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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샘 May 22. 2023

밥이 내 몸에 들어와

도시락 줄 맨 앞자리 아버지의 도시락

           

   “ 선생님! 밥 언제 먹어요?” 

  유치원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의식주는 인류의 본능이니 이해 못 하는 바 아니고, 유아들이 본능이 발달하는 단계라는 것을 알고 들어도 참 당황스러운 질문일 때가 있다. 

 아침 햇살과 연초록의 나뭇잎들 사이로 노란 유치원 버스가 마당에 도착하면, 세상에 없는 귀한 보물을 보듯이 맞이하는 선생님을 보며 던지는 첫 인사가 그 질문일 때는 속 상해서 대답하기도 싫었다. 얘들이 밥 먹으러 유치원 오나.     

 교실로 들어 온 유아들은 손 씻기가 끝나면 곧장 우유를 먹는다. 그 후 2시간 후 급식실에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3시간 지나면 간식을 먹는다. 유치원의 일과를 하모니 선생님은 

“먹다가 놀다가 먹다가 놀다가 신선 노릇이 따로 없다”라고 하신다. 이런 신선 노릇이 평생 가면 얼마나 좋을까?.           

  1994년부터 당진시 초등학교에 학교급식이 시범 운영되었다. 그전에는 유치원에 다니던 유아들은 점심을 어떻게 먹었을까? 대부분 유치원이 오전에만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하교하였다. 오후수업을 하던 초중등 학생들은 각자 도시락을 싸서 등교하였다. 1990년 이전까지의 도시락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에피소드가 있다. 나의 도시락에 대한 기억은 충청도에서도 가장 외진 청양군의 산골 마을에 있었다.      

  유년의 부엌은 가스렌즈가 없어서 아궁이와 석유풍로가 음식을 만드는 화력이었다. 부뚜막에 빛나도록 정갈한 무쇠솥은 반들반들 빛나는 엄마의 자존심이기도 하였다. 솥보다 앞에 자리한 두멍에 물을 채우는 것은 5남매의 역할이었다. 마당과 창고 사이 펌프에 마중물을 넣고 물을 퍼 올려, 양동이에 반쯤 담아 열 번이 넘게 오가는 것은 즐거운 놀이였다. 겨울에는 추워서 서로 나가기 싫어 슬슬 미루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엄마의 잔소리. 

“공짜로 먹은 밥이 너희 몸을 지대로 키우것어?”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밥에 대한 확실한 철학이었다. 지금까지 다섯 남매를 건강하게 살게 하는 힘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부엌과 안방이 통하는 작은 문이 있어서 음식과 물건이 오가는 지름길이 있었고, 아궁이 맞은편에는 큰 나무창고가 있어서 늘 좋은 냄새가 났다. 그 부엌의 풍경 중 가장 예쁜 모습은 아침마다 두멍과 솥 사이에 줄 서 있던 은색, 금색 양은 도시락이었다. 아이들 도시락 반찬이라는 것이 고추장에 볶은 멸치, 김치, 마늘종 볶음, 감자볶음, 장아찌, 제철 나물이었다.

  나는 언니들보다 먼저 나가 아버지의 도시락을 엄마 몰래 열어보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날은 달걀부침, 어느 날은 돼지고기 장조림, 잡채 등 특별한 반찬은 나를 갈등하게 하였다. 내 도시락에 옮길까? 열 살 남짓에 타고나길 우유부단한 여자애는 아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두번은 옮겼을까? 엄마에게 들키거나 아버지께 발각되지도 않았다. 다만 헛기침으로 맨 앞의 도시락을 챙겨 가시는 아버지가 부러워 도시락 싼 보자기를 만지며 아버지를 따라 마당까지 갔는데, 아버지는 배웅을 잘하는 정 많은 딸이라고 머리를 쓰다듬으시곤 하셨다.     

 바깥 놀이를 신나게 한 날은 급식 시간이 한 시간 남았는데도 “ 선생님! 밥 언제 먹어요?”라는 질문이 또 나온다. 뽀로로 시계 과목을 가르치며 “ 저기 시계 보세요. 검은색 큰 바늘이 크롱 그림까지 가면 급식실 가는 거예요. 먹는 시간이 정해져서 미리 급식실에 가도 영양사 선생님이 밥을 안 줘요.” 유아들은 몹시 서운해하며 실망한다. 

“자 이거랑 물 한번 먹어요. 놀이하다 보면 배고프지 않을 거예요” 작은 비타민 하나면 밥에 대한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


 이쯤에서 유아들의 급식 태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게 가고 싶다던 급식실에 가면 줄을 서서 받는 음식은 보통 교사들의 음식에 50% 정도이다. 정성스럽게 식판을 들고 각자 자리에 앉아 

“맛있는 점심 감사합니다. 튼튼한 어린이가 되겠습니다.” 기도하는 모습까지는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다. 급식 시간은 30분인데 받은 음식을 다 먹는 유아는 20명 중 3명 정도다. ‘배고파“을 구호처럼 외치던 굶주린 유아들은 급식실에 없고, 편식 대장과 느림보 거북이 유아들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선생님과 입을 닫아 버리는 유아들과의 급식 전쟁이 끝났다. 금방 먹은 내 밥의 힘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얘들은 왜 그렇게 말로만 배고플까?” 내린 결론! 아 오래전 자급자족하던 인류의 살기 위해 음식을 구해야 했던 인류의 본능을 떠 올렸다. 

“어린 인류인 나는 배고플 준비가 되어 있고, 나를 먹이지 않으면 당신들에게 후세가 없어요”라는 협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나는 너희들에게 몸의 밥과 마음의 밥을 주는 밥집의 주인으로 살기로 하였다. 인류 존속에 이바지하며.

 나에게도 그토록 절실했던 맛있는 밥에 대한 추억이 있으니까.          


아버지의 풀빵 한 봉지를 고대하던

유년의 저녁을 혼자 맞는다

야근으로 학원으로 죄다 빠져나간 집

냉장고 문을 열면 

나란한 달걀 두 줄이

기러기 아빠 형부의 눈처럼도 보이고

펭귄아빠 남동생 얼굴로도 보인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것도 복이려니

톡톡 달걀을 깨며 저녁을 밀어내는데

오 남매 깍두기 도시락 앞에 달걀부침 도시락

큰기침으로 챙기시던 아버지     

이 저녁엔 나도

그 도시락을 먹고 싶다


        <아버지의 도시락>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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