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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샘 Sep 20. 2023

승리보다 참기 힘든 유아들의 눈물

밀당을 배우는 기시시 줄다리기

“울지 마세요. 울면 진짜 지는 거예요.”

“선생님 게임 다시 해요. 내가 이겨야 해요.”

“선생님이 이기고 지는 것보다 약속한 규칙을 잘 지키면 게임을 잘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졌는데 뭘 잘해요? 다시 해요”

“그래요 그럼 토끼 팀과 거북이 팀 자리를 바꾸어서 다시 한번 할까요?”

이긴 거북이 팀도 동의하여 ‘공룡알을 옮겨라“ 게임을 다시 하기로 하였다. 게임 규칙은 첫 번째 친구가 공룡알을 가지고 반환점을 돌아와서 다음 친구에게 공룡알을 전해주고 받은 친구는 빠르게 달려가서 반환점을 돌아와서 다음 친구에게 주는 릴레이 경기였다. 8명씩 두 팀으로 나눈 게임이니 8번째 친구가 반환점을 돌아와서 출발점의 공룡알 바구니에 넣으면 끝나는 게임이었다. 

게임의 사전적 의미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승부를 즐기는 놀이‘라고는 하였으나 게임 활동은 수업 준비보다 게임에서 진 유아나 팀을 위로하는 과정이 어려운 수업이었다.      

인간의 승부 욕은 학습된 것일까?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뭐든지 이기고 봐야 한다는 부모님들의 세뇌 교육 탓일까?     

  당진시에서는 고장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체험할 수 있도록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대표 민속축제인 기지시 줄다리기가 열리는 곳이다. 조선시대부터 기지시에서 인근지역 사람들까지 모여 제사를 지내고 줄을 당기면 재난을 이겨내고 나라의 평안과 안녕, 풍년을 기원하는 500년을 이어온 전통문화가 있다. 평년에는 용왕제와 당제만 지내고 윤달이 있는 해에는 지네 모양 줄을 당기는 기지시 줄다리기를 재현한다.


 올해는 유아 줄다리기 부문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신체 활동실과 운동장에서 유아들과 줄다리기하는 줄 잡는 법, 당기는 법을 연습하고, 줄다리기에서 져도 울지 않는다는 약속도 하였다. 혼자만의 힘으로 승리할 수 없고 참여하는 이들의 마음을 맞추어 줄을 당겨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줄다리기이다. 자기중심적 발달단계인 유아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게임이나 어떤 매력에서인지 유아들은 줄다리기 연습을 좋아하였다.

 줄다리기대회 당일 우리는 주황색 티셔츠를 맞추어 입고 행사장에 도착하였다. 첫 경기를 보며 알았다. 우리가 연습한 한 줄짜리 줄이 아니고 지네 발처럼 옆에 줄이 많은 줄다리기하는 줄을 당기는 것을.

 첫 번째 게임에서 우리 유치원이 가볍게 승리하였다. 역시 연습이란 노력은 늘 보답을 준다.

두 번째 게임에서도 이겨서 8강에 들었다. 줄다리기 게임 중간중간에 참여자들을 화합하도록 하는 체험 행사가 있었는데 매우 인상적인 체험으로 가래떡 줄다리기하는 줄 만들기였다.

참여자 전원이 위생 장갑을 끼고 마주 보고 서서 가래떡을 잡고 앞으로 나가는 것인데, 가래떡을 자르지 않으니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 광장을 한 바퀴 돌릴 수 있는 매우 긴 줄다리기하는 줄이 되었다. 유아들은 가래떡이 끊어지지 않게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걸어서 나갔다. 모두 가래떡을 잡고 섰을 때는 서로서로 덕담을 나누고, 협력의 행복을 만끽하였다. 

 우리 유치원 친구들은 8강에서 졌으나, 기지시 줄다리기라는 우리 고장의 축제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줄다리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줄다리기 게임에서 졌다고 우는 친구들은 없었다. 

 줄다리기 게임에서 유아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요즘 인간관계의 방법 중 ‘밀고 당기기’를 줄여서 밀당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줄다리기가 유아들에게 밀당의 매력을 알게 해 주었기에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는 딱지치기와 종이 인형이 있다. 딱지는 공책 겉장처럼 딱딱한 종이에 동그란 모양으로 마징가 제트나 국적 불문의 곤충이 그려져 있었다. 신문지로 접은 두꺼운 딱지는 내 딱지로 내려쳐서 친구의 딱지를 뒤집으면 따는 것이었고, 종이 딱지는 입바람을 일으켜 뒤집힌 딱지를 따는 게임이었다. 나는 딱지에 관심을 덜 보이고 종이 인형을 무척 좋아하였다. 게임은 아니었으나 각자에게 내가 이름을 붙여 주고 옷을 입혀 주며 1인극을 하기 위하여 다양한 인형을 사야 했다. 그때도 종이 인형 업그레이드 버전은 있었으니까. 

 초등학교 5학년쯤 나는 매주 월요일 저금하는 날 엄마가 주신 저금 돈으로 종이 인형을 샀다. 세상에 비밀 없다지만 완전 범죄를 꿈꾸었으나, 언니가 내 종이 인형의 가계도를 다 꿰고 있었기에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나의 횡령은 부모님께 발각되었다. 들킴을 감지하고 무작정 뛰어 도망가다가 잡혀 오던 그 논길을 지금은 자가용으로 간다.   


   

구불구불 논밭 사이 좁은 길

제 키보다 높게 비료를 싣고 

탈탈탈 기어가는 거북이

바쁠 것 없는 속도와 소음까지

토기의 앞길을 턱 막아선다.

경적을 울릴까, 말까,

실갱이는 큰길에서 끝

속도를 내는 토끼와

토끼를 따라 속도를 내는 

뛰어야 거북이, 저 경운기

순간,

백미러로 보이는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     

저금할 돈으로 종이 인형 산 날

아버지에게 잡혀 온 어린 토끼

빨개진 눈으로 울며 잠든

그날의 경주를 떠 올리며

엄마가 나의 판정승을 선언한다.     

토끼가 이겼다, 경주 잘하네

어릴 때는 꼭 잡혀 오더니      

     <토끼와 거북이>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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