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웨스트민스터 사원'인 프린스턴 묘지

지성들이 잠들어 있는 곳

by Elliott 장건희
완전히 죽는다는 것은 사람이 망각할 뿐 아니라 망각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잊혀지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To die completely, a person must not only forget but be forgotten, and he who is not forgotten is not dead) - 영국의 소설가 사무엘 버틀러 (Samuel Butler)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있지요. 프린스턴에는 특히 그런 인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프린스턴의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의외로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 바로 프린스턴 묘지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미국판 '웨스트민스터 사원 묘지'라고도 불리는 프린스턴 묘지를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프린스턴 묘지는 낫소 장로교회 산하에 있는 교회묘지로 1757년에 프린스턴 2대 총장인 애런 버 1세 (Aaron Burr Senior)가 벌판에 묻히면서 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대다수 프린스턴이나 근방에서 태어났거나 자랐던 사람들이며 그밖에 타지에서 왔다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미국 내에 프린스턴 묘지처럼 이렇게 종교계, 학계, 정계에 알려진 인물들이 많이 묻혀있는 곳은 드문 편인데요. 아마도 그것은 프린스턴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 일 것입니다.


프린스턴 묘지에 가장 먼저 소개해드리고자 하는 묘는 근래 우연찮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묘 중 하나입니다(아래 사진). 바로 미국 3대 부통령을 지낸 애런 버 2세(Aaron Burr Junior)인데요. 애런 버 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결투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미국 건국공신이자 초대 재무장관을 지냈던 알렉산더 헤밀턴(Alexander Hamilton)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결투 중 그를 사살했습니다. 역사적으로 헤밀턴이 워낙 인기가 많은 인물이라 상대적으로 애런 버는 많은 비난을 받아왔고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있던 인물입니다. 버 자신도 프린스턴 대학 출신이며 이미 소개했던 묘지의 첫 무덤의 주인인 프린스턴 2대 총장 애런 버 1세가 바로 그의 아버지입니다. 그동안 평가절하되었던 인물이었지만 수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랩 뮤지컬 '헤밀턴 (Hamilton)' 덕분에 다시금 재조명이 되고 있습니다.

프린스턴 묘지에는 부통령 애론 버 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묻혀있죠. 미국 22, 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브랜드(Grover Cleveland)가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아래 사진).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드물게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배우자가 없이 총각으로 지내다가 백악관에 들어와 초혼을 치른 유일한 대통령입니다. 그가 아내로 맞이 하게 된 여성은 클리브랜드의 동료 변호사이자 절친의 딸 프랜시스 포섬(Francis Folsom)이었습니다. 프렌시스는 클리브랜드 대통령과 무려 28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는 역사상 최연소 영부인이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백악관에서 태어난 딸 룻 클리브랜드(Ruth Cleveland) 도 국민의 영애로 큰 사랑을 받았죠. 그러나 룻은 12살 때 당시 크게 유행하던 디프테리아에 걸려 안타깝게 5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클리브랜드 대통령의 무덤 곁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룻과 영부인 프랜시스 여사의 묘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프린스턴 묘지에 묻힌 인물 중에는 미국 내 널리 존경받는 종교계의 인사들도 있는데 조나단 에드워 (Jonathan Edwards)와 존 위더스푼(John Witherspoon)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에즈워즈는 당대 탁월할 신학자로 미국 장로교의 본가라고 할 수 있는 영국 스코틀랜드 장로교단에 영향을 줄만큼 뛰어난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1758년 프린스턴 대학총장으로 임명되어 부임했는데요. 불과 한 달 만에 천연두에 걸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혀있습니다.

에드워즈는 미국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을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어 미국 기독교계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한국에서는 20세기 초 '백만인 구령 운동' 또는 '평양 대부흥 운동'이 있었는데 모두 대각성 운동의 여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한 에드워즈의 직계 후손은 현재까지 9백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미국 부통령 1명, 하원의원 3명, 상원의원 2명, 대학 총장을 지낸 사람이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성공한 인물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미국에서 엘리트 가문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에드워즈의 초상화)

존 위더스푼 역시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으로 프린스턴 대학 총장으로 영입이 되었고 프린스턴 대학을 유럽의 대학에 버금가게 성장시킨 인물입니다. 그는 미국 독립선언서의 서명자 중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어 프린스턴 묘지 옆을 지나는 길도 위더스푼가(Withspoon Street)로 명명되어 있습니다.

프린스턴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바로 과학자들입니다. 알버트 아인쉬타인도 프린스턴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화장하고 재를 아무도 모르게 뿌려달라고 유언을 하는 바람에 프린스턴 묘지에 묻히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그런 유언을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인슈타인도 이곳에 묻혔을지도 모릅니다.

아인슈타인의 후배 물리학자로 미국의 저명한 페르미상 그리고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론 및 수리 물리학자가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가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Eugene Wigner)입니다. 그는 1963년 원자핵과 기본 입자에 관한 이론과 기본 대칭 입자의 발견"에 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 30년간 연구생활을 했고 역시 물리학자이며 럿거스대학 교수였던 아내와 같이 이곳에 묻혀있습니다.

위그너와 함께 헝가리가 낳은 천재 과학자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도 이곳에 묻혀있습니다. 그는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 과학자로 수학, 컴퓨터공학, 경제학, 물리학, 생물학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였습니다. 한 번은 기자가 동료 과학자 유진 위그만에게 '왜 헝가리에는 이 같은 천재들이 많습니까'하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위그너는 '천재는 폰 노이만 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1955년 그는 뼈와 췌장 그리고 전립선에 암이 퍼진 것을 발견하고 치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평생 철저한 무신론자로 살았던 그는 병상에서 가톨릭으로 귀화할 것으로 다짐하고 1957년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린스턴 묘지에는 종종 방문자들이 묘비에 작은 돌멩이나 동전, 지폐를 놓고 갑니다. 오늘은 보니 누군가가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을 흠모하는 사람이 지폐를 놓고 갔네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이며 오스트리아 출신 수리논리학자 쿠르트 괴델도 이곳에 묻혀 있습니다. 그는 일반인들에게도 '수학의 불완전성 정리'로 유명합니다. 괴델은 아인슈타인에게 말년의 가족과 같았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피해망상증으로 안타까운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과거 이차대전 당시 가까운 동료였던 모르츠 슈릭이 암살당했던 것에 충격을 받은 후 그 후 자신도 암살당할지도 모른다는 망상증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혹시 독살당할지 모른다는 망상증에 아내가 주는 식사 외에는 모든 음식을 거부했던 그는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을 당시 1978년 프린스턴 의료원에서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쿠르트 괴델의 묘지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이곳에 묻힌 위대한 과학자는 바로 라이먼 스피처(Lyman Spitzer) 박사입니다. 스피처 박사는 세계 최초로 핵융합을 위해 고온 플라스마를 가두어 놓는 스텔라레이터(Stellarator)를 처음 고안해낸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프린스턴 플라스마 물리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핵융합연구를 주도하였습니다. 원래 천체물리학자인 그는 1970년대 NASA에 우주망원경 설치를 끈질기게 제안였고 그 결과 저유명한 허블 우주망원경이 개발되었습니다. 1997년 4월 평상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스피처 박사는 자택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며 NASA는 그 후 2003년 발사된 적외선 우주망원경에 그의 이름을 붙여 스피처 우주망원경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스피처 박사의 묘비)

프린스턴 묘지는 그 밖에도 폴 투레인 (Paul Tulane, 기업가이자 투레인 대학 설립자), 실비아 비치 (Sylvia Beach, 출판가) 등이 이곳에 묻혀있음. 근래에 세워진 넓디넓은 공원묘지와 다르게 자그마하게 조성된 묘지로 방문해서 한번 산책 삼아 한 바퀴 돌며 과거를 회상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https://youtu.be/rMZpOlwLv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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