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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백보다 에코백이 좋은 이유

소유보다 존재로 빛나는 법

by 언어프로듀서

명품에 관심이 없다.

어쩌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들러도 그쪽은 전혀 둘러보지 않는다.

예전엔 달랐다. 한때는 명품으로 나를 휘감는 일이 곧 나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 믿었다.


결혼할 땐 루이비* 가방을,

출산 후엔 프*다 가방을,

워킹맘으로 고생하는 나를 위로하며 샤* 지갑을 샀다. 명품이 내 삶을 위로했고 내 가치를 대신해 주었다.

결혼식에 가면 서로의 가방으로 ‘사는 수준’을 가늠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명품 가방 하나쯤은 들어야 “야, 너 잘 살고 있구나”라는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시절엔 명품 가방을 사 모으는 게 낙이었다.



물론 돈이 많았던 건 아니다. 저연차 공무원 월급은 최저 시급에도 못 미쳤다. 입사 첫 달, 내 통장에 찍힌 한 달 월급은 112만 원.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그보다 더 벌겠다 싶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카드 할부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12개월 할부를 갚을 수 있었다. 어차피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숫자에 불과했으니까.


‘인생은 욜로야. 지금 즐겨야 해. 이 시기는 다시 오지 않아.’

그때의 나는 소유를 행복이라 착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참여하고 싶은 글쓰기 강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달의 카드 할부금이 발목을 잡았다. 마감이 코앞인데 신청비가 없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그날 밤, 옷장을 열었는데 명품 가방들이 줄지어 있었다. 하나하나 꺼내 보니, 몇 번 사용하지도 않은 채 고스란히 천으로 덮어놓은 가방들. 어떤 건 있는지도 잊고 있었다.

하나를 들어 거울 앞에 섰다.

‘나는 대체 뭘 위해 이걸 샀을까.’

가방은 화려했지만 나는 텅 비어 있었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었나.’

그 질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날 이후였다.

무언가 달라져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깨달음은 책에서 시작됐다.


마흔이 다다르도록 만화책조차 안 읽던 내가 처음으로 책을 펼쳤다. 읽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쓰는 게 어려웠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손끝이 굳었다. 그럼에도 매일 책상 앞에 앉았다. 멈추지 않고 반복했다.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안의 생각을 또렷해졌다. 그때부터 읽고 쓰는 일이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직장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전에는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해서 발표하는 게 너무 두려웠다. 밤새 시나리오를 통째로 외우니 인정은 받았지만 늘 내 발표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 언어가 자라났다. 이젠 시나리오 없이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회의 자리에서도 내 생각을 나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이 쌓이고 통찰이 생기자 일상의 문제도 유연하게 풀렸다. 마음이 풍요로워지자 표정이 온화해졌다.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지성미와 품위가 자연스레 배어 나왔다.

‘내가 명품이라 명품이 필요 없다’ 같은 말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변명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기자 ‘어떤 가방을 드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의 나는 명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나 자신에게 투자한다.

나를 가꾸는 일, 배움을 쌓는 일, 언어를 다듬는 일.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성장시키는 하루의 수업이다.

지금은 에코백 하나면 충분하다. 책 한 권 들어갈 만큼의 천가방이면 그게 무엇이든 좋다. 가볍고 편안한 게 최고다. 사실 무슨 가방을 들고 다니는 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방보다 그 안에 담긴 책 한 권, 생각 하나가 더 중요해졌다.



이젠 명품이 나의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가치는 내가 가진 물건이 아니라, 내 존재에서 뿜어져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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