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나무 오두막집에서 시작한 아이비리그 대학

프린스턴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교의 출발

by Elliott 장건희

이번 편에서는 프린스턴 대학의 기원과 그로부터 파생된 프린스턴 신학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학교의 장로교 역사와 전통 찾아보겠습니다.


근대 사회의 최고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University)'는 대부분 서양의 대학 시스템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지며 학위가 수여되는 방식은 오늘날 어느 나라를 가나 별다를 바가 없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서구 대학 시스템은 사실 중세 유럽 대학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요. 개교한 지 900년이 넘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이나 그 뒤를 잇는 프랑스 파리대학 (소르본느) ,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캠프리지 대학 등이 그 모델이 되었죠. 이들 대학들은 대부분 가톨릭 사제(신부)들을 위한 신학교나 수도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사제들이 교리를 배우고 신학을 연구하던 수도원과 같은 기관이 후에 위탁을 받아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제들에게 고급 교육을 시키기 시작한 겁니다. 이들 귀족들의 자제들은 사제들 문하에서 신학, 철학, 수사학, 법학, 천문학 등을 배웠고 라틴어, 히브리어, 희랍어 등의 고급 언어를 구사할 수도 있었죠. (아래 사진은 옥스퍼드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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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훨씬 짧지만 미국의 대학들이 설립될 때도 유럽 대학의 영향을 받아 사제들을 키우기 위한 학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7, 18세기 영국 식민통치기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대학 등이 해당 지역에 목회자를 세우기 위해 처음 학생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그 후 귀족과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도 받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습니다. 모두 개신교 목사들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되었고 일부 학교는 전통에 따라 최근까지 신학자나 목사가 총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시작은 꽤나 소박했습니다. 미국 장로교단에서는 뉴잉글랜드 남쪽에 목사들을 양성할 수 있는 신학교를 설립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영향력이 있었던 윌리엄 테네트 목사가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신학교를 통나무 대학(Log College, 아래 사진)이라고 불렀습니다. 통나무 대학에서 강의하던 목사들과 졸업한 학생들은 그 후 뉴저지 대학 (College of New Jersey)를 설립하는데 교수로 참여하거나 이사회원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896년, 뉴저지 대학이 단과 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면서 학교 이름을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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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대학에 대한 상상도 및 역사기록

프린스턴 신학교는 프린스턴 대학과 함께 뿌리를 같이하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설립된 것은 1812년이었습니다. 초대 교수로 아치볼드 알랙산더 목사가 영입되어 장로교 신학생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행정적으로는 프린스턴 대학과 별개이나 아직도 학생들의 편의와 융통성을 위해 운영상 많은 부분을 협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린스턴 신학교는 사무엘 밀러, 찰스 핫지 등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이 이끌어가면서 명망 높은 신학교로 발전시켰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신학교육과 연구에 있어서 영향력과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해외에서도 많은 유학생들이 다녀갔습니다. 한국에서는 개신교 목사로 많은 존경을 받았던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이며 대한민국 2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했던 백낙준 박사 등이 일제강점기 미국 선교사들의 지원으로 유학했었습니다. 그밖에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던 장상 박사 등 외 수많은 한국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프린스턴 신학대를 거쳐 갔습니다. (아래 사진은 프린스턴 신학교의 본관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알랙산더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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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대학과 신학교을 논하며 지나칠 수 없는 종교사적 주제가 바로 대각성 운동 (The Great Awakening)입니다. 유럽과 미국이 계몽사상으로 무르익고 산업혁명이라는 파도가 몰려올 무렵 프린스턴 대학에는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이끌어 가던 주체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설교를 듣기 위해 구름같이 모여들었죠. 이들이 이끌었던 집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개신교 교인들이 되었습니다. 이를 '영적 대각성' 또는 '대부흥' 운동이라고며 부르고 미국의 독립과 함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통나무 대학의 설립자이었던 윌리엄 테네트, 제3대 총장이었던 조나단 에드워드 그리고 제4대 총장이었던 사무엘 데이비스 등은 17세기 미국 개신교 부흥운동의 대명사들로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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