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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곳에서

by 유리



25년 1월, 호스피스 병동 임상지에서 실습 중이던 나에게 사회복지사님의 조금은 조심스러운 인계를 받았다.


“내담자가 까칠하고 예민합니다. 의료진의 말을 자주 끊고, 소통이 쉽지 않은 분이에요. 다들 방문을 꺼려하지만, 미술요법은 꼭 받고 싶다고 하셔서요. 선생님이 한번 가봐 주실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피하고 싶어 했던 그 환자분의 병실에,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인사차 방문하는 길이었지만 혹시 몰라 드로잉 재료와 색채 도구를 챙겨 병실 문을 두드렸다.

깡마른 몸에 장루를 단 채, 주렁주렁 달린 진통제를 맞으며 환자분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침대 머리에 조용히 기대앉아 계셨다.


“자기소개해보세요.”


인사를 건넨 순간, 환자분은 나의 말을 끊으며 불쑥 말했다.


“알겠고, 나도 미술 했어요. 이 병원 사람들, 너무 배려한답시고 귀찮게 굴고 말도 많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분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잠시 후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림 그릴 줄 알아요? ”


전공이 회화라고 하자, 그제야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안경을 고쳐 쓰며 조심스레 말했다.


“어머, 그림 하는 선생님이었어요? 나, 어반스케치 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죽기 전에 내가 찍은 사진들 그려보고 싶거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준비해 간 곧바로 연필과 드로잉분을 환자 앞에 조용히 꺼냈다. 망설임 없이 기술적인 설명을 하며 바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왔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환자분은 작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아, 나 이제야 한을 푸네요. 여기 와서 너무 답답했어요. 선생님 만나려고 다른 병원도 다니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다음 주에도 꼭 와주세요. 내가 별소리를 다 하더라도, 그냥 죽기 전에 하는 말이라 생각하고 흘려들어도 돼요. 사람들은 날 어려워해요. 내가 까칠하니까. 근데 다 이유가 있어요. 보세요, 지금 이렇게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나 미혼이에요. 아직 청춘이에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두렵고 무서워요… 이 얘기, 선생님한테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한참을 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말들엔 외로움과 억울함과 분노, 그 아래에 깔린 슬픔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2025년 1월 22일. 환자분의 임종소식을 들은날. 병원 앞 정원


2주 차. 병동에 도착하자마자 사회복지사님이 미술치료사 프로그램실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환자분이 선생님 출근하시면 1번으로 와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전달을 받고 바로 미술 도구들을 챙겨 병실로 달려갔다.

환자분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셨다.


“선생님 만나고 나서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아졌어요.”


그렇게 웃으며, 침대 옆에 놓인 그림 한 장을 꺼내 보이셨다.

초록나무가 가득한 숲의 풍경 스케치였다.


“이거 색칠 좀 도와주세요. 수채화로요. 색연필 말고, 초록이 더 생생해야 하거든요.”


그러더니 혼잣말처럼, 툭 한마디를 던지셨다.


“이번 여름은 초록을 못 볼지도 모르니까요.
이거 동생한테 주면, 벽에 걸어두든지 말든지 하겠지 뭐…”


그 말속에는 이미 병을 받아들이는 어떤 조용한 수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 누군가에게는 기억으로라도 남고 싶은 작고 진심 어린 바람이 느껴졌다.

내가 간단히 수채화 시범을 보여드리자, 환자분은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머, 나도 살겠네. 선생님 덕분에 이 그림이 살아났네요.”


그림 속 작은 오솔길을 따라 초록이 번져갈 때쯤, 그림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환자분이 조용히 말했다.


“근데 이 길의 끝이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 같네요어쩜 그림도 이런 걸 골랐을까요.”


순간 환자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잠시 후, 내 눈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의 생명은 정말 누구도 몰라요.
선생님,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꼭 하세요.
남 눈치 보지 말고요.
내가 지금 돌아보니, 결국 남들 시선 신경 쓰느라 미룬 시간이 너무 많았어요.”


환자분이 살아온 삶을 정직하게 되짚듯 이야기하셨다.


“내가 좀 까칠하고, 말도 세게 하고 그랬죠.
사람들은 뒷말은 잘하면서 정작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잖아요.
나는 그런 게 싫었어요. 불편해도 말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적도 많았죠.
근데 말이죠… 그렇게 살아서인지 지금은 후회가 좀 덜해요. 수거짓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건넨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두 번 만났는데… 너무 친해진 거 아닌가 몰라요.
조금만 더 일찍,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이 병원에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어요.
그게 오늘 제일 아쉬운 일이네요.”


그 말은 내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환자분의 목소리는 약해져 갔지만, 말들은 또렷했고, 따뜻했다.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 졌어요. 하고 싶은 게 막 떠올라요. 다음 주에는 이 풍경 그리고 싶어요.”


휴대폰으로 보여준 사진은, 요양차 다녀온 시골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음 주’를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프로그램실에서 3병 동의 환자분들 명단에 있어야 할 환자분의 성함이 있지 않았다.


“어제 새벽에… 임종하셨어요.”



순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채로 멍하니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풍경이 떠올랐고,
시골 풍경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던 그 순간의 눈빛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인계를 마치고 병동 화장실로 들어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겨우 두 번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이렇게 깊이 남을 줄은 몰랐다.

호스피스라는 공간은, 말기 암 환자들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이다.
이곳의 평균 생존 기간은 길어야 5주 남짓이다.
시간은 언제나 조용히 흐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결코 짧지 않다


회기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그리고 마침 환자분이 임종하시기 3일 전, 나의 20살 반려견 뽀삐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래서 마음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며칠 사이의 상실은 겹겹이 쌓여 내 마음을 덮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온 건, 살아오며 처음이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두 시간 넘게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그날따라 참 길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익숙했지만, 노을 지는 하늘은 어쩐지 더 슬퍼 보였다.

삶이 멈춘 자리에서 막 걸어 나왔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는 예비치료사로서, 상실의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버거운 일이었다.

짧은 회기였지만, 그 만남은 오래 남았다. 환자분이 남긴 말, 고른 그림,
그리고 내게 건넨 마지막 한마디.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요.”


나는 그 말을 마음 한구석에 오래 두게 되었다. 짧았지만 깊었던 그 순간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잊지 않고 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경험은 여전히 성장 중인 나에게 하나의 성찰로 남았다.
치료자로서의 마음을 다잡게 해 주었고, 누군가의 마지막에 진심으로 함께 머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어느 방향으로도 날 수 있는,

작고도 단단한 새


죽음 이후의 해방

영혼의 자유로움에 대한 무의식적인 바람
슬픔을 품은 희망

더 넓은 곳으로 날아가길


그곳에서

슬픔도 아픔도

두려움도 없는 곳에서

자유럽게 날아가길

그리운 존재들이 기다리는 그곳에서

그곳에서 pencil 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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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