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미안함과 아이들의 서운 함 그리고 내 변명
2020학년도 3월 2일은 입학하는 수줍은 유아들과 엄마들의 호기심 어린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19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달으라고 지구 곳곳에 무서운 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기 어려운 상황인 학교는 무기한 입학을 미루었고, 유치원은 교육과정, 담임 배정, 반 편성, 가방과 체육복이 준비 완료였으나 학생이 없는 그저 공간일 뿐이었다.
보건복지부 소속의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독립하고,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흰머리가 점점 늘어갔고, 학교도 원격수업과 백 명 미만 등교수업, 격일 출석 수업 등 현재 지침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새로운 지침이 내려오는 변화무쌍한 시간을 살아야 했다. 유치원에서는 적용 불가능할 듯한 원격수업도 시작되었다.
유아 학비 지원금으로 원격수업 학습준비물을 교육과정 놀이 주제에 맞추어 구매 포장하고, 통학 버스 정류장으로 유아와 보호자를 나오게 하여 학습준비물은 전하였다.
“건강하게 지내다가 유치원에서 만나요”라는 문구가 붙인 학습준비물을 전해며 담임선생님이 유아를 처음 보았고, 유아들의 생활과 감염 여부를 매일 전화로 조사하여 통계를 교육지원청에 보고하였다.
2020년 5월 27일 드디어 유아들만 그것도 짝수 번호 유아들만 참석하여 각 교실에서 입학식을 했다. 입학식 동영상을 예쁘게 편집한 선생님들 덕분에 보호자들은 자녀의 교육기관 첫 입학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비대면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교사들은 누가 영상을 보겠냐며 업무부담으로 생각해 소극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유아 생활과 행사 영상은 보호자들이 조부모께도 전해져 교육을 공유하는 역할이 되었다. 비대면 수업을 시작으로 교사에게 동영상 촬영 및 편집, 탑재라는 새로운 역할이 과제로 주어졌다.
급식실에는 칸막이가 들어왔고, 유치원 입구에는 자동 체온측정기와 손 소독 기계가 설치되었다. 유치원에서 많이 실시하는 현장 체험학습은 대부분 방문형으로 바뀌었고, 행사는 취소되거나 반별로 축소하여 이루어지는 변화가 있었다.
보호자들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체험학습과 행사축소를 이해하였으나 “학습발표회”에 축소에 대한 의견은 유치원 입장과 달랐고, 설득되지 않았다. 유치원운영위원회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해 학부모총회를 거쳐 합의안을 만들었다. 반별로 연습하여 정해진 시간에 체육관에서 촬영 후 누리집에 올리기로 했다.
새로운 형식의 학습발표회를 계기로 코로나 이전의 운동회와 학습발표회가 단순한 교육기관만의 행사가 아닌 가족 잔치, 동네잔치였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였다.
잔치란 맛있는 음식과 춤 그리고 노래, 게임이 있어서 즐거운 날이었지만, 그러나 운동회나 학습발표회가 모두에게 즐거운 날은 아니었다. 엄마가 푸짐한 음식을 준비해 운동장 가에 있는 큰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아이들의 무용과 게임을 응원하고 격려하는데, 가족들이 오지 않아서 혼자 아니면 동생과 조촐한 점심을 먹어야 하는 맞벌이 가정의 학생들에게는 퍽 속상한 날이었다.
현재는 교사들에게 육아시간, 자녀 돌봄 휴가 등 다양한 휴가가 보장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교사가 휴가를 내면 보결 인력이 없었다. 인력이 있다고 해도 운동회가 근무 학교와 자녀학교가 같은 날이면 휴가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교사들은 서로 위로하는 말로
“나라는 내 자식은 버리고 남의 자식을 키우도록 하는 임무의 대가로 우리에게 월급을 준다.”라고 하였다.
세 남매를 키운 나에게는 아주 자주 있었던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긴 투병으로 할머니조차 행사에 오실 수가 없는 날은 가끔 외할아버지나 돌봐주시는 아주머니가 참석해 주셨다.
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동영상을 공부하며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영상 속에서나마 아들이 백군을 표시하는 머리띠를 하고 대표로 계주를 뛰는 모습, 딸이 금박의 붉은색 치마에 연두색 당의를 입고, 머리에는 족두리까지 쓰고 부채를 접었다 펴며 친구들과 꽃과 파도를 만드는 부채춤을 볼 수 있었을걸’ 이란 아쉬움을 가졌다.
성인이 된 아들과 딸들은 지금도 부모에게 가장 서운했던 것은 부모님이 오지 않은 운동회와 학습발표회 그리고 입학식과 졸업식이었다고 원망을 섞어서 이야기한다.
작년에 딸이 초등교사로 발령받은 날
“너는 학생들에게 책임과 애정이 있는 교사가 되어라. 그리고 결혼하여 애를 낳으면, 휴직해서 아이를 꼭 네가 키워라. 그 애가 교육기관에 입학하여 운동회나 학습발표회 그리고 입학식이나 졸업식을 할 때 우리가 함께 가서 소중한 순간순간을 축하해 주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구나.”
말이 없기로 소문난 남편은 교직 선배로의 변명이며, 부모가 보내는 진정한 사과의 말로 딸을 축하해 주었다. 남편의 마음과 아이들의 서운함, 워킹맘의 변명을 시로 기록해 두었다.
엄마들의 높은 응원 소리
청군 대표 현수와 계주
손톱을 뜯으며 기다린 신호
유치원 때부터 혼자는 안 간다고 매달려도
김밥만 가방에 넣어주던 엄마
오실까?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
준비 땅
젖 먹던 힘으로 결승전을 밀어도
매일 빈집 현관문 여는 허전한 맘
뛰어나와 안아 주시는 외할머니
애미가 출근해 젖 얼려오더니
녹인 젖 먹고 울 애기 잘 뛰네
외할머니의 눈물이 빈집을 채우고
만세 하는 내 등 뒤에 큰 그림자
엄마와 나의 승리
<공동우승>의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