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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직도 24평 사는 큰 딸이 걱정이다

걱정과 사랑 사이에서 나의 기준을 찾는 일

by 언어프로듀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가 내 걱정을 하며 안타까워하신단다.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기를 하나, 자식이 속을 썩이기를 하나, 또 직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는 딸을 왜 걱정하는지 의아했다.


“잘 살고 있는 딸을 왜 걱정하는데?”

“아니, 쥬야가 이사를 간다고 해서.”


이유인즉, 동생이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동생이 이사를 가면 갔지,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리고 거기서 왜 내가 안쓰러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저 웃음이 났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라곤 하지만 실제로 부모에게는 늘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단다. 나는 자식 하나만 키워서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지만 부모님께 나는 분명 그 ‘아픈 손가락’인 모양이다.


14개월 차이나는 동생과 함께 자라며 난 늘 비교의 대상이었다. 어릴 때 몸이 허약해서 툭 하면 아픈 것도 나였고, 공부를 못한 것도 나, 취업이 늦어 속을 썩인 것도 나였다. 결혼 후 재정적인 면에서도 동생과 차이가 났다. 동생은 서울에 자가를 보유한 남자와 결혼했고 나는 경기도에서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다. 출발선이 달랐으니 십 년이 지난 지금 자산의 차이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조금 더 일찍 경제 공부를 했더라면, 조금 더 똑똑하게 돈을 불렸더라면, 지금쯤 그 차이를 좁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현실적으로 살지 못했다.


그 대신, 내면을 탄탄히 채우는 삶을 택했다. 물질의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를 쫓고,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채워가며 살고 있다.

동생이 명품 가방을 살 때, 나는 책을 샀다.

동생이 해외여행 갈 때, 나는 올레길을 걸었다.


물론 정신적 자유만큼 경제적 자유도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요즘은 경제 공부도 시작했다. 단기와 장기 계획을 세워, 나만의 속도로 조금씩 부를 채워가는 중이다.


그런 내게 동생의 이사 소식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 봐 걱정해 주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니 헛웃음이 났다.


나는 경기도의 24평 아파트에 산다.

동생은 경기도의 34평 아파트에 산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의 34평 아파트로 이사를 간단다. 지금도 자산의 차이가 컸지만, 서울로 이사 갈 동생과의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아이고 우리 큰 딸이 큰 집에 살아야 하는데..

지금 집도 빚이 많은데 언제 다 갚고 돈 모아서 이사를 가냐....”

엄마는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푸념들을 계속 쏟아내셨다.


사실 지금 집이 작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세 식구가 살기에 딱 좋다. 물론 여유가 생기면 나만의 서재가 있는 집으로 이사하고 싶긴 하다. 하지만 부모님의 걱정처럼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럽지는 않다.

최근 우리 부부는 새로이 계획을 세웠다. 그간 흥청망청 쓴 건 아니지만, 절제 없는 소비를 줄이고 체크카드로 지출을 통제하며 주식과 부동산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느리지만 단단하게 자산을 늘려갈 예정이다.


이런 계획을 부모님이 아실 리 없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의 변화가 걱정을 잠재우기엔 부족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엄마의 걱정을 있는 그대로 듣는다.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덜 가진 자식, 그래서 마음 아픈 딸이다.


서울 병원 진료로 부산에서 올라온 엄마를 모시고 마트에 갔다.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아 계산하려는 순간, 엄마는 황급히 내 카드를 낚아챘다.

“엄마 내가 계산할게.”

“빨리 돈 모아서 빚 갚아야지. 언제 모아서 집 사려고.”

계산대 앞에서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엄마가 계산하도록 내버려 뒀다.

무거운 장바구니만큼은 내가 들고 가려했다. 그런데 그것마저 엄마가 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8년째 간암으로 고생하는 엄마인데.

사지 멀쩡한 딸이 뭐가 안쓰러워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엄마와 나는 짐을 나눠 들었다.


몸도 성치 않으시면서 딸이 무거운 짐을 드는 꼴은 절대 못 보는 엄마.

아버지가 은퇴하셔서 살림 꾸리기 넉넉지 않으실 텐데, 딸이 단돈 5천 원 쓰는 걸 아까워하는 엄마.

성인이 된 딸이 부모에게 무언가 해드릴 때 느끼는 행복조차 ‘아깝다’며 빼앗아 버리는 엄마.

그런 엄마와 참 많이 부딪쳤다.


“내가 엄마한테 해주면서 느끼는 행복도 있잖아. 엄마는 왜 그 행복까지 빼앗는 거야?”

울며 소리치며 달려든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의 사랑법은 바꿀 수 없는 사랑 방식이라는 걸.


이젠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법을 배웠다. 엄마를 설득해 가며 상처를 주기보다, 그 사랑법에 상처받지 않도록 내가 더 단단해지는 게 낫다. 그게 아픈 부모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이자 사랑 표현이다.


엄마와 내가 살아온 세상과 가치관이 다를 뿐이다.


엄마에게 가치란 보여지는 것이다. 큰 딸이라면 큰 집에 살아야 하고, 마흔이 넘으면 그 나이에 맞는 크기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게 가치란 보이지 않는 내면의 크기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그게 나의 크기다.


엄마가 그걸 몰라줘도 괜찮다.

내 마음은 내가 알고 있으니까.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내게 너무 많은 사랑을 주셨다.

그 사랑이 때로 무겁고, 때로 아프더라도 그게 엄마가 줄 수 있는 전부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전부가,

지금의 나를 만든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켜야 할 삶의 기준을 다시 떠올린다.


집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로,

엄마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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