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의 어느 날, 노트북을 열고는 갑자기 선포했다.
“365일, 블로그 1일 1포스팅 무조건 한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결심이었지만 나에게는 작은 혁명과도 같았다.
그날 이후 나의 아침은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시작되었다.
매일 해가 뜨고 지듯이, 매일 세끼 밥을 먹고 잠을 자듯이, 나의 블로그 쓰기도 삶의 일부이자 일상이 되었다.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오늘은 뭘 쓰지?’ 수없이 고민했다. 책을 뒤적였다가, 블로그 이웃 글도 기웃거렸다가, 명언을 찾아보기도 했다. 글감을 찾아 헤매다 보면 어느새 출근 시간의 압박이 느껴졌다.(앗불싸. 시간이 없다. 속이 타들어가고 몸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
블로그는 발행 시간은 분.초 단위로 찍힌다. 회사 직원들이 보게 될지도 모르니 근무시간 발행은 피하고 싶었다. 혹시 모를 꼬투리에 흠잡히지 않기 위해 아침 발행을 고수했다.
아침 잠이 많은 내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전날 회식 후 피곤한 몸으로 새벽에 일어나는 일을 그야말로 극기였다. 때론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일이 괴롭기까지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시시포스는 매일 무거운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린다.
하지만 그 바위는 여지없이 다시 굴러 떨어진다.
시시포스는 떨어진 바위를 또다시 밀어 올린다.
끝없는 노동, 끝없는 반복의 고통.
그것이 시시포스에게 주어진 형벌이었다.
글쓰기는 흡사 시시포스의 형벌과 닮았다.
어제 썼는데 오늘 또 쓰고, 오늘 썼는데 내일 또 써야 한다.
글을 쓴 지 100일째 되던 날, 문득 생각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회수는 점점 줄고, 댓글도 거의 없었다. 그저 빈 언덕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행’을 이어갔다.
다행히 끝없는 고통의 반복 속에서도 얻는 건 있었다.
바로 글쓰기 근육이 붙었다는 것이다. 글의 감각이 생겼고 나만의 생각이 자라났다.
아마 시시포스 역시 매일 바위를 밀어 올리며 근육이 단련되고 체력이 향상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무거운 바위쯤은 한 손가락으로도 편안하게 밀어 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블로그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매일 한 편을 쓰는 일은 쉽지 않지만 예전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고통의 70%는 줄었을까.’
500자도 안 되는 글을 쓰면서 두 시간 동안 괴로워하던 나였는데, 어느새 15분이면 초고가 나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동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익숙함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바위를 밀어 올리겠다고 또다시 분투하고 있다.
(사람의 욕망이란, 참 멈춤을 모른다.)
요즘 내게 그 바위는 브런치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브런치에 도전해 합격했다. 합격하자마자 브런치북을 준비했다. 온호류님의 ‘호글보글’에 참여해 매주 금요일에 한 편씩 연재 중이다.
블로그 글이 매일 아침 직관적으로 써내는 글이었다면, 브런치 글은 다르다. 한 편을 쓰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
블로그 글 7편을 쓸 수 있는 시간이지만 브런치 글 한 편을 위해 며칠을 다듬고 고친다. 문장 하나, 조사 하나, 단어 하나까지 고민한다. 스토리를 풍성하게 살리려고 여러 번 읽고 지운다.
다행인 건, 블로그에 쌓아 둔 기록이 있어 글감을 찾아 헤매며 고생하지는 않는다. 브런치 2화를 쓸 때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 막막했지만 1년 전, 반년 전의 글들이 좋은 씨앗이 되어 주었다.
한때는 형벌처럼 느껴지던 기록이, 지나가 보니 전부 쓸모 있는 자산이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브런치’라는 거대한 바위를 밀어 올리느라 힘들지만 이 또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근육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작가는 매일 시시포스처럼 글을 밀어 올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글을 밀어 올릴 때마다 조금씩 강해진다.
이제 나는 안다.
글쓰기는 나를 괴롭히는 형벌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훈련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단 한 줄이라도 쓴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