 나뭇잎은 따뜻하고 붉은색으로 단풍이 들었다.

 샤인머스캣을 따고, 10월 사과를 따면 농산물 수확 체험이 마무리되었다.

 감자가 풍년이었던 체험학습을 마치고 그날의 기억을 시로 적어 놓았다. 

          

지상의 몸이

지하의 맘을 키운 시간     

보이지 않는 정수를 

호미 날 세워 긁어내던 날     

햇살 아래 몸은 뜨겁고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빛의 물음에 

준비 못 한 대답은 푸른 멍이 됩니다.      

     <감자>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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