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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샘 Sep 20. 2023

오늘은 공주 파티하는 날

옷물림으로 가난을 가리던 유년의 반란

 ‘입은 거지는 빌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빌어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먹을 것이 없어 빌어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옷차림이 깨끗해야 대우받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먹는 것이 인류 번성의 본능이라면 유아들에게 입는 것 어떤 의미일까?     

  드레스 자락을 양손으로 잡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왼쪽 무릎을 구부려 자세를 낮추며 “윤샘! 오늘 공주파티 있어서 드레스와 레이스 모자를 쓰고 왔어요. 공주 같지요?” 매일 바깥 놀이가 있는 우리 반에서 교육에 적합하지 않은 옷을 자랑하는 소민이의 인사를 받았다. 바깥 놀이 갈 때 불편하겠다는 현실적인 대답 대신 “참 예쁘다.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고 무슨 놀이를 할 수 있을까요? 란 질문을 하였다. 

“우리 오빠 생일이라 친구들이랑 파티하는데, 엄마랑 가기로 했어요. 파티에 가려면 공주 드레스를 입어야지요” 

“유치원 끝나고 파티에 가는데 왜 드레스를 유치원으로 입고 왔을까요?”라는 질문에 날카로운 눈이 된 소민의 대답  

“선생님! 내가 드레스 입고와야 친구들이 우리 오빠 생일인 걸 알지요?” 

“아 그래서 공주 드레스 입고 왔군요. 옷 때문에 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조심 놀이합시다.” 

“그럼요 드레스는 소중하니까요.” 공주님은 오빠의 생일 카드를 만들겠다고 급하게 교실로 들어갔다. 오빠의 생일을 알리는 표현으로 드레스를 입었다는 소민의 말이 남매의 우애가 느껴지며 듣기 좋았다. 

 소민을 지켜보던 연세 많은 주무관님이 “저게 옷이고? 잠자리 날개여? 잠자리 날개에 고운 색 들여 만들었나? 저건 마 잠자리 날개다.” 

“예 여사님 공주파티에 가는 한 마리 잠자리예요.”


 아침 인사 후 1시간 뒤 모래 놀이장에서 철퍼덕 앉아 모래로 오빠의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소민을 발견하고 놀라서 “소민아 너 드레스 버리면 어떻게 공주파티 가려고 해? 일어서” 소민이도 자각했는지 일어선 듯 앉은 듯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서 케이크를 만들었다. 바깥 놀이 후 교실로 들어와서 드레스 자락이 더러워졌다고 대성통곡하는 소민의 드레스를 일부 빨아서 말려야 했다. 수업을 마치고 핸드폰을 보니 소민 엄마가 아침에 드레스는 놀이에 불편하다고 달래보았는데 드레스 주장이 강해서 어쩔 수 없이 입혀 보냈다고, 패션에 대한 애정이 음식에 대한 애정보다 크다는 엄마의 문자에서 매일 아침 등교 옷을 고르며 벌이는 실랑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소민이에게 옷이란 그날의 계획을 표현하는 개성이었으리라.     

  개성표현이 아닌 유아의 패션이 사회적 관심의 표현이 될 때도 있었다. 세계적으로는 2013년에서 2014년 사이 겨울왕국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에 개봉되었다. 거리에서 가끔 엘사를 만났는데 2019년 겨울왕국2가 개봉된 후에는 유아가 있는 가정이든 없는 가정이든 겨울왕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 관심이 오랫동안 높았다. 그때 유치원 통학 버스가 67인승이었는데 하루에 30명이 넘는 엘사와 안나를 맞이하는 진풍경을 현관에서 보았다. 여아의 수가 50여 명이었는데 반이 넘는 수였고, 머리띠와 목도리는 필수 패션 아이템이었다.

“선생님 우리도 겨울왕국 드레스 입고 유아 맞이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안되면 머리띠라도 공동구매 할까요? 라며 선생님들은 유아들의 관심에 어떤 호응을 해야 하나 고민하였다. 노래, 색칠 놀이, 동극도 주제가 겨울왕국으로 채워지는 우리 유치원은 오랫동안 겨울왕국이었다. 겨울왕국을 만든 월트디즈니의 영업 전략이 좋았던 것인지 유행에 민감한 부모님들의 반응인지, 유아의 패션이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의 유행을 반영한 에피소드였다. 

 “패션은 경쟁력이다.”라는 의류 광고가 있다. 

  옷이란 개념도 없이 살던 인류가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나뭇잎이나 식물을 이용하여 몸을 가리기 시작하였고, 옷의 재료를 자연에서 얻다 보니 양이 매우 적어서, 옷은 먹을 것만큼이나 귀한 것이었다. 조선시대 말기까지 우리나라에도 누에가 준 비단. 목화가 준 솜, 모시 나무가 모시, 대마가 준 삼베 정도가 옷의 재료였다. 화학섬유가 도입되기 전 천연소재 옷 한 벌의 의미는 현재 명품 옷 한 벌의 가치보다 높았다. 다양한 소재가 옷이 되는 세상에서도 천연소재의 옷은 가치가 높다. 그래서 경쟁력이 되는 것일까?.     

  소민이의 옷처럼 일과의 계획이거나, 엘사와 안나가 되지 않으면 사회적 유행을 모르는 패션문맹자가 되는 것이 아닌, 예쁜 옷을 입은 친구가 부러웠을 뿐인 어린 나를 생각하였다. 현숙이는 엄마가 치마를 만들었다고 자랑했고, 금순이는 언니가 공장에 취직하여 나이키 운동화를 사 주었다 하였다. 나에게 언니들 헌 옷만 입으라 하고, 장날에는 내 옷이 아닌 생선과 밀가루를 사 오시는 엄마와 공장에는 안 가고 자기 교복만 자랑하는 언니에 대한 원망이 점점 커 져갔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열 살 생일쯤 나는 새 옷에 대한 열망으로 부여장에 가시는 아버지의 경운기에 무작정 올라탄 적이 있었다. 시는 40살 생일에 옷 한 벌 사라고 선물을 보내신 엄마를 생각하며 장에 갔던 30년이 지나서 쓴 날의 일기이다. 


생일날 날아든

아비가 한나절 고른 원피스

한참을 너울거리다 그 나비가 된다.     

삼촌 등록금이 될 물고추 실은 경운기

열 살의 장은 서울보다 넓었다.     

아비는 고추전 어미는 어물전에서 

굵은 주름이 파이도록 흥정하고

치마를 쥔 셋째 딸과 끌어내는 엄마

서러울수록 곱던 노랑 치마에

계집애의 울음소리 높아질 무렵

옷값을 치르는 아비의 표정 없는 손

방금 딴 고추처럼 코가 싸했다.

옷 물림으로 가난을 가리던 세상     

서른 해의 파랑을 건너

날아든 노랑나비 한 마리

허물은 긴 세월 돌아 다시 날개를 

    <허물이 보낸 날개>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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