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발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해도
먼지의 구도. 닫힌 운동장. 이름 대신 번호를. 흘러간 꿈은 철저히 잊을 것. 꽃을 던지고. 미처 버리지 못한 사물들을 재활용하지 말 것.
시절은 시절에 맡기고
계절을 도둑질하는 심정으로
도착하지 않은 계절을 향해 뛰어간다. 멈출 수 없는 구호가 하늘을 향해 거센 날개를 편다. 빛의 화살이 심장에 박혀 눈이 멀었을 때. 어떤 분열보다 팽창했던 우리의 낮들.
유성이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는 바다를 보았지. 그때,
빛으로 온 것은 여자였다.
하얗게 질렸던 파도는 물결을 움켜쥔다. 머리카락을 풀고 있다. 고요한 심해로 내려가 자리를 잡는다. 어둠은 볼록한 배를 감싸며 바다를 따뜻하게 데운다.
나는 푸른 자궁을 풀어내는 식물 물고기
빛의 알갱이들을 모았다.
수면 위로 쏟아지는 빛은
유년의 얼굴입니까?
눈가를 간질이는 무수한 빛 방울들이 허리를 휘감는다.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국어의 함성으로 뛰어간다. 조금 늦게 오는 것은 기다려주자. 아주 느리게 가는 것도 괜찮다. 배가 볼록한 방 안에서는 창문을 열어야 한다. 잠깐은 우리 곁에 있었던 안부.
제발요.
화분에 물을 주지 마세요.
다육이는 달을 채우지 못한 별이 된다. 다시 어둠으로 입장. 알 수 없는 계절에 열리지 않는 순간. 다리 사이로 미지근하게 흘러내리는 햇살을 닦으며
우리, 뛰어가자
빛의 출발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